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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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는 세대를 건너 되풀이되는 아픔의 계승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젊은 싯다르타가 진리를 찾기 위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는 장면과, 훗날 아버지가 된 싯다르타에게서 그의 아들이 떠나는 장면이다. 긴 세월의 간극을 사이에 둔 이 두 사건을 통해, 싯다르타는 오래전 자신을 떠나보내며 눈물지었을 아버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젊은 싯다르타는 브라만인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이 있었다. 그는 진리를 찾아 숲 속의 고행자의 삶을 살겠노라 결심하고, 허락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방에 밤새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의 몸은 붙잡을 수 있어도 이미 길을 떠난 마음까지 붙잡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벽녘, 아버지를 뒤로하고 길을 나서는 싯다르타는 자식을 떠나 보내고 남겨진 아버지의 밤이 얼마나 외롭고 아팠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수많은 방황끝에 강가로 다시 돌아온 싯다르타는 그곳에서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이전의 연인 카말라와 재회하고, 지금 함께 온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슬픔속에서도 자기 앞에 남겨진 아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풍요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가난한 뱃사공이 된 아버지를 조롱하며 사랑을 거부한 채, 돈을 훔쳐 달아난다. 아들을 찾아 과거 카말라와 함께 살았던 장소까지 간 싯다르타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오래전 자신이 아버지에게 남겼을 깊은 상처를 떠올리며 조용히 강으로 발길을 돌린다.
싯다르타는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버지에게 준 상처와 아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진짜 사랑은 상대를 내 뜻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어둔 채 떠날 자유까지 인정해 주는 것임을 배운다. 사랑은 때로는 꼭 붙잡는 것보다 가만히 놓아줄 때 더 깊어지며, 기다리는 침묵 속에서 더 오래 남는다.
비로소 그는 자신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자신을 떠나보낸 아버지도 이렇게 아팠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머리로 알던 사랑이 가슴의 통증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살다 보면 세월이 흐른 뒤에 비로소 이해가 되는 사랑이 있다. 자신이 동일한 상황이 되어야 부모가 왜 그렇게 애타게 걱정했는지, 왜 기다렸는지, 왜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비춰준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과 내 길을 더 믿으며 떠날 때가 많다. 지금의 이곳보다 저 먼곳이 더 자유로워 보이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판단이 더 옳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는 우리를 보시면서도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아버지처럼 떠나는 아들을 억지로 막지 않으시되, 돌아오는 길도 늘 활짝 열어 두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알아보고 달려간 것은, 아버지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집착이나 소유욕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 주시는 깊은 사랑이다. 우리의 마음이 멀어진다고 하나님의 사랑도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지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해도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신다.
우리 삶에도 누군가를 그렇게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자녀가 내 뜻대로 살지 않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멀어질 때, 진심 어린 권면조차 외면당할 때가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억지로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기도하며 조용히 기다려주는 인내다. 싯다르타가 아들을 놓아주며 아버지의 마음을 배웠듯, 우리도 기다림의 아픔 속에서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신실한 사랑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같이 보이는 우리 자신도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자주 떠나고 방황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헛된 길을 헤매다 상처입고 지친 뒤에야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다.
그러나 우리의 방황이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는 것, 실패가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이 주는 최고의 위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떠나기 전에도 아버지였고, 먼 나라에서 방황하는 동안에도 아버지이며, 마침내 돌아오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이 멀리 떠나 있는 나를 바라보아도 너무 늦었다고 절망하지 말자. 아버지는 아직 그 자리에 계시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까맣게 타고 있다면, 그 기다림마저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우리보다 더 오래 기다리셨고, 우리보다 더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천
오늘은 제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기다림과 사랑을 돌아보겠습니다. 특히 부모님과 가족에게 받았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겠습니다. 또한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기도하겠습니다. 혹시 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부분이 있다면, 숨기거나 주저하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 아뢰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제가 멀리 떠나 방황할 때에도 변함없이 기다려 주셨던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조급해 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사랑으로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인내를 주소서. 싯다르타가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았듯, 저도 삶의 아픔과 기다림을 통해 주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더 깊이 알게 하소서. 오늘도 여전히 두 팔을 벌리시고 기다리시고 저를 맞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기꺼이 달려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