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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묵상

오늘의 말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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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헤르만 헤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개인과 사회라는 틀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었으나, 『로스할데(일본어역 湖畔の家―ロスハルデ를 읽고 쓴 글)』는 그 갈등이 가장 밀접한 관계인 가정과 결혼 안으로 들어온다. 주인공 요한 페라구트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화가이지만, 그의 사적인 삶은 차갑게 식어 있다. 아내 아델과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파탄에 이르렀고, 두 사람은 '로스할데'라는 넓은 저택에 함께 살면서도 분리된 삶을 살아간다. 페라구트는 화실에 자신을 가두고, 아내 아델은 본채에 머물며 서로를 외면한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의 마음 사이에는 깊은 침묵의 단절이 놓여 있다.

이 얼어붙은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는 작은 아들 피에르다. 큰아들 알베르트가 아버지를 경계하며 차갑게 대하는 것과 달리, 피에르는 아버지의 화실과 어머니의 본채를 자유롭게 오가며 절망적인 공간을 이어준다. 피에르는 페라구트가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희망이었고, 부부가 완전히 갈라서지 못하고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관계를 끝내지도 그렇다고 다시 회복하지도 못한 채 정체된 삶을 이어간다.

우리의 일상과 관계 속에도 이러한 '로스할데'가 존재하곤 한다. 같은 공간에서 살고 같은 식탁에 앉아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마음은 이미 멀어져 버린 관계다. 큰 다툼이나 갈등이 없기에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사랑이 남아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의무를 이행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페라구트에게 화실은 고립된 섬과 같았다. 관계는 뜻대로 되지 않고 상처를 주었지만 캔버스만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림은 그의 재능이자 삶의 빛이었지만 동시에 아픈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였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화실'이 있다. 직장 일이나 취미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봉사나 종교 활동일 수도 있다. 관계가 힘겨워질수록 자신이 잘해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숨어들며 관계가 주는 아픔과 허전함을 잊으려 애쓴다. 그러나 정작 마주해야 할 사람과의 거리는 더욱더 멀어질 수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피에르가 병에 걸린다. 처음에는 병처럼 보였지만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마침내 페라구트와 아델은 아들의 죽음 앞에 함께 앉게 된다. 오랫동안 다가가지 못했던 두 사람은 마침내 같은 공간, 같은 아픔을 공유하지만, 메말라 버린 사랑이 순식간에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죽어가는 순간 페라구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지난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도,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자신이 받은 상처와 불행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고통받는 아이만을 가슴에 품고 집중한다. 그 순간 그는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나 소유가 아니라, 상대의 아픔 곁에 머물며 함께 아파해하는 '긍휼'임을 깨달는다.

사랑은 가까운 거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는 것, 미안함과 고마움을 묵혀두지 않고 표현하는 것, 마음이 멀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살아있는 사랑이다.

페라구트는 장례를 치르는 순간에도 참았던 눈물을 아이가 놀던 작은 모래삽을 발견하는 순간 쏟아내고 만다. 곁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로스할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후회하며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 곁에 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사도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도 그랬다. 그분은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고단한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져야 할 무거운 죄와 상처의 짐을 친히 감당하셨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아두고 미뤄왔던 "미안해", "고마워",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들지?", "네가 내 곁에 있어 주어서 참 다행이야"라는 진실한 언어와 작은 행동이다. 페라구트와 아델은 너무 늦게서야 서로의 상처와 마음을 바라보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오늘'이 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이 아직 내 곁에 있다면, 오늘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비록 관계가 당장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안의 쓴 뿌리와 미움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깨어지고 아픈 관계 속에서도 우리를 더욱 진실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다듬어 가신다. 사랑을 잃어버린 뒤에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내 곁에 있는 이들을 긍휼히 바라보고 가슴으로 품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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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 저는 늘 곁에 있지만 너무나 익숙하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루었던 사람을 온 마음으로 섬기겠습니다. 내면에만 가두어두었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먼저 표현하며, 그동안 차마 전하지 못했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겠습니다. 혹시 풀리지 않은 가슴속 앙금이나 원망이 있다면 당장 모든 상황을 바꾸려 하기보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안의 서운함과 완악한 자존심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멀어져 있던 저의 무관심한 관계들을 겸손히 돌아보게 하소서. 사랑하면서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먼저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기만을 바라며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저의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소서. 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아픈 관계 속에서도 미움 대신 주님의 은혜를 선택하게 하소서. 오늘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