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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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의 주인공 작가 해리는 아내 헬렌과 아프리카로 사냥여행을 떠났다. 해리는 야생동물을 사진에 담으려다 가시에 무릎을 긁혔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적절한 소독과 치료를 하지 않아 결국 괴저로 악화된다. 자동차마저 고장 나 병원으로 갈 수도 없다. 구조 비행기를 기다리며 헬렌이 정성껏 돌보지만, 돌아온 것은 가시 돋친 말이었다. 해리는 죽음의 공포보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들과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그를 깊은 고통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는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게 해 줄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전쟁과 가난, 사랑과 상실을 경험했고, 세상 곳곳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는 늘 ‘다음’으로 미루어 왔다.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는 동안 미뤄 둔 수많은 이야기들의 소재가, 죽음 앞에서야 선명하게 떠오른다. 글 쓸 재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글 쓰는 것을 미루어왔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짓누른다.
우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미안함, 차마 건네지 못한 고마움, 시작했다가 포기한 도전, 고백하지 못한 사랑과 회복하지 못한 관계들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과거를 돌아보면, 급한일을 핑계로 정작 중요한 것들을 뒤로 미룬 채 살아온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럴 때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너는 이미 너무 늦었어”라는 내면의 소리가 우리를 절망케 만든다.
해리는 자신의 삶이 잘못된 이유를 아내의 풍요로운 삶 탓으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는 헬렌에도 사랑과 상실의 역사가 있었다. 고통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지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게 만드는 이기심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절망과 후회와 아픔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줄 권리가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절망에만 머물지는 않는 길이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반복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사람, 재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사람, 쉴 곳을 찾아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초대다. 주님께는 감추고 싶은 허물과 실패까지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희망은 찬란한 과거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있다. 그분은 우리가 놓친 수많은 시간까지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너무 늦었다고 낙심하는 순간에도 돌아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넓게 열어 두신다.
물론 은혜가 잃어버린 과거를 바꾸어주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힌 사람에게는 사과해야 하고, 방치한 일의 결과는 겸손히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과거의 고통이나 슬픈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장을 후회와 자책으로 마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회개인데 회개는 잘못이 있는 자신을 한없이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피하지 않고 주님이 내미시는 손을 붙드는 일이다.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허용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 잘못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훨씬 더 크고 깊다는 복음의 소식이다.
소설의 마지막 환상속에서 해리는 구조비행기를 타고 자신이 누워있던 평원에서 벗어나 눈부시게 하얀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향해 날아오른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평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헤밍웨이는 해리가 구원받았다고 그려내지 않는다. 정상을 향한 비행은 해리가 이루지 못한 이상의 빛이자 죽음 앞에서의 간절한 갈망으로 남는다. 소설의 결말에 억지로 행복한 의미를 덧씌울 수는 없지만, 이 비극을 읽는 우리에게 아직 ‘오늘’이라는 기회가 주어져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로 어제의 허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고, 차마 하지 못했던 사과를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희망의 날이 될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된다. 글 한 줄 정도의 소박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솔직한 사과면 충분하다. 몸이 약해져 더는 큰일을 이룰 수 없는 날이 와도 우리의 존재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만큼 이루어 내는가로 사랑의 크기를 정하지 않으시고, 우리 존재 자체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혹시 오늘 내 마음속에 “너무 늦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보다 더 깊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은혜 안에서 시작하면 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겸손히 그분 손에 맡기면 된다. 해리가 환상으로 바라보던 흰 눈 쌓인 정상보다 더 큰 소망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따스하게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품이다. 인생의 마지막 장이 두려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결코 내쫓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으나 뒤로 미뤄 온 일 하나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미안하다는 사과나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 등, 용기를 내어 오늘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에도 자책과 정죄대신 그 아픔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정직하게 아뢰겠습니다. 또한 가까운 이들이 건네는 나에 대한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함으로 응답하며, 결과를 서두르기보다 진실하게 시작하는 데 마음을 두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후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질 때에도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소서. 제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게 하시고, 겸손히 돌이켜 회개하며 용서하고, 사랑할 기회가 남아 있는 오늘, 담대히 한 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일어설 힘조차 없는 날에도 제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붙들게 하소서. 남은 삶을 두려움보다 감사로 살게 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손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어진 오늘을 새로운 은혜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감사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