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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7일 묵상

오늘의 말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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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헤르만 헤세는 『페터 카멘친트』에서 세상으로 나가 방황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청년을 그렸다면, 그의 초기 대표작인 『수레바퀴 아래서(일본어역 車輪の下를 읽고 쓴 글)』에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기회조차 충분히 얻지 못한 한 소년의 비극을 그린다. 한스 기벤라트는 주인공은 뛰어난 재능 때문에 아버지와 교장, 목사와 교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영리하고 성실한 소년이다.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한 기대가 조금씩 한스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한스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어린 시절의 친구 아우구스트와 만들었던 토끼장을 제 손으로 부순다. 시험에 온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그는 이미 주변 어른들의 가치관을 성과 중심의 태도를 자기 안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려운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여 어른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하지만 원하는 목적을 이루고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한스의 얼굴에서는 생기가 사라져 갔다.

한스는 그곳에서 시를 좋아하고 규율보다 자유로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유분방한 친구 하일너를 만난다.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한스 안에 오래 눌려 있던 감성과 열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와 교사들은 이런 변화를 성장으로 보지 않고 나태와 탈선으로 보았다. 한스의 집중력이 약해지고 성적이 떨어지자, 교사들은 원인을 찾기보다 예전처럼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질게 질책한다.

그 장면 교장은 한스에게 “지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가게 되네”라는 냉정한 말을 건넨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된다는 뜻이었지만, 정작 한스를 짓누른 것은 바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무자비한 수레바퀴였다. 수레바퀴는 내 사정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또 다른 바퀴와 반드시 같은 속도로 굴러갈 뿐이다.

우리도 이런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고 있을 수 있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 맡은 일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이다. 이러한 태도가 겉으로는 성실함과 열정의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어느새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는 수레바퀴가 되는 순간 우리는 편히 쉬는 것조차 불안해하고, 한번의 실패로 자기 존재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한스의 가장 큰 비극은 아무도 그에게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적이 떨어져도 괜찮다고,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네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세상의 기준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도 너는 이미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없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라고 선포한다. 세상의 기준이라면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은 이미 가치를 상실한 절망적인 상태에 불과하다. 세상은 “곧게 서 있지 못하는 갈대와 밝게 타오르지 못하는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상했다고 꺾지 않으시고, 약해졌다고 버리지 않으시며, 빛이 작아졌다고 불을 끄지 않으신다. 오히려 꺾이지 않도록 붙드시고, 남아 있는 작은 불씨를 보호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강할 때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착각한다. 기도를 잘하고, 믿음이 좋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하고,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가 있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약해졌을 때, 오히려 우리의 고통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다.

한스 주변의 어른들은 한스의 능력을 보고 장래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이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조건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능성이나 성취가 아니라, “너는 어떤 순간에도 변함없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고 존재를 인정하신다.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요, 가시적인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품으시는 것도 아니다. 보여드릴 것이 없는 날에도, 쓰러져 넘어져 기도하지 못하는 날에도, 실패하여 창피함을 느끼는 날에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도 누군가는 한스처럼 자신이 지쳤는지에는 무심한 채 무자비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지 모른다.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이고, 책임은 줄어들지 않으며,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면의 에너지는 이미 바닥나 버려 마음은 오래전부터 지쳐 있을 수 있다. 남아 있는 힘이 없는데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예수님은 “힘을 내서 한 발만 더 나아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양팔을 벌려 환영하셨다. 주님께 가는 것은 결코 패배나 무능함이 아니다. 잠시 쉬는 것도 믿음이요, 내 힘으로 안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 역시 믿음이다. “주님, 이제는 너무 힘이듭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진실한 기도다.

한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자기 존재를 성적과 상관없이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받아주는 누군가의 품이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바로 그 품을 내어주시는 주님이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유능하고 훌륭한 모습을 보일 때만 귀히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 진흙투성이인 우리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상해도 결코 꺾지 않으시며, 작은 불씨를 끝까지 지켜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라고 하신다. 자녀에게, 가족에게, 친구나 동료들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말보다 “괜찮아, 네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해”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훌륭한 충고가 아니라 숨 쉴 공간을 주는 말 한마디다.

오늘은 열심히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혹시 나 자신이 그 수레바퀴 아래에 있다면, 억지로 일어나 뛰려고 하기보다 주님의 인자하신 손에 잠시 기대어도 좋다. 상한 갈대를 결코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네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먼저,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고 속삭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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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천

오늘은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을 성과와 결과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지쳐 있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고 재촉하기보다 “많이 힘드셨지요. 잠시 쉬어도 괜찮습니다”라는 쉼의 말을 건네겠습니다. 실패와 부족함으로 지쳐 있는 나 자신을 위로하며, 오랫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고 약속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저의 무지함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지쳤을 때 숨기지 않고 주님의 품에 기대게 하시며, 제 곁의 지친 사람도 성과가 아닌 한 영혼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있는 그대로 품으시는 주님의 한 없는 은혜 안에서 쉼을 누리는 평안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