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편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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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헤르만 헤세의 시 「단계(『유리알 유희』에서 크네히트의 유고작품으로 실려 있는 시)」는 우리의 인생을 여러 개의 계단으로 바라본다. 한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계절이 오듯, 한 자리를 떠나야 비로소 새로운 자리가 열린다고 노래한다. 하지만 다음 계단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상실의 그늘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노래가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잃은 마음의 크기가 너무 클 때, 앞으로 다가올 계단을 바라보기보다 지난 계단을 돌아보는 일이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는 다양한 상실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사별의 상실, 오랫동안 좋았던 관계가 깨지는 상실, 건강을 잃어 몸을 예전처럼 쓸 수 없게 되는 상실, 익숙하던 터전이나 직장에서 떠나야 하는 상실이 있다.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면서 생기는 빈자리의 상실도 있으며, 가슴 깊이 간직했던 꿈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상실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젊음과 체력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것, 익숙했던 집과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지는 것, 신뢰하던 사람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것, 첫사랑의 신앙을 잊고 기도마저 차갑게 식어가는 것도 우리 영혼에 깊은 상실의 흉터를 남길 수 있다.
상실은 “이제 나는 결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든 순간에 찾아온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이 슬프고 허전해지며, 예전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왜 나는 아직도 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라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상실의 크기를 결코 숫자로 비교하거나 줄 세우지 않으신다. 누군가에게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세상의 전부를 잃은 것처럼 무겁고,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건강이,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친 일터를 떠나는 것이, 혹은 끝내 꽃피우지 못한 꿈이 마음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은 상실이 남긴 그 아픈 빈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만, 결코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며 빨리 괜찮아지라고 재촉하지 않으신다.
시 「단계」가 말하는 ‘떠남’도 지나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한 계단을 뒤로하고 올라섰다고 해서, 그 곳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계절을 통과하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나를 떠난 사람도, 지나간 시간도, 이루지 못한 꿈도 모두 내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부이다. 상실을 극복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가슴에 품는 법을 새롭게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없지만 그가 남겨준 사랑의 온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터에서는 물러났지만 그곳에서 익힌 지혜와 경험은 내 삶에 묻어 있다. 몸은 쇠약해졌을지라도 아픔을 건디며 얻은 영혼의 깊이는 짙어 졌고, 자녀는 품을 떠났지만 함께했던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끝내 이루지 못한 꿈조차, 그 꿈을 위해 흘렸던 땀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기에 결코 헛된 것은 없다.
우리가 상실의 터널 속에서 신음할 때, 하나님의 그 고통의 이유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려 하지 않으신다. 대신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오시며 깊은 탄식으로 공감해 주신다. 나사로를 다시 살려낼 것을 미리 알고 계셨는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해서 슬픔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 아니며, 소망을 품었다고 해서 눈물이 마르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믿음은 슬픔을 없애는 마술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믿는 거룩한 담대함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다음 단계로 빨리 달려가지 않아도 괜찮다. 소중한 이와 사별했다면 마음을 추스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건강을 잃었다면 달라진 몸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가 끝났다면 마음의 앙금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며, 오랫동안 머물던 자리를 떠났다면 “이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물으며 잠시 멈춰 설 시간이 필요하다. 품안의 자녀를 떠나보냈다면 적막해진 빈 방과 조용해진 집에 익숙해지는 시간 또한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멈춰 서서 우는 시간을 결코 낭비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우리가 디뎌야 할 다음 계단이 반드시 거창하고 눈부신 새 출발일 필요는 없다. 오늘 아침 숫가락을 들고 밥 한 술을 뜨는 것,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 것,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을 하나 해보는 것,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감사했던 것을 조용히 추억하는 것, 차마 기도가 나오지 않아도 예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작은 발걸음이 이미 신실한 ‘다음 계단’이다.
헤세는 인생의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우리는 그 이상을 믿는다. 비로 내 눈에는 다음 계단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 먼저 가셔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 지금 절망하여 멈춰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상실을 너무 빨리 잊으려 애쓰지 말자. 슬픈 것은 슬픈 대로, 아픈 것은 아픈 대로 하나님께 가져가면 된다. 무너진 꿈은 무너진 대로, 끝난 관계는 상처입은 대로, 달라진 몸과 비어버린 자리는 빈자리 있는 그대로 주님께 보여드리면 된다.
소중한 것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따뜻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내가 지금 여기에서도 너와 함께 있단다”라고 조용히 속삭이신다. 오늘은 그 인자한 속삭임 하나만 품고 살아가도 충분하다.
오늘의 실천
오늘은 제 삶에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사람, 건강, 관계, 시간, 역할, 꿈, 젊음, 그리고 익숙한 일상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돌아보겠습니다. 그 중 제 마음에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긴 것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빨리 괜찮아지려 서두르지 않고, 오늘 제가 디딜 수 있는 한 계단만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상실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대신 따뜻한 마음으로 곁에 있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 삶에서 사라진 것들과 달라진 것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떠나간 사람, 상처입고 끝난 관계, 잃어버린 건강과 역할, 이루지 못한 꿈과 지나간 세월까지 제 모든 상실을 주님께 맡깁니다. 빨리 괜찮아지지 못하는 저를 스스로 책망하지 않게 하시고, 빈자리 속에서도 여전히 저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느끼게 하소서. 오늘을 겸손히 살아낼 힘과 다음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