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편 23~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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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면 유난히 지치고 상처받았던 사람이 ‘HSP’라는 개념을 접하면, “아,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내가 이상하거나 유별난 게 아니었어”라며 마음의 짐을 벗게 된다. 시끄러운 환경이 힘들었던 이유, 타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공기의 흐름까지 지나치게 신경 쓰였던 이유,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며칠씩 마음에 품고 곱씹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예민하다’라는 단어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예민함은 단순히 “오감이 민감하다”가 아니라, 작은 변화도 알아차리는 세심함, 현상의 이면을 깊이 살펴보는 신중함,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에 대한 공감 능력,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나 자연을 접했을 때 느끼는 감동을 오래 간직하는 정서적 풍부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즉, 예민함은 흠이나 결함이 아니라 세상을 더 섬세하고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감각이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피곤한 이유는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 분위기와 같은 많은 정보를 읽고 처리하느라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민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내게 이름표를 붙이지 않고, 실제로 내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살피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시편 기자는 “나는 내 마음을 완벽히 잘 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소서”라고 고백한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욕구일 수 있다. 책임감이라며 행동했지만 사실은 버림받거나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일 수 있다. 배려라고 여겼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습관 때문일 수 있으며, 신중함이라고 포장했지만 실패가 두려워 결정을 미루는 회피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민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두려움과 상처, 잘못된 습관들도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이끄신다. 정죄나 책망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그것 들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예민함은 흠이나 약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는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세심함은 아파하는 누군가의 그늘을 발견하는 따뜻한 눈이 되기 때문이다. 깊이 사색하는 성품은 성급한 판단으로 인한 갈등을 막는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마음은 외롭고 고통받는 이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재능이 되기 때문이다. 음악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하는 마음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주는 은혜의 저수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할 때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한다.
첫째는 모든 것을 약점으로 여기며 “나는 왜 이렇게 유별날까”, “왜 이렇게 예민하여 편하게 살지 못할까”라며 자책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까지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문제를 기질 탓으로 돌리며 “나는 원래 예민하니까 어쩔 수 없어”라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예민함은 짜증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뛰어난 공감 능력은 책임감의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질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 안에서 성숙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 앞에서 누군가가 오늘따라 말수가 적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저 사람이 오늘은 평소보다 조용하네? (세심하게 본 사실)”,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내 마음의 두려움이 만든 해석)”, “내가 저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고 웃게 만들어야 해(타인의 영역까지 내가 책임지려는 과몰입)” 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분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타인의 변화를 세심하게 느껴도 그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을 수 있고,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의 감정적 짐을 대신 짊어지지 않을 수 있다. 사랑하면서도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내 영혼과 상대방을 모두 살리는 사랑이다.
또한 예민함은 부정적인 자극에도 작동하지만, 좋은 것에는 훨씬 더 깊이 반응한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이 자리잡아 삶을 버티는 큰 힘이 된다. 자연과 함께한 잠깐의 시간으로도 깊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수많은 상처를 견뎌낼 수 있다.
그러므로 예민한 사람에게는 의도적으로 좋은 것들을 가까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말씀을 가까이하고, 따뜻한 사람과 교제하며, 마음을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시편 139편의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생각을 통찰하시며, 우리의 모든 길을 이미 익히 알고 계신 분이다. 나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내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신다. 사람들이 “너는 너무 예민해”라고 평가할 때의 힘들었던 마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마음속 수고까지 주님은 모두 다 알고 계신다.
예민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민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사랑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아시고 받아 주시며, 사랑과 지혜 안에서 다듬어 가실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활짝 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내게로 흘러 들어올 것이다.
오늘의 실천
타인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알아차렸을 때(사실), 내 마음의 불안이 만들어낸 오해(해석)를 분별하여, 타인의 감정을 모두 내 짐으로 떠안지(책임) 않겠습니다.
불안, 우울, 집중의 어려움이나 피로가 지속될 때 "나는 원래 예민해서 그래"라며 단정하지 않고,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정직하게 살피며 필요한 도움을 받겠습니다.
나쁜 자극을 피하는 것은 물론 내 영혼을 살리는 좋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가까이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나조차 설명하기 어려웠던 내 마음을 드립니다.
‘예민함’이라는 이름표로 인해 저를 한계에 가두지 않게 하시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동기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소서. 예민함으로 알게 된 사실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제 짐으로 여기는 우로 인해 스스로를 지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예민함을 통한 세심함과 깊은 생각, 풍부한 감정을 흠으로 여겨 자책하지 않게 하시고, 고통받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오만과 잘못된 습관은 겸손히 고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고유한 모습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용기도 주소서.
오늘은, 나를 완전하게 이해하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