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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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Le Baiser au lépreux (한국어 번역이 없어 일본어 역 『癩者への接吻: 나환자를 향한 입맞춤』을 읽고 쓴 글)에는 평생을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다라고 믿었던 장 펠루에르가 등장한다. 그는 부유한 가문의 외아들로 상당한 토지와 재산을 물려받을 운명이었지만 왜소한 체구와 움푹 패인 볼, 길고 뾰족한 코 등 불쾌감을 주는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상처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보다 “과연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오래된 열등감과 두려움이었다.
그런 장에게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소녀 노에미와의 결혼 기회가 찾아온다. 장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지만, 사실 노에미는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문의 기대와 신앙적 의무감 때문에 이 결혼을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결혼 후 노에미는 좋은 아내가 되려고 애쓰지만, 장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본능적으로 밀려드는 거부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장은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장을 사랑할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매일 바라보아야 했다.
처음에 장이 바란 것은 단 하나, 노에미가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질문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까?”에서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나로 인한 아픔을 덜 수 있을까?”로 바뀐다. 그는 자신이 곁에 있으면 시들어가는 꽃같이 되는 노에미가,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란 상대를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임을 배운다. 결국 그는 노에미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아침 일찍 사냥을 나갔다가 늦게 돌아왔고, 급기야 지역사 연구를 핑계로 파리로 떠나버린다.
노에미는 장이 없는 동안 몸과 마음의 생기를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젊고 건강한 의사에게 잠시 마음이 흔들리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끌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지만 이는 동시에 깊은 죄책감과 혼란을 불러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장은 노에미에게 더 이상 억지로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에미는 귀환하는 장을 위해 역까지 마중 나가지만, 장은 건강을 핑계로 아내와 각방을 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불쌍히 여겨 베푸는 동정의 입맞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장은 자신이 돌아오자 다시 수척해지는 노에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장은 노에미 몰래, 결핵으로 죽어가던 마을 청년 로베르의 병상을 아무도 모르게 매일 찾아간다. 자신의 몸 역시 약하여 전염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로베르를 간호한 데에는 “죽어가는 로베르의 외로움을 위한 실제적인 자비”와 “내가 세상을 떠나면 노에미가 자유로워 질것”이라는 서글픈 마음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완벽한 성인이 아니었기에 때로는 심하게 질투를 느꼈고 노에미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현실이 두려웠다. 그러나 바로 그런 연약함 속에서도 장은 조금씩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바라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장도 결핵에 걸려 건강이 빠르게 악화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에미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는 남편의 손길조차 힘들어했던 그녀가, 이제는 그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의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젊고 매력적인 의사의 호감에도 노에미의 마음은 죽어가는 장에게만 향한다. 장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나는 노에미에게 사랑받고 있다” 사실을 비로소 믿으며 눈을 감는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을 때 상대를 잡으려 하지만, 참된 사랑은 움켜쥐었던 손을 놓아줄 때 오히려 더 깊어진다. 나를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마음이 상대를 살리는 방향으로 바뀔 때, 사랑은 소유가 아닌 배려가 되고, 나의 아픔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헤아리는 통로가 된다.
우리도 누군가로부터의 거절과 무관심을 자기 존재의 가치로 받아들이며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죄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반응이 내 존재 전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 상처가 많고 서투를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배워갈 수 있으며,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은혜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내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는 변화다. 사랑받기 위해 움켜쥐었던 손을 조금 펴서 누군가를 지켜주는 손으로 바꾸는 것이 장이 생의 마지막에 배운 사랑자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이다.
그래서 『나환자를 향한 입맞춤』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불쌍한 이를 긍휼히 여기는 동정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 안에 수많은 연약함과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끝까지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진정한 사랑은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족함과 실패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여전히 사랑을 배워가는 중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위해 변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당신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한 번 더 들어주고, 성급히 판단하지 않으며, 상처 입은 사람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선택이야 말로 누군가를 살려내는 거룩한 사랑이 된다.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느라 지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겠습니다. 상대가 내 기대대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를 더 평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충고하기보다 한 번 더 들어주고, 판단하기보다 기다려 주며, 가까운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따뜻한 친절을 건네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얻으려 애쓰다 쉽게 상처받고,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상대를 소유하려 했던 저의 이기적인 마음을 돌아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까지 품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저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다른 사람 역시 제 기대와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받기 위해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남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