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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2026년 10월 6일 묵상

오늘의 말씀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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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독을 품은 뱀(일본어역 『蝮のからみ合い』를 읽고 쓴 글)』은 가족을 불신하며 평생을 살아온 한 노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루이는 성공한 변호사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지만 마음은 가난하다. 아내 이자가 자신과 결혼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었다고 오해하고, 자녀들은 자기가 죽은 뒤 받을 유산에만 관심이 있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마음을 닫고 돈을 무기로 삼으며, 죽은 뒤에도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 쓰기 시작한 편지가 이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고백으로 변한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 아내에게 받았다고 생각했던 상처, 유일하게 사랑했던 딸 마리의 죽음 등. 간혹 마음을 열었던 사람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리고 루이는 자신이 외로운 것이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특히 더 오래 남는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한 말은 잊을 수 있어도 부모의 질책, 배우자의 무시, 자녀의 차가운 말, 형제들로부터 받은 배신은 지워지기는커녕 세월이 지나며 더욱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사랑했던 만큼 아프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별의 슬픔보다 살아 있음에도 서로 멀어진 관계가 더 아플 때도 있다. 같은 지붕아래에 살면서도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고, 연락처는 있으나 연락할 마음이 없고, 만나야 함에도 자존심과 상처 때문에 도무지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도 있다.

사별의 상실도 있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 자녀, 형제자매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잘해 줄걸”, “내가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했을까”, “그 때 그 부탁을 들어줄걸” 하는 후한이 남는다.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슬픔위에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은 물론 나에 대한 자책과 원망까지 뒤섞인다. 사랑했지만 미웠고, 보고 싶지만 서운했고, 용서하고 싶었지만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마음이 뒤엉켜 있다.

루이가 사랑했던 어린 딸 마리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나마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도 하나씩 떠났다. 하지만 그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충분히 애도하기보다 더 사랑하면 또 잃을 것 같았기에 마음을 더욱 굳게 닫았다. 결국 상실의 슬픔은 어느새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원망이 되었으며, 원망은 가족 전체를 향한 미움이 되었다.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 대신 화가 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고, 가족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너무 서운하여 다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사랑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왜냐하면 상처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뒤엉킨 마음을 아신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로 상처를 덮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있다면 이제 그만 울라”고 재촉하지도 않으신다. 우리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 떠나간 사람에게 아직 남아 있는 원망, 마지막 순간에 하지 못한 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후회까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가 왜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 아시기 때문에 상한 마음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다.

상처가 모두 사라진 뒤에 루이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내 이자가 세상을 떠나고, 복수해야 할 대상조차 사라진 뒤였다. 그는 그제야 상처 가득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만 피해자였는가? 혹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그를 조금씩 자유롭게 만든다.

특히 루이는 외손녀 자닌의 아픔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평생 “누가 나를 사랑했는가”만 묻던 루이가 “저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픈 과거를 지울 때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처로 인해 닫혔던 마음이 누군가의 눈물을 볼 수 있게 될 때 치유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이 땅에서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멀어진 가족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이전 기억에 영원히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지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아픈 과거를 품고도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다.

루이는 자신이 평생 원했던 것이 돈이나 복수가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마음속에 독사들이 엉켜 있는 듯한 뒤엉킨 미움도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수는 없어도, 그 사람과의 기억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는 있다. 한 하늘아래 살면서도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가족이 있어도 오늘 미움 하나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주님, 언젠가 용서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다 풀지 못해도 괜찮다. 아무리 뒤 엉킨 실타래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풀지 못한 자리에서도 일하신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가족에게 받은 상처도, 아직 풀리지 않은 원망도 주님께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던 것은 상처가 아니라, 그 상처보다 뒤 깊은 곳에 숨겨진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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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마음속에 가장 그리운 사람, 혹은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픈 가족 중 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서운함을 구분하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겠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이라면 하지 못했지 꼭 하고 싶은 말을 기도로 고백하겠습니다. 살아 있는 가족이라면 당장 화해하지 못할지라도, 오늘 그 사람을 향한 미워하는 마음 하나만이라도 주님께 맡겨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슬픔과 가족에게 받은 오래된 상처를 주님께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움과 원망, 미안함과 후회가 뒤엉킨 제 마음을 외면하지 마시고 부드럽게 만져 주소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오늘까지 무너지지 않게 하시며, 아직 풀지 못한 관계와 용서하지 못한 마음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오늘은 제 상처보다 더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사랑을 다시 발견하고, 사랑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