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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일 묵상

오늘의 말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오늘의 묵상

철학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웃음(파이돈)』의 1장「희극적인 것 일반에 관해서」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웃음은 단순히 우연한 실수나 재미있는 상황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기계적인 모습이 드러날 때' 발생한다고 했다. 본래,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다. 주변 상황을 살피고, 마음으로 느끼며, 관계 안에서 유연하게 반응해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현실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고, 상대의 마음이 달라졌는데도 같은 말만 반복할 때,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베르그송은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장면을 예로 든다. 일부러 넘어졌다면 웃기지 않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면 웃는다. 그 사람의 몸이 변화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멈추거나 피해야 하는데, 몸이 기계적으로 계속 밀고 나간 결과다. 베르그송은 바로 이런 유연함의 부재, 즉 '경직성과 자동성'이 웃음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신앙도 처음에는 살아 있는 만남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말씀이 마음을 찌르고, 기도가 눈물이 되고, 예배가 감격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덧 기도는 습관이 되고, 찬양은 순서가 되며, 말씀은 지식으로 박제되고 섬김은 의무가 된다. 입술은 여전히 "주님"을 부르지만, 기대와 감동은 사라지고 예배는 영적 경직성에 빠져 반복적인 종교적 행위가 된다.

또한 베르그송은 웃음에는 '감정의 거리두기'라는 차가운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가 넘어져 크게 다친다면 그의 아픔에 공감하며 웃지 않고, 오히려 돕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본다면 웃음이 생긴다. 비웃음이다. 세상의 시선은 이처럼 냉정하여 우리의 허물을 보고 비웃거나 부끄럽게 만들어 고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우리의 형식적인 기도, 습관적인 예배, 굳어진 마음, 반복되는 자기 의를 모두 아시지만, 결코 우리를 비웃거나 외면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우리를 다시 살리시려는 애틋한 사랑으로 우리 안의 굳어진 부분을 보게 하신다. 비웃음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사랑으로 깨워 회복시킨다.

베르그송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다양한 감정과 마음의 움직임을 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늘 불평하는 얼굴, 늘 화난 얼굴, 늘 자기만 옳다는 얼굴, 늘 남을 판단하는 얼굴은 그 내면이 굳어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의 신앙적 표정은 어떠한가? 겉으로는 경건한 얼굴을 하지만, 메마른 마음속에는 긍휼이 없을 수 있다.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눈빛에는 날카로운 판단이 가득할 수 있다. 예배당 안에서는 거룩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가정에서는 차갑고 무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라 굳어진 '종교적 가면'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경건해 보이는 겉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부드러워진 상한 심령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문제는 그들의 '굳은 마음'이었다. 안식일 규정을 철저히 지켰지만, 안식일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은 보지 못했다. 정결 규례는 악착같이 지켰지만,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은 알지 못했다. 십일조는 철저히 드렸지만,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놓치고 있었다. 베르그송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살아 있는 신앙 위에 기계적인 형식을 덧씌운 사람들'이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의 연수가 더해질수록 익숙함이 은혜를 대신하기 쉽다. 많은 지식이 쌓일수록 겸손은 밀려나고, 반복되는 봉사는 사랑을 지운다. 마음이 실리지 않은 신앙적 언어들이 고백의 자리를 가로챈다. 영혼의 울림 없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고, "은혜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에 감사가 없을 수 있다. 신앙적인 말이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자동으로 나오는 말버릇이 될 때, 우리의 영혼은 굳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라고 다그치지 않으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굳어진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친히 찾아오셔서 새 영을 부어주시고, 그 마음을 기경(起耕)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는 다시 '살아 숨 쉬는 영적 존재'로 거듭난다. 매일 듣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콤하게 들리고, 타성에 젖은 기도에 뜨거운 마음이 실린다. 습관적인 예배의 자리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회복된다. 늘 함께한 가족도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되고, 판단하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되며,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의 아픔에 귀기울이게 된다. 굳어 있던 말에 따뜻함이 돌아오고, 마음 없는 섬김에 감사가 회복되며, 형식만 남았던 신앙에 생명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종교적 행위나 더 많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부드러워지는 마음, 즉 '살아 있는 믿음'이다. 주님은 우리 안에 기계처럼 굳어진 부분을 보게 하신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히 다시 살리시려는 사랑의 초대이다. 신앙은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경직된 종교인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신다. 주님의 은혜는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그렇게 부드러워진 마음은 우리를 다시 뜨겁게 사랑하게 만든다.

오늘의 실천

주님, 제 마음이 타성에 젖어 굳어지지 않게 하소서. 익숙함이라는 덫에 걸려 은혜의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 반복되는 신앙의 자리일지라도 살아 계신 주님을 매 순간 새롭게 만나게 하소서. 형식만 남고 사랑은 통째로 증발해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말은 많으나 마음은 돌같이 굳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제 안의 완악한 마음을 십자가의 보혈로 제거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 앞에 날마다 부드러운 순종의 마음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