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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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일본어역 「フランシス・マカンバーの短い幸福な生涯」를 읽고 쓴글)〉의 주인공 프랜시스는 서른 다섯살의 부유할 뿐 아니라 운동신경도 뛰어난 건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그는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매여 살아간다. 특히 아름답고 세련된 아내 마거릿에게 무시당하고 비난받는 것을 극도의 수치로 여기며, 그녀를 잃을까 불안해 갈등이 생겨도 쉽게 맞서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산다.
자신이 용감한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는 전문 사냥꾼인 윌슨의 도움을 받으며 사냥을 나간다. 사자에게 총을 쏘아 맞추었지만 사자가 즉사하지 않고 숲으로 숨어 버린다. 부상당한 사자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쫓아가라는 윌슨의 말에 공포가 밀려왔지만 겁쟁이라는 사실이 아내에 들킬까 두려워 결국 숲에 들어간다. 하지만 갑자기 달려드는 사자의 위용 앞에 결국 도망 쳤고, 윌슨은 그를 대신하여 사자를 사살한다. 죽음은 면했지만 아내와 윌슨 앞에서 비겁함이 드러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난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비겁했던 순간을 지워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내가 두려워하거나 쩔쩔매는 일을 남들이 쉽게 해낼 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을 실망 어린 눈빛을 의식하기 쉽다. 한 번 실패임에도 영영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위축감으로 우리는 두려움에 대해 솔직해기보다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곤 한다.
프랜시스는 사자를 피해 도망쳤던 수치심과 당시의 두려움을 아내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마거릿은 남편의 약점과 실패를 감싸기보다 비웃음으로 그의 수치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나의 약점까지도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이 나를 지켜주지 않을 때, 사랑받고 싶은 사람 앞에서 초라 해지는 슬픔은 실패 그 자체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결국 이렇게 함께 있어도 외로운 소통이 끊긴 관계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을 보시며 왜 똑바로 서지 못하느냐고, 왜 더 밝게 밝히지 못하느냐고 다그치지 않으신다. 패자에게는 손가락질을 하고 승자에게는 큰 박수를 보내는 세상과는 달리, 하나님은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신다. 세상에서는 연약함이 버림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바로 그 연약함이 크신 사랑을 경험하는 자리가 된다.
다음 날 프랜시스는 아내에 대한 분노, 윌슨에 대한 질투, 자신이 느꼈던 수치심을 안고 위험천만한 물소 사냥에 나선다. 분노와 질투가 힘이 되어 맹렬히 돌진하는 물소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뜻밖의 용감한 자신을 발견하며 강렬한 자유와 기쁨을 맛본다. 아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윌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비로소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프랜시스를 향해 달려드는 물소를 향해 쏜 아내의 총탄에 맞아 프랜시스는 숨을 거두고 만다.
작품의 제목이 슬픈 것은 그가 얻은 행복이 너무 순간적이고 허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옥죄던 두려움에서 벗어났지만, 그 기쁨을 아주 잠시밖에 누리지 못했다.
사자를 피해 달아났던 프랜시스는 가치 없는 사람이었고, 물소 앞에서 용감히 섰던 프랜시스는 귀한 사람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의 존엄은 성공이나 실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용감한 때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여 넘어졌을 때에도,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릴 때에도, 강함을 증명해내지 못한 날에도 사람의 가치는 여전히 존귀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매일 바뀔 수 있는 세상의 성적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혹시 주변으로부터 많은 비난과 정죄를 들으며 살아왔기에, 마음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넌 왜 그 모양이니”라는 핀잔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는 주님의 약속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도 강함을 증명한 이들이 아닌, 실패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셨다. 베드로의 허물과 실패를 최종평가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도리어 재기와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아 주셨다.
우리도 서로에게 “두려움을 고백하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라고 다그치기보다, 먼저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 “실패한 누군가를 추궁하기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약한 모습으로도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오늘 나도 프랜시스처럼 부끄러움과 수치의 아픔 앞에 서 있다면 기억하자. 강해지기 위해 또 다른 사자나 물소를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잘해 낸 모습을 증명하려 억지로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떨리는 손 그대로, 상한 마음 그대로 나아가면 된다. 하나님은 꺾인 갈대를 버리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불씨를 조용히 지키신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실패자’라 낙인 찍는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라 부르신다.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삶은, 잠깐의 성공이나 성취로 얻는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깊고 오래가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오늘의 실천
오늘은 용기를 내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는 실수나 실패의 기억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비난하고 자책하기보다 “그때 많이 두려웠구나. 하지만 그일로 너의 가치는 변함이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들려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이 저의 상한 마음을 여전히 붙들고 계심을 기억하겠습니다. 혹 누군가가 자신의 약함을 털어놓는다면 섣부른 충고나 평가부터 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겠습니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말로 그에게 안전한 그늘이 되어주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 실패했던 순간들을 자꾸 떠올리며 수치심과 두려움에 떠는 저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을 두려워해, 아프면서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다그치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넘어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시고, 제 곁의 연약한 사람에게도 따뜻한 말과 안전한 자리를 내어 주게 하소서. 꺼져 가는 믿음의 불씨를 지켜 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강함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나와 이웃을 부드럽게 대하는 사랑을 실천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