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히브리서 4:12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웃음』의 2장「상황에 있어서의 희극적 요소와 말에 있어서의 희극적 요소」에서, 웃음이 단순히 사람의 몸짓이나 표정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말 속에서도 생긴다고 설명한다. 그는 삶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기계적인 구조와 영혼 없는 반복이 어떻게 희극성을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하며, 상황이 우스워지는 대표적인 원리로 '반복', '전도', '상호 간섭'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냉철한 철학적 통찰은 뜻밖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첫째 원리는 반복이다. 같은 실수와 오해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반복될 때, 인간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임이 미리 정해진 태엽이 감긴 기계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의 신앙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주일에는 뜨거운 은혜를 경험하고도 월요일이 되면 이전과 똑같은 염려와 분노의 굴레에 무너진다. 입술로는 "주님, 용서하소서"라고 고백하지만, 손과 발은 여전히 옛 습관의 방향을 향해 바쁘게 움직인다. 물론 신앙에서 거룩한 반복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배도, 기도도, 말씀 묵상도 반복을 통해 깊어진다. 다만 차이는 그 반복안에 진심이 있는가에 있다. 어제보다 더 겸손함으로 기도하고, 오늘의 나를 향해 들려오는 새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혼 없는 반복의 늪에서 벗어나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둘째 원리는 전도(顛倒)다. 전도란 원래 있어야 할 관계와 질서가 뒤바뀌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내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 때 신앙의 질서는 무너진다. 말씀을 나의 모난 모습에 비추어 나를 깎고 다듬는 거울로 삼기보다 남을 판단하는 칼날로 휘두를 때도 그렇다. 은밀한 섬김 속에서조차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욕심이 앞설 때, 섬김의 중심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나 자신으로 옮겨져 있다.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신앙의 기준으로 여겼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의로움과 종교적 체면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았다.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나'의 만족과 유익으로 바뀔 때, 우리는 스스로가 만든 종교적 구조 속에 갇힌 사람이 되고 만다.
셋째 원리는 상호 간섭이다. 베르그송이 말하는 상호 간섭은 하나의 말이나 상황이 서로 다른 두 의미 속에서 엇갈릴 때 생기는 희극성을 가리킨다. 겉으로 표현하는 말과 실제 마음의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모습이다. 내면에는 냉소가 가득하면서 입술로는 습관처럼 "사랑합니다"를 연발하고, 상대의 고난과 아픔을 마음에 품지 않았음에도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숨은 욕심을 "주님의 뜻"이라는 경건한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때, 우리의 영혼 안에는 깊은 어긋남이 생긴다. 영혼 없는 말이 일상어가 될 때 그 말은 생명을 잃는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내 가슴에 담지 않고 "기도하면 됩니다",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라며 기계적으로 던지는 정답들은, 도리어 상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만드는 차가운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기계적으로 대하거나 정해진 답으로 다그치지 않으셨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타는 목마름 같은 영혼의 갈증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며 생수를 말씀하셨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향한 정죄의 돌을 온몸으로 막아 내려놓게 만드시고, 그를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은혜와 진리로 일으켜 세우셨다. 쓰라린 실패로 절망하던 베드로에게는 책망 대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애틋한 질문으로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주셨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던져지는 차가운 문장이 아니라, 각 사람의 아픔과 목마름과 실패의 자리로 정확히 찾아오는 생명의 음성이었다.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메마른 종교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완악하고 굳어진 영혼을 부드럽게 깨운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고착화된 기계적인 반복과 주객이 전도된 질서는 없는지, 상대의 고통과 눈물을 담지 않은 채 습관처럼 던지는 말은 없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하신다. 하지만 이 질문은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정죄하여 주저앉히려는 것이 아니다. 영적 타성에 젖어 생기를 잃어가는 우리를 다시 살려 내시려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이자 부르심이다. 주님은 우리의 메마른 종교적 습관을 부드러운 은혜의 리듬으로 바꾸시고, 비뚤어진 중심을 바로 세우시며, 생기를 잃은 종교적 언어를 진실한 사랑의 고백으로 회복시키신다.
신앙은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연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인격적인 관계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며,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 너머에 있는 진짜 중심을 비추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익숙한 신앙의 표현 뒤에 숨지 말고, 살아 있는 말씀 앞에 자신을 정직하게 세워야 한다. 그때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입술을 사랑의 통로로 바꾸시고, 기계적인 반복을 진실한 순종의 몸짓으로 새롭게 하시며,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선하신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신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기계적인 반복에 머물던 제 신앙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익숙한 말 속에 진심을 담게 하시고,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신앙의 표현들이 마음 없는 말버릇이 되지 않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입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라는 말들 속에 참된 사랑과 믿음과 순종이 담기게 하소서. 제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찾는 제가 아니라, 주님의 뜻 앞에 저를 내려놓는 자가 되게 하시고,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방향과 삶의 순종이 하나 되게 하소서. 오늘도 들은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순종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