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편 131편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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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의 4장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에서 저자는 예민한 사람의 피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심리학의 ‘영향력 편향’과 ‘초점주의’를 언급하며, 우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지금의 한 가지 사건이 앞으로의 삶 전체를 오랫동안 괴롭힐 것이라고 실제보다 부풀려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참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화가 나도 웃어야 하고, 서운함이 밀려와도 괜찮은 척해야 하며,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는 불편한 감정도 절제하지만, 그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결과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는 무탈한 하루같이 보여도, 사실은 온종일 수없이 감정을 누르고 조절하느라 우리의 영혼은 이미 지쳐버렸다.
마음이 크게 흔들리 순간에는 그 순간의 감정이 마치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서운한 말 한마디에 그 사람과의 오랜 관계 전체가 무너진 것 같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다 보면, 오지 않은 미래마저 이미 실패로 끝난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현재 마주한 단 하나의 사건에 마음을 빼앗겨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은혜와 소중한 일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기 쉽다. 그 하나가 내 감정에 미칠 영향과 그 감정이 지속될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길게 부풀려 지기 때문이다.
오늘 누군가로부터 들은 기분 상하는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해서, 내 인생 전체가 결코 그 한마디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오늘 실패한 일이 하나 있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이 실패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에는 이런 진실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때로 민감한 이들의 마음속 감정의 파도는 지나치게 높게 일어난다. 누군가의 작은 표정 변화가 마음에 오래 남고, 자신이 던진 말을 여러 번 곱씹으며 “혹시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자책한다. 시계 바늘은 이미 지나갔건만, 끝난 일들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반복된다.
물론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이 정도 일로 화내면 안 되지”, “왜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하며 자신을 다그치며 애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받은 상처 위에 또 하나의 상처를 덧입히는 격이다. 일어난 사건 때문에 한 번 아프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비난하느라 또 한 번 스스로를 아프게 만드다.
감정을 잘 다룬다는 것은 감정을 억지로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다. 화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이나 슬픔을 전혀 느끼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되, 그 감정이 내 영혼의 모든 판단과 진실을 대신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일이다.
“지금 나는 화가 나 있다”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지금 나는 불안하다”와 “앞으로 반드시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역시 다른 말이다.
“지금 나는 서운하다”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역시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감정은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지만, 판결문은 아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경고등이 하나 들어오면 차량상태를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하지만, 경고등이 하나 켜졌다고 차 전체가 고장 난 것이 아니듯 말이다. 감정이라는 신호를 무작정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오직 그 신호만 바라보며 내 인생을 운전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잠시 미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극도로 화가 순간에 상대에게 절교를 선언하지 않고, 깊이 낙심한 날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실패로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 지면, 지금까지는 감정에 가려 보이지 않던 진실과 은혜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다”고 고백한다. 이는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거세게 흔들리던 영혼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안식하는 모습이다. 마음의 고요함은 내 앞은 문제를 모두 해결되어야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지라도, 모든 결론을 지금 당장 내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급함에서 한 걸음 물러설 때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과 염려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실제로 일어난 객관적 사실”과 “내가 거기에 부여한 주관적 해석”을 구별하여 적어보라. 분명 그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속에서는 곧 닥칠 현실처럼 보였던 두려움들이, 종이 위에 옮겨지는 순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인 판단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평안을 얻게 된다.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수록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은 뾰족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요근래 유난히 짜증이 많아졌다면, 내 성격의 결함을 책망하기에 앞서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긴장한 채 내몰려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영혼에도 숨을 쉴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이 절실하다.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실제다. 그러나 그 감정이 말하는 이야기가 곧 ‘진실’은 아니다. 내 감정을 존중하되, 조급해지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기다려 주자. 아무리 높은 감정의 파도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같은 높이로 머물러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천
오늘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생겨도 즉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나의 주관적 해석”을 구별하며 제 감정을 정확하게 관찰하겠습니다.
화가 치밀거나 갑자기 불안이 엄습할 때는, 중요한 결정이나 관계에 대한 최종 판단을 잠시 미루겠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책망하기 보다, “내 마음이 지금 이런 상태구나”라며 인정해 주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 마음을 가장 많이 힘들게 했던 감정의 짐 한 가지를 기록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때로 사소한 일 하나로 제 마음 전체가 영향을 받아, 그 순간의 감정으로 제 삶 전체를 어둡게 판단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제가 느끼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그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되 감정에 끌려 다니며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지혜를 주소서.
마음이 흔들릴 때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 잠시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주시고, 사실과 두려움의 원인을 구별할 수 있게 하소서.
흔들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저 스스로를 혹독하게 심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하시며, 제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오늘 제 영혼이 젖 뗀 아이처럼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감정과 문제는 주님 손에 맡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