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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2일 묵상

오늘의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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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알베르 카뮈의 『유배와 왕국(일본어역 『追放と王国』을 읽고 쓴 글)』에 수록된 단편 〈자라나는 돌「生い出ずる石」〉의 주인공 다라스트는 프랑스인 토목 기술자로 귀족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방공사를 검토하고 추진하기 위해 브라질의 작은 도시 이구아페를 방문한다. 시장과 판사, 항만 관계자들은 그의 뛰어난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 칭송하며 귀빈으로 환영하지만, 정작 그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고독을 느낀다. 세간의 존경과 환대속에서도 진정으로는 누구와도 마음을 나주지 못하는 외로운 이방인이었다.

그러던 중 다라스트는 연안 운항선의 화재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한 선박 요리사를 만난다. 요리사는 조난 당했던 그 날 밤, 멀리 보이는 이구아페 성당의 불빛을 바라보며 만약 구조된다면 약 50kg에 달하는 무거운 돌을 머리에 이고 종교행렬에 참여하겠다고 서원했었다.

요리사의 사연을 듣고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 된 다라스트는 종교행렬 전날의 또 다른 축제 현장에 함께 해 달라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춤을 좋아하는 자신을 다음날의 종교행렬을 위해 자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축제에 참여한 다라스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위와 소음, 춤과 사람들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어 요리사에게 돌아가자고 하지만, 요리사는 떠나지 않는다. 다라스트는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와 답답함을 느끼며 혼자 그곳을 나온다.

다음 날, 요리사는 전날 밤에 춤을 추느라 기력을 소진하였으나 약속을 지키려고 무거운 돌을 머리에 이고 예수 성상을 앞세운 종교행렬에 참가한다. 그에게 돌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려운 밤에 드렸던 기도와 살아서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 반드시 지키고 싶은 약속이 담긴 짐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얼굴은 땀과 먼지로 뒤덮이고 어깨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킨다. 그날도 종교행렬에 참여하며 그를 지켜보던 다라스트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곁에서 함께 걸으며 등을 짚어 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사는 돌을 떨어뜨리고 쓰러진다. 다시 돌을 들려고 하지만 더 이상 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리사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울기 시작한다. 그 때 다라스트는 요리사의 피나는 어깨의 상처를 닦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그 돌을 자신이 대신 지고 성당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요리사에게 더 힘을 내라고 재촉하거나 전날 밤에 그렇게 춤추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사실 다라스트는 자신의 기술과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제방을 만드는 기술자로서 남을 돕는 이성적인 일과, 고통받는 사람의 짐을 자신의 몸으로 대신 감당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순례자들은 귀족 이방인의 대신 돌을 지는 뜻밖의 행동을 놀라움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성당이 가까워졌을 때, 다라스트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성당이 아닌 요리사가 사는 가난한 동네로 향한다. 사람들은 거룩한 성당으로 가야 한다고 고함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사의 집으로 들어가 집 한가운데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화덕위에 돌을 내려놓는다. 그 순간 다라스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로소 자신이 어떤 중요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실감하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하고 깊은 기쁨에 싸인다.

집으로 돌아온 요리사와 가족들은 화덕에 놓인 돌을 바라보고 침묵에 잠긴다. 이윽고 요리사를 돌 가까이 데려간다. 다라스트는 여전히 벽에 기대에 서 있었다. 돌을 운반했지만 자신은 그 가난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요리사의 형제가 빈자리를 가리키며 다라스트에게 “우리와 함께 앉으시오”라는 초대의 말을 건넨다.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고독한 이방인이, 이제는 한 식구로 그들과 같은 낮은 자리에 앉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생계의 무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 지난날의 후회와 흉터, 그리고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과 같은 저마다 감당하기 힘들 ‘무거운 돌’이 있다. 겉으로는 웃으며 살지만, 사실은 어깨를 부술듯한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무심코 힘내라고 격려하고, 믿음으로 견디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정답 같은 격려나 충고보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는 위로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들어 줄 만큼 넉넉하거나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리어 우리 자신도 삶에 지쳐 비틀거리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초대는 구원의 소식으로 다가온다. 주님은 무거운 짐도 거뿐히 지는 사람들만 부르지 않으신다. 더 이상은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해 주저앉은 사람, 무참한 자신의 실패와 상처를 감당할 수 없어 눈물 흘리는 사람도 부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앞에서는 강한 사람인 척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슬픔과 배고픔과 눈물을 경험하셨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사망의 돌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오르셨고, 거룩한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의 내일을 주셨다. 구원과 은혜는 우리가 율법이라는 무거운 돌을 내 힘으로 끝까지 운반했기 때문에 받는 상이 아니다. 진짜 은혜란, 무거운 돌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넘어져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어깨를 감싸 안으시는 긍휼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제 이웃의 무거운 짐을 못 본체 하지 않는다. 다만 돕는다는 명목으로 내 기준을 강요하거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하려는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먼저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절실한지 귀 기울여 묻고, 함께 감당할 수 있는 몫을 찾아야 한다. 세상이 떠드는 거창한 희생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의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손길로 충분하다.

이구아페에는 조각을 떼어가도 다시 자란다고 믿는 돌의 전승이 있다. 사실 참되게 자라나는 것은 생명 없는 돌멩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얽혀 가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다. 다라스트가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요리사의 돌을 대신 들어 주었을 때, 사람들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함께 앉을 자리가 마련되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힘이 없을 때 서로가 짐을 함께 지는 도움을 주고 받는 자리가 필요하다. 우리를 먼저 품으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닫혀 있던 마음이 다시 열리고 사랑의 열매가 조금씩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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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웃이 누구인지 살피겠습니다. 섣부른 충고보다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묻겠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함께 감당하며,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짐은 주님께 정직하게 아뢰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께 먼저 받은 은혜를 따뜻한 손길로 나누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소망으로 품으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제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오만과 교만을 회개합니다. 저의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로 소망을 주신 무한한 사랑을 깊이 신뢰하게 하소서.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지쳐 무너진 이웃에게 말 뿐인 위로를 건네기보다, 그가 짊어진 무게를 함께 나누게 하시고, 돕는다는 이름으로 그의 마음을 앞서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품으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사랑의 관계가 자라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