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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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사랑의 사막』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 간절함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해 오해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년의 의사 폴 쿠레주는 가족이 있음에도 진실한 대화가 부재한 가정 안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어린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여인 마리아 크로스를 알게 된다. ‘정부’, ‘타락한 여자’,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는 세상의 정죄와 소문 너머에 숨겨진 그녀의 깊은 상처와 고독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기에, 폴은 마리아를 깊이 사모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선뜻 고백하지 못한 채, 그저 존경받는 의사와 조언자의 자리에 머문다.
뜻밖에도 폴의 열일곱 살 아들 레몽 역시 마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전차 안에서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던 마리아의 시선은 방황하던 소년에게 “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강렬한 경험이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단순한 관심과 애정을 넘어 남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마리아를 여자로서 소유하려는 충동이 섞여 있었다. 반면 마리아가 보낸 시선은 레몽의 젊음과 순수함, 아직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은 소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죽은 아들에 대한 모성적 감정이었다. 레몽이 성급하고 거칠게 다가가자 마리아는 결국 그를 밀어내고, 레몽은 “남자로서 거절당했다”는 수치심과 분노를 가슴 깊이 품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물이 없어서 사막이 아니라, 물이 흘러갈 길을 찾지 못해서 사막이 된다”는 『사랑의 사막』의 서글픈 진실이 드러난다. 마리아를 마음 깊이 사모하던 폴에게는 사랑을 표현할 용기와 방법이 부족했고, 뜨거운 열정으로 다가섰던 레몽에게는 기다림과 성숙함이 부족했다. 그리고 사랑에 굶주린 마리아 역시 자신의 상처와 환상에 갇혀 두 사람의 진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들 가슴속에 사랑이 없어서 사막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서로에게 전달될 길을 찾지 못하고 갇혀버렸기 때문에 영혼의 사막이 된 것이다.
우리의 관계속에도 사랑하지 않아서 멀어지기보다는, 사랑하면서도 서로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부모의 진심 어린 염려가 자녀에게는 간섭으로 들리고, 배우자의 순수한 질문이 상대에게는 불신으로 오해받으며, 상대를 배려한 누군가의 침묵이 서운한 무관심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의 크기 못지않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려는 지혜를 배울 때 비로소 깊어지고 숙성된다.
마리아에게 거절당한 그날 밤, 레몽은 아버지 역시 같은 여인 때문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만 어린 소년은 아버지를 자신과 같은 한 남자로 이해하지 못한다. 레몽은 마리아에 대한 분노속에 일종의 복수심으로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버리며 17년 지난 어느 날 파리에서 부유한 마담 라루셀이 된 마리아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 폴과 함께 오래된 기억의 궤적 앞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 역시 자신처럼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였지만, 실패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외로워했던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서 모리아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부자간의 안타까운 사랑과 갈망을 넘어,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혼 깊은 곳에서 사랑의 밀물을 부르시는 ‘그분’의 존재를 암시한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아무리 뜨겁고 진실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영혼의 깊은 갈증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 폴에게도 레몽에게도 마리아는 결코 인생의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복음이 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다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다. 사랑하는 법을 몰라 사막 한가운데서 방황하던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다가와 사랑을 베푸셨다. 단지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죄와 실패, 깊은 상처까지 다 짊어지신 채 십자가에 오르셨다. 십자가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내신 생명의 길이며, 목마른 영혼을 향해 흐르는 은혜의 강물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무작정 “사랑하라” 고 율법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선포한다. 우리는 먼저 사랑받음으로써 비로소 참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 무한한 용서를 경험했기에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고, 온전히 받아들여졌기에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주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역시 누군가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혹 “그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했더라면”하는 후회가 지난날의 모습에 오랫동안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지라도, 그 후회의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은 겸손히 돌이켜 회개하고, 사과할 누군가가 있다면 오늘 손을 먼저 내밀면 된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지나간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과 아쉬움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면 된다.
소설의 마지막, 떠나가는 늙은 아버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역으로 달려가는 레몽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랜 오해나 인생의 문제들이 한순간에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멈추어 있던 부자의 사랑이 아주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의 회복도 이처럼 시작된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랑하는 방식은 오늘부터 새로워질 수 있다.
사랑의 사막에서 우리가 끝내 만나야 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낌없는 사랑을 먼저 경험한 사람만이, 누군가에게 참된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메말라 죽어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삶의 사막 한가운데로 다시 배운 사랑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실천
오늘 제 삶에서 사랑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라고 묻기 전에 “내가 보지 못한 그 사람의 외로움은 무엇일까?”라고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음을 기억하며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제가 먼저 건네겠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라면 자책하며 정죄하기보다 그 후회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따뜻하게 사랑하겠습니다. 오늘의 작은 한마디가 메마른 관계에 새로운 물길을 여는 시작이 되도록 기도하며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아버지, 제 방식대로만 사랑하고 상대의 아픔을 충분히 보지 못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루지 못한 사랑과 늦게 깨달은 마음, 전하지 못한 말과 오래된 후회까지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제가 주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저를 찾아 사랑하셨음을 더 깊이 깨닫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바라보며 판단보다 이해를, 소유보다 기다림을, 상처보다 긍휼을 선택하게 하시고, 먼저 받은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게 하소서. 오늘은, 제 마음의 메마른 자리에도 주님의 생명의 강물이 흐르게 하시고, 그 은혜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