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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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일본어역 郷愁를 읽고 쓴 글)』는 1904년에 출간되어 젊은 헤세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이끈 작품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보다 앞서 발표된 이 초기작에는 훗날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로 이어지는 헤세 문학의 결정적 씨앗들이 담겨 있다. 산악마을을 떠나는 고독한 청년, 자연과 방랑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열망, 사랑과 잇따른 상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기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향의 여정이다.
산골에 살던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는 산과 호수와 같은 자연을 좋아하며, 특히 구름을 사랑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는 서툴렀지만 자연 앞에서는 마음을 활짝 연다. 구름의 움직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산의 침묵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시인이 되어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취리히와 파리, 이탈리아를 떠돌며 문학과 예술을 접하고 우정을 나누며 사랑에 빠기도 하지만, 그의 삶에는 슬픔과 상실이 계속된다. 가장 아끼던 친구 리하르트가 갑작스럽게 죽고, 사랑했던 여인들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내면의 외로움은 가시지 않는다. 자연은 여전히 그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영혼의 깊은 고독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페터의 삶에 신체적 장애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보피’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페터 역시 그가 불편하여 거부감을 느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놀라운 진실을 발견한다. 가진 자신보다 가진 것도 없고 몸도 불편한 보피가 오히려 더 자주 웃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페터는 연약한 보피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젊은 페터가 꿈꾸던 사랑은 아름다운 대상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것이었지만, 보피를 통해 깨달은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의 불편함과 슬픔을 함께 견뎌내는 것이었다. 상대의 느린 걸음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며, 이기적인 마음으로 떠나고 싶은 순간에도 곁에 머물러 주는 일이었다. 페터는 보피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와 함께 삶을 나누고, 그의 몸이 쇠약해질 때도 변함없이 곁을 지키며, 보피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함께한다.
우리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방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말수가 줄어든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마음이 지친 이에게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것, 반복되는 부탁에도 귀찮아 하지 않고 응하는 것, 누군가의 아픔 곁에 조용히 머무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한일을 해야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다고 오해할 때가 많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멀리 있는 꿈이 아닌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로 돌리신다.
원대한 꿈을 품고 떠났던 페터 역시 결국은 자신이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늙은 아버지를 정성껏 돌보고, 어려움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정성껏 돕는다. 젊은 날에는 산골 마을을 벗어나야 비로소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버리고 떠났던 그 자리에서 삶의 숭고한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외면하고 떠나온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화려하지 않아서 외면했던 자리,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과 사랑을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구, 소외되어 도움이 필요하지만 번거롭게 느껴져 멀리했던 누군가의 곁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방황하게 하셨다가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도 하신다. 때로는 방황과 실패의 시간까지도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실패했던 사랑도, 아픔을 주고 깨어진 관계도, 외로이 견뎠던 시간도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의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의 짐을 지라고 하지 않으신다. 다만 오늘 내 곁에 맡겨진 한 사람의 짐을 나누어 지라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하는 길이다. 예수님께서도 힘든 우리를 하늘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비참한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수수방관하지 않으시려 친히 십자가를 지셨으며, 우리가 지치고 연약할 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는 거룩한 실천이다.
페터는 위대한 시인이 되고자 세상으로 나갔지만, 정작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한 사람을 돌보면서 가장 큰 지혜를 배웠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보다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것보다 삶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거창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답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기 전에 오늘 내 곁의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의 무거운 짐 하나를 함께 들어주는 것, 그리고 쉽게 돌아서지 않고 그의 곁에 더 오래 머물러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며, 동시에 우리를 누군가의 위로가 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오늘의 실천
오늘 저의 시선을 멀리 있는 위대한 일에서 돌려, 하나님께서 제 곁에 맡겨 주신 한 사람을 바라보겠습니다. 힘들어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작은 부탁이라도 번거로워하지 않고 기꺼이 도우며, 오늘 하루 누군가의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함께 지는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는 멀리 있는 아름다운움만을 바라보며 정작 제 곁의 사람에게는 무심했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런 저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한결같이 곁에 머물러 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누군가의 아픔 곁에 머물려 삶의 짐을 나누어 함께 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돌봄과 인내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