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고린도전서 13: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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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제니트릭스』는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외아들 페르낭은 어머니 펠리시테 카즈나브에게 있어서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남편보다 아들이 중요했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들에게서만 찾았다. 그렇기에 페르낭이 쉰 살이 넘어 결혼했을 때, 그녀는 며느리 마틸드를 아들을 빼앗아 간 원수이자 경쟁자로 여긴다.
페르낭 역시 어머니 품에서 독립하지 못했다. 그는 마틸드의 남편이기보다 여전히 어머니의 어린 아들로 머물러 있었다. 외로움 속의 마틸드는 아이를 잃고 병에 걸려 쓰러지지만, 펠리시테는 “저 여자가 사라지면 아들이 내 품으로 돌아오겠지”라는 집착과 욕심을 품는다. 그러나 마틸드는 세상을 떠나지만, 펠리시테가 원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페르낭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아내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며느리만 사라지면 아들을 되찾을 줄 알았던 펠리시테는 결국 아들의 마음까지 잃고 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 눈에 띄지 않는 늙은 하녀 마리 드라도스가 있다. 그녀는 펠리시테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지배할 힘도 권리도 없기에, 그녀가 중요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니트릭스』에서의 가장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마리다. 그녀의 사랑에는 말 대신 침묵이 담겨 있으며, 그 침묵이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린다. 펠리시테는 페르낭이 무엇을 해야 할지, 심지어는 무엇을 먹고,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를 정했다. 아들을 보호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아들의 삶을 소유하려는 통제다. 반면 마리는 자신이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상대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다. 말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침묵해야 할 때도 있다. 내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상대의 분명한 잘못에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다. 침묵은 내 판단과 충고, 분노를 내려놓고 상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리는 페르낭의 이기심도, 어머니에게 매여 살았던 무력함도, 사람들을 밀어내는 모습도 모두 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재판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억지로 파헤치려 들지 않고, 그저 오래 견디고 기다린다. 마리의 인내는 아무 감정 없이 무감각하게 견디는 것도, 상처받지 않아서 참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입었음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상대가 즉시 변하지 않아도, 어제의 친절을 오늘 보답받지 못해도 그 사람을 끝내 버리지 않는 마음이다.
마리의 돌봄이 페르낭의 과거를 되돌릴 수도, 이미 세상을 떠난 마틸드를 되살릴 수도, 펠리시테가 남긴 깊은 상처를 지워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다린다. 결과를 내 손으로 만들려는 기다림이 아니요, “언젠가는 내 말을 듣겠지”라며 상대의 변화를 강요하는 이기적인 기다림도 아니다.
모든 것을 잃은 페르낭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고독 속으로 자신을 가둔다. 누군가 그에게 “네가 그렇게 살았으니 당연한 결과다”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돌아온 마리는 한 마디의 비난도 건네지 않고, 페르낭의 이마에 따뜻한 손을 얹는다. 설명을 요구하거나 사과를 받아내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이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도 말하지 않고 그저 그의 곁을 지킨다.
이것이 바로 침묵하는 사랑의 힘이다. 상대를 압도하지 않고, 상대에게 빚진 마음을 만들지도 않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와 잘못을 마주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때로는 많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같은 잘못을 반복할 때도 바로 버리지 않으신다. 결코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시지는 않지만, 돌이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시고, 참고 기다리시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 두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오해할 때가 많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아무리 기다려도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낙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버림이나 외면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가 거목을 지탱하듯,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그 분의 은혜는 우리를 아주 단단하게 붙들고 있을 수 있다.
마리의 침묵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상대를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침묵이다. 포기나 체념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인내다.
사랑할수록 자꾸 말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배우자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싶고, 자녀에게 바른 길을 위해 충고하고 싶으며, 부모나 형제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사실 그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교한 논리가 맞서는 말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침묵한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약하기에 참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내가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강한 사람이다.
『제니트릭스』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지배했던 펠리시테가 아니라, 가장 오래 참고 가장 적게 말했던 마리다. 그녀는 소유하려 하지 않았기에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에도 마리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지켜주는 ‘마리’가 되라고 하시는지도 모른다. 성급하게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그 사람이 일어설 때까지 그저 사랑으로 오래 곁을 지키는 사람 말이다.
은혜는 큰 기적보다 조용한 손길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많은 말보다 한 사람의 기다림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난 것 같이 느껴지는 서러운 순간에도, 아무 말없이 내 곁에 다가와 이마에 따뜻한 손을 얹어 주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혹시 제가 제 뜻을 너무 많이 강요하거나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겠습니다. 충고하고 판단하고 제 생각을 설명하기 전에 한 번 더 인내하며 입을 다물겠습니다. 당장 변화시키려 하지 애쓰기보다 하나님께 맡긴 채 기다리겠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설픈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네가 필요할 때 내가 곁에 있을게”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곁에 머무는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제가 너무 쉽게 타인을 판단하고 성급히 말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제 뜻대로 통제하고 바꾸려 했던 이기심을 돌아봅니다. 마리처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주소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하게 하시고, 상대가 당장 변하지 않아도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주님께서 저의 수 많은 허물을 오래 참아 주신 것처럼, 저도 누군가의 고단한 삶 곁을 조용히 지켜 주는 은혜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