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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6일 묵상

오늘의 말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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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인디언 캠프(일본어 역 「インディアンの村」를 읽고 쓴글)〉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시간, 호숫가에서 시작된다. 소년 닉은 의사인 아버지의 팔에 안겨 보호를 받으며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 조지 삼촌이 탄 배를 뒤따라 일행이 도착한 곳은 숲속의 한 원주민 마을이었다. 길가에 인접한 오두막에는, 아이를 낳으려 이틀동안 애썼지만 출산하지 못한 산모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산모가 누운 침상 위층에는, 사흘 전 도끼에 심하게 발은 다치고 누워있는 남편이 아내의 비명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을 끓이라 지시하고는 조수역할을 하는 닉에게 산모의 상태를 설명한다. 자연분만이 불가능하여 제왕절개 수술을 감행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수술 도구도 갖추지 못한 열악한 상황이었다. 닉은 아버지에게 저 여성이 고통스러워 하지 않도록 통증을 줄여 줄 수는 없느냐고 묻지만, 아버지는 마취제도 없고 지금 가지고 있는 도구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산모의 비명은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은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무심하게 덧붙인다.

의사는 위급하고 긴박한 상황속에서 오직 산모와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의 의술과 빠른 결단이 없었다면 산모와 아이는 더욱 치명적인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닉의 순수한 질문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닉은 의술은 없었지만 산모가 지금 몹시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은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쁜 일에 집중하여 몰두하거나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분주할 때면, 정작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과하기 쉽다. 사실 아버지가 산모의 아픔을 당장 덜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많이 아프지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와 같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낚싯줄로 수술 부위를 봉합하였다.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아 기진 맥진해진 산모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의사로서의 성취감에 흥분하며 기쁨을 느낀다. 이제 아버지는 위쪽 침상에 누워있는 산모의 남편을 돌보려 하는데, 뜻밖에도 남편이 자신의 목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절망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새 생명이 탄생한 바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생명이 스스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남겨진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상실을 생각하면 그 비극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누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를 접하면 본능적으로 그 이유를 먼저 찾으려 한다.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미리 주변에 알리지 않았는지 그 원인을 캐묻곤 한다. 그러나 그 답을 안다고 한들 한 사람의 죽음과 그 깊은 절망을 몇 마디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남겨진 가족들을 향해 왜 미리 눈치채지 못했느냐고 은근히 책임을 묻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겪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혼란을 진심으로 헤아리려 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에게도 주변에 다 꺼내 놓지 못하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감추어져 있을 수 있다. 늘 주변 사람을 돌보며 위로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의 어려움에는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홀로 지쳐가고 있을 수 있다. 고통은 대개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웃고 있다고 해서 “저 사람을 괜찮겠지”라고 쉽게 단정하지 말고, 상대의 마음을 더욱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성경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속으로 통곡하는 아픔’도 알아채시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도 아신다. 세상은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에만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남몰래 겪는 외로움과 말 못할 고통을 결코 주님의 긍휼에서 제외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막연한 위안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과 절망이 결코 마지막이 아님을 보여 주셨다. 상처입은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참된 믿음은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눈물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곁을 말없이 지켜주는 일이다.

오두막을 떠나 호수를 향해 걸어갈 때 아침 햇살이 비친다. 닉은 아버지에게 여자들은 아이를 낳을 때 언제나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산모의 남편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죽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닉은 아버지에게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평화로운 호수와 떠오르는 태양,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며 ‘자신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확신한다.

우리가 서로의 아픔과 인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는 있다. 잘 모를 때에는 먼저 묻고 들어 주면 되고, 침묵이 길어질 때에는 조심스럽게 안부를 건네면 된다. 누군가의 아픔을 눈치채면 그 이유를 성급히 판단하거나 재촉하지 말자.

우리의 이해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우리 손의 힘만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다 메우기에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기를 멈추거나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도움의 길을 함께 찾으며 그의 곁을 지켜 줌으로 주님의 긍휼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세상이 미처 알아주지 못해 방치된 고통까지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오늘도 마음이 상한 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하시며 아파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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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겠습니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대답을 재촉하지 않은 채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깊은 슬픔이나 상실을 겪는 사람에게 고통의 원인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함께 고민하고, 적절한 돌봄과 따뜻한 손길을 건네며, 섣부른 판단보다 진실한 경청과 작은 관심으로 주님의 긍휼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 눈에 보이는 일에만 마음을 빼앗겨 제 곁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지나쳤던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는 겸손히 침묵하며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이들을 주님의 긍휼로 품어 주시고, 그들이 홀로 아픔을 감당하지 않도록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허락 하소서. 저 또한 연약할 때 강한 척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와 이웃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오늘은 저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힘과 따뜻한 위로가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