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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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알베르 카뮈의 『유배와 왕국(일본어역 『追放と王国』을 읽고 쓴 글)』에 수록된 단편 〈요나「ヨナ」〉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성공한 화가 질베르 요나가 등장한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 작품을 평가해 달라는 비평가들, 식사에 초대하는 인맥들.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방문으로 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요나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친절한 신사로 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내 루이즈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었다. 루이즈는 비좁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며 요나가 그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였다. 요나는 고마워하면서도 아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집은 방문객들로 항상 북적였지만, 가장 가까운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어 줄 마음의 자리는 오히려 좁아졌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화가가 정작 자기 가족의 외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요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기에 거절해야 할 순간에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친절한 언행 뒤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평판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도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이제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조차 집중할 수 없다. 이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연스럽고 즐거웠지만, 이제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 실제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칭찬이 점차 시들해지고 그림까지 뜻대로 되지 않자 그의 삶은 흔들렸다.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느라 화가로서의 소명을 잃어버렸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술에 의존하고 여자를 가까이 한다. 자신의 그런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야 요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집 안 높은 천장아래 작은 다락을 만들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어두운 고립의 공간으로 올라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 몸부림친다.
그러나 혼자 있는 공간을 얻었다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삶에서는 멀어졌다. 몸은 가까이 있었지만 진정한 교제와 연대가 끊어진 상태였다. 음식도 마다하며 작업을 한 요나는 극도로 쇠약해져 결국 쓰러진다. 친구 라토는 흰 바탕 가운데 아주 작게 단어 하나를 써놓은 캔버스를 발견한다. 그 단어는 'solitaire(고독)'인지 'solidair(연대)’인지 판독하기 힘든 단어였다. 그가 풀지 못한 삶의 고독과 다른 사람과의 연대라는 화두가 캔버스 위에 서글픈 질문으로 남겨진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역설과 모순이 있다. 바깥일과 이웃을 돕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가족과의 대화가 줄어들고, 주어진 일에 몰두하여 정작 소중한 사람의 지친 얼굴을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다가 몸과 마음이 지치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을 잃어버려 고독을 느끼고, 홀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잃고 연대하지 못하는 비극이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부탁에 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맡겨진 책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되, 세상의 요구 앞에서 거절할 것과 쉴 때를 분별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고요한 시간은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기회가 된다. 그 시간은 가족과 이웃을 피해 숨는 은둔의 시간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 진심으로 사랑할 힘을 얻는 충전의 시간이 된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돌보셨지만 새벽에는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임금이 되어달라고 하였을 때에도 그들의 기대에 끌려가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명의 길을 걸으셨다. 물론 지친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제자들에게도 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고요한 시간은 사랑을 외면하는 나태가 아니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의 샘물을 공급받는 채움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세상의 더 많은 칭찬이나 더 완벽한 성과가 아니라, 주님의 깊은 사랑 안에 거하는 일이다.
요나가 무너졌을 때, 평소 그를 둘러싸고 환호하던 방문객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아내 루이즈와 오랜 친구 라토는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았다. 의사가 오기 전, 쇠약해 쓰러진 요나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성공의 환호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진짜 사랑의 소리였다. 요나는 비로소 자신이 소중한 사랑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 장면을 완전한 회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다시 돌아가야 할 참된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세상에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녀다. 맡은 일을 다 끝내지 못했고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렸을지라도, 그 실패가 우리 존재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부족하고 지친 우리에게 먼저 베푸신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자기 영혼을 소진하지 않아도 된다. 쉬어야 할 때 주님께 돌아와 안식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동안 소홀히 했던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잡자.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과, 이웃과 함께 서는 삶은 결코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그 두 길은 비로소 하나로 만난다.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놓치고 있는 소명과 소중한 관계가 무엇인지 돌아보겠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이나 요청에 억지로 응하기보다, 내게 맡겨진 본연의 책임도 지혜롭게 살피며 거절할 줄 아는 용기를 갖겠습니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보이지 않게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겠습니다. 주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고요함을 통해 얻은 힘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분주한 삶이 아닌, 주님의 사랑안에서 충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를 품으시는 하나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탐욕에 거절하지 못하고 분주해 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의 수고와 눈물을 돌아보지 못했던 이기심을 회개합니다. 성과가 없을 때에도 저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게 하시고, 분주함 속에서도 주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가족과 동역자들의 숨은 헌신에 감사하며, 제게 맡겨진 소명과 이웃 사랑을 균형 있게 지켜가게 하소서. 오늘은 사람의 칭찬보다 사랑을, 헛된 분주함보다 충실함을 선택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