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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4일 묵상

오늘의 말씀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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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알베르 카뮈의 자전적 미완성 유고소설 『최초의 인간』에는 마흔 살이 되어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자크 코르메리가 등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묘비 앞에 선 “아버지는 스물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이미 당시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다”는 낯설고도 슬픈 사실을 깨닫는다.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가 자신의 지금보다 열한 살이나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음을 생각하자, 이제까지는 슬퍼할 구체적이 대상도 아니었던 아버지를 향한 연민이 자크의 가슴 깊이 밀려온다.

“아버지의 성격은 어떠했을까?”, “무엇을 좋아했을까?”, “어머니를 어떻게 사랑했고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았을까?”, “전쟁터에서는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자크는 고향 알제리로 돌아가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 보지만, 청각장애를 지닌 데다 문맹인 어머니는 아버지의 삶을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자크가 어릴 적 어머니는 묵묵히 고된 노동을 견디며 매일을 살아낼 뿐이었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는 자크도 돈을 벌어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초등학교 교사 베르나르는 자크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크의 진학을 반대하는 외할머니를 설득하고 설득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시켰다. 교사 베르나르의 포기하지 않는 관심과 헌신 덕분에, 자크는 자신이 경험한 가난한 삶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훗날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전에, 자신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었던 베르나르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낯선 고독과 부끄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들 앞에서는 어머니가 청소노동자라는 사실에 창피함을 느꼈고, 돌아서서는 자신을 위해 평생 수고한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에 깊은 자책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우리도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숭고한 사랑과 희생을 까마득히 잊은 채, 내가 서있는 지금의 자리가 오롯이 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 착각할 때도 있다. 마땅히 느껴야 할 고마움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희생을 마치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며 무심히 지나치기도 한다.

카뮈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이 자전적인 소설을, 실제로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쳤다. 어머니는 아들이 쓴 책을 직접 읽을 수 없었음에도, 아들은 오직 자신의 어머니의 숨은 눈물과 수고를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글을 썼다. 카뮈는 우리에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어디에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고는 모두 사라지는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진짜 주인공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성경은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며 하나님은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잊지 않으신다고 전한다. 인간의 기억과 사랑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는 초라하고 실패한 날에도 주님은 우리를 알아보시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수고도 그분 앞에서는 결코 하찮지 않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남몰래 흘린 눈물과 수고, 오랫동안 홀로 견뎌온 고통과 아픔까지 주님은 이미 모두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가난과 외로움, 눈물과 버림받음의 아픔을 직접 몸으로 겪으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향한 거룩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 내셨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가문이 훌륭하거나 능력이 뛰어나서 주어진 보상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먼저 찾아오신 주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지금의 모습이 다소 초라하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거나 용기를 잃을 필요도, 남보다 조금 앞서 간다고 자랑할 이유도 없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이 기억해주는 이름이나 성취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카뮈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에 『최초의 인간』은 미완성 유고로 남겨졌다. 소설 속 자크의 아버지 찾기 역시 완벽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중간에 멈춰 선다. 우리의 삶에도 이처럼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존재한다. 끝내 묻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고마움,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가 우리 인생의 최종 결론은 아니다. 과거를 돌이킬 힘은 우리에게 없지만, 하나님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통해 다시 사랑할 기회를 허락하신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아련함과 그리움까지 주님손에 맡기고,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감사와 사랑을 전하자.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하며 수고했고, 하나님의 은혜는 매 순간 나를 붙들어 왔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제는 우리가 또 다른 누군가의 앞날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박수를 받지 못해도 괜찮다.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그 사랑의 마음과 수고를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내 곁의 한 사람을 품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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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지금의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돌아보겠습니다. 부모님과 가족, 스승과 동역자들의 헌신과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구체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 고마움을 직접 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도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격려하며 그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단 한순간도 저를 잊지 않으시고 은혜로 품어 주시는 하나님,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는지 돌이켜봅니다. 제 노력과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여겼던 오만함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와 남몰래 흘린 눈물도 모두 기억하시는 주님,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삶을 붙들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를 먼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시고, 과거의 후회와 상처는 주님의 손에 맡기게 하소서. 오늘도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작은 사랑의 통로가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