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
오늘의 묵상
『대지』의 작가 펄 벅은 중국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동서양 두 문화의 경계 위에서 성장했다. 선교사의 딸이자 한때 직접 선교사로도 사역했던 그녀는 훗날 서구의 전형적인 선교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펄 벅이 어머니의 전기 『The Exile (일본어역 母の肖像를 읽고 쓴 글)』에서 기록한 어머니 캐럴라인 사이든스트리커의 삶은, 표면적으로는 헌신적인 선교사 아내의 모습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짙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들이 숨어 있었다.
젊은 시절 캐럴라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면 그분을 더 깊이 경험하리라 믿고 중국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감동적인 결실만이 아니었다. 병으로 세 명의 자녀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남편이 전도를 위해 장기간 집을 비운 동안 홀로 남아 슬픔을 안은 채 가정을 지켜내야 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 모든 희생을 원하시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솟구쳤다.
이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나 반항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한 인간이 드린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탄식이었다.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은 의문을 품지 않고 묵묵히 참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지만, 성경의 인물들을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욥도 하나님을 향해 물었고, 다윗은 울부짖었으며, 예레미야도 자신의 고통을 토로했다. 심지어 십자가 위의 예수님조차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다. 진정한 믿음이란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숱한 질문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다.
그녀의 신앙은 이 시련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변해갔다.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거대하고 많은 희생을 바치는가'에 집중했으나, 수많은 상실과 아픔의 터널을 지나면서 그녀의 시선은 비로소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하기 시작했다. 병든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눈물, 가난한 이웃,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던 여성들의 아픔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단순한 '복음 전도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자신과 똑같이 아파하는 사랑하는 존엄한 인간으로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간 아름다운 신앙의 변화였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눈으로 평가하는 눈부신 업적이 아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누군가를 온전히 돌본 그 숨은 사랑을 바라보신다. 아픈 아이 곁에서 밤새 기도했던 시간, 가족을 위해 말없이 흘린 눈물, 외로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 귀한 시간과 따뜻한 밥 한 끼를 기억하신다. 세상 역사는 눈에 보이는 숫자와 업적은 기록하고 소박한 헌신은 쉽게 잊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기억에는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캐럴라인의 생애를 깊이 묵상할 때 얻는 또 하나의 통찰은 참된 헌신이란 자신의 존재나 인격을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앙이라는 거룩한 이름 아래 자신의 아픔을 무시하고 가족의 상처를 외면하며 무조건 참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맺어 주신 가족은 결코 대립하는 적이 아니다.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하면서 먼 곳에 있는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허상일 수 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어디에도 완벽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경계에 서 있었던 캐럴라인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어느 정도는 '타향살이를 하는 순례자'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고하고 움켜쥐었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야 하는 나그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소유와 명예를 쌓았느냐가 아니다. 이 땅을 지나가는 동안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누구의 아픔 곁에 함께 머물러 주었는가가 핵심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화려한 이력 대신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기고 온기를 나누었는지를 물으실 것이다. 딸 펄 벅이 어머니의 전기에 『The Exile(타향살이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캐럴라인의 생애에는 후회와 풀리지 않은 의문,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만 선택해 쓰시는 분이 아니다. 수많은 질문과 의문 속에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기 앞에 놓인 한 사람을 묵묵히 돌본 사람을 사용하신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세상의 모든 의문이 풀리거나 삶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한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주님은 작은 베풂조차 당신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쁘게 받아 주신다.
오늘 하루, 우리 삶에 거창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그저 지금 내 곁에 주어진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면 된다. 가족에게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말을 건네고, 외로운 이웃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길을 내밀고,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충분하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가”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거대한 일을 요구하기보다 우리 곁에 살며시 한 사람을 보내시며 "이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사람에게 베푼 사랑이 바로 주님께 드린 가장 고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천
오늘은 ‘어떤 위대하고 큰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제 곁에 맡겨 주신 사람들을 먼저 바라보겠습니다. 가족이나 이웃 가운데 외로움이나 힘겨움 속에 있는 이가 있다면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걸고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들어주겠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며 무심코 지나쳤던 가족들의 수고에도 잊지 않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정작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겠습니다. 사명과 사랑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겸손한 마음으로 내 곁의 사람들을 귀하게 대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돋보이는 거창한 일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사랑을 기쁨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큰일과 결과에 연연하여 정작 가까운 이들의 아픔에 무관심했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이웃을 돌본 캐럴라인처럼, 오늘 제 곁에 보내주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 정직하게 질문하되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게 하시고, 사명을 핑계로 가족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소서. 거창한 업적을 이루려 조급해하기보다 외롭고 아픈 자 곁에 머물며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인생의 마지막 날 성취보다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오늘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주님께 드리는 사랑임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