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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2026년 10월 13일 묵상

오늘의 말씀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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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바리새 여인(일본어 역 『パリサイの女』을 읽고 쓴 글) 』의 주인공인 브리지트 피앙은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늘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그녀는 연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열심으로 봉사하며, 주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긴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옳고 그름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정작 상대의 처지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주변사람들은 가슴으로 품어야 할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잡아 주어야 할 지도의 대상에 불과했다. 의붓아들 루이의 교사인 퓌바로와 봉사 동역자인 옥타비가 사랑에 빠지자, 결혼보다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 옳다고 단정하며 둘의 관계를 강력히 반대한다.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이 결혼하자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그들을 괴롭혔고, 결국 옥타비는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또한 의붓딸 미셸의 연애를 방해함은 물론, 그 사랑을 지지하던 칼루 신부를 교구의 상부에 고발하여 사목지를 잃게 만든다. 남편 옥타브 피앙에게는 전부인의 불륜을 고발하여 깊은 충격을 안겼고, 낙심한 남편은 술에 빠져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만다

브리지트의 문제는 선을 행하지 않은 데 있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해야 하고, 그릇된 선택을 하는 가족에게는 진실을 전해야 하며, 미성숙한 신앙인에게는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을 뿐이다. 그녀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의 숨통을 조였고, 그녀의 옳은 말과 진실은 상대를 살리는 위로가 아니라 가슴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브리지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대의 연약함이나 불순종 때문이라며 합리화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며 개입한 결과로 남편과 동료가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이 상처받아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확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왜 저 사람들은 바르게 살지 못할까?”라며 타인을 향했던 질문이, “혹시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너무 가볍게 판단하고 말해 온 것은 아닐까?”라는 자책의 질문으로 바뀌어 간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그녀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신앙과 선행이라 믿었던 모든 언행이 실상은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앙인에게 회개가 이토록 힘들고 아픈 이유는, 내가 악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여겼던 언행 속에 진정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브리지트 역시 자부해 온 신앙의 실체를 깨닫고 깊이 무너진다. 그녀는 사죄를 구하기 위해 칼루 신부를 찾아가지만, 도리어 칼루 신부는 그녀에게 조건 없는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준다. 브리지트는 자신이 몰아세우고 고발하여 깊은 상처를 주었던 이가 자신을 정죄하지 않고 품어주는 모습을 보며, 평생 타인을 가르치기만 했던 자기야말로 하나님의 자비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판단하고 윽박지르던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나야 말로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이후 늦은 나이에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를 향해 사랑을 품게 되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통해 깊은 상실을 겪으면서, 브리지트는 사람의 마음이 단순한 규율이나 규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그리고 타인의 연약함 뒤에는 수많은 외로움과 두려움이 숨어 있음을 가슴으로 헤아리게 된다.

모리아크는 브리지트를 과거의 허물을 한순간에 털어내고 완벽해진 인물이나, 깨어진 삶이 드라마틱하게 회복된 성인(聖人)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옳다”며 타인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이제는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설 수 없다”는 겸손의 자리에 서게 된다. 교만의 자리에서 타인을 판단하던 신앙이, 눈높이를 낮추어 아파하는 이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신앙으로 내려온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다. 맞는 말을 사랑 없이 건넬 때 그 온기 없는 정답이 상처를 남긴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확신이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상대가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옳은지보다, 그 옳음 속에 사랑이 얼마나 담겨 있었는지를 물으신다.

브리지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주는 이유는, 비록 변화가 늦었을지라도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물을 깨달은 날은 곧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미 상처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고, 너무 쉽게 판단해 왔다면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품어주면 된다. 지나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깨달음을 발판 삼아 타인을 사랑으로 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있다.

은혜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겸손히 인정할 때 흘러들어오는 사랑의 힘이다. 브리지트가 배운 것은 사람을 고치고 바르게 매질하는 법이 아니라, 조용히 그 사람 곁에 머물러 주는 법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누군가를 바로잡으려는 차가운 정답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 곁에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따스한 긍휼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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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은 “내가 맞다”는 생각보다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이 힘들까”를 먼저 헤아려 보겠습니다.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한 번 더 침묵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저에게도 똑같은 연약함이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혹시 제 무심한 언행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변명대신 반성과 사과를 선택하겠습니다. 저의 옳음을 증명하기보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 한마디와 따뜻한 행동을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은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형편을 들어주는 사랑을 연습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옳음을 붙들다가 사랑을 놓치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분아래 제 생각과 기준을 강요했던 순간들을 돌아봅니다. 제 안의 오만과 교만을 보게 하시되 자책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용서받은 사람 답게 참고 기다리는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사람의 허물보다 그의 아픔을 먼저 보게 하시고, 충고보다 경청을, 판단보다 긍휼을 선택하게 하소서.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상처 입은 사람 곁에 머물 줄 알게 하시고, 이미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겸손히 사과할 용기도 주소서. 오늘 제 말과 표정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가 정죄가 아니라 위로를 경험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