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전서 12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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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간장과 된장은 같은 콩에서 시작하지만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간장은 맑은 액체가 되어 음식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나물을 무칠 때도, 국을 끓일 때도, 생선을 조릴 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여러 재료의 맛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음식안에서 간장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빠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금세 알 수 있다. 된장은 다르다. 걸쭉하고 묵직한 상태로 국과 찌개의 중심을 이룬다. 색과 향을 감추지 않으며, 적은 양만 들어가도 음식의 성격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는다. 간장이 조용히 스며드는 맛이라면, 된장은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맛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간장과 된장이 전통적인 한국 장 담그기에서는 한 항아리에서 시작한다. 겨울이 되면 콩을 삶아 찧고 일정한 크기로 빚어 메주를 만든다. 메주는 따뜻한 곳에서 띄운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다. 겉으로는 단단한 콩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여러 미생물과 효소의 작용이 시작된다. 겨울이 지나면 잘 띄운 메주를 소금물에 담근다. 소금은 어떤 미생물들은 없애어 지나친 부패를 막고, 발효에 필요한 미생물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콩의 단백질이 분해되고 장 특유의 감칠맛과 향이 생겨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액체와 고형분을 나누는 장가르기를 한다. 액체는 따로 받아 가라앉히거나 달이고 더 숙성시키며 간장으로 사용한다. 건져낸 메주는 으깨고 간을 맞춘 뒤 다시 숙성시켜 된장으로 만든다. 같은 콩에서 시작하여 같은 항아리에서 같은 소금물을 마시고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하나는 맑게 흐르는 간장의 길을 가고 다른 하나는 묵직한 된장의 길을 가게 된다. 그렇다고 간장이 된장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된장이 액체가 되지 못한 실패작도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모습과 서로 다른 쓰임으로 한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서로 다르다. 같은 집에서 자라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비슷한 가르침을 받아도 성품과 재능, 관심과 삶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가는 길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동료와 협력하며 일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잘한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능하고, 어떤 사람은 시작된 일을 오랫동안 지켜내는 데 충실하다. 어떤 사람은 따뜻한 말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수가 적어도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는 이의 곁을 조용히 지켜준다. 어떤 사람은 방향을 제시하는데 능하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놓친 부분을 세심하게 잘 살핀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르고, 편안하게 느끼는 역할도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꾸 한 줄로 세우려 한다. 같은 나이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성공했는지, 형제 중 누가 더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었는지를 비교한다. 비슷한 곳에서 출발했다면 비슷한 결과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삶을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간장을 기준으로 된장을 평가한다면 간장처럼 맑게 흐르는 성질이 없는 된장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된장을 기준으로 간장을 평가한다면 간장은 형태도 없고 존재감도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간장과 된장은 서로를 닮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식재료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음식에 꼭 필요한 맛을 더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재능과 역할을 받았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가진 신비한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태도, 조직을 이끄는 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일하는 성실함, 이 모든 것이 공동체에 필요한 재능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간장과 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이어주고, 갈등을 중재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을 수 있지만, 혹 그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가 해온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된장과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분명한 생각과 책임감으로 공동체의 중심을 잡는다. 모두가 책임을 피하려 할 때 앞으로 나서고, 잘못된 일을 보았을 때 필요한 말을 한다. 사람들이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계속 요구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목소리가 분명한 사람에게 눈에 띄지 않는 것만이 겸손이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물론 조용한 성품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되며, 분명한 성품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된다. 타고난 기질과 재능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숙성되어져야 한다. 겸손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없는 것처럼 감추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오직 내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태도다. 사도 바울은 공동체를 하나의 몸에 비유했다. 눈은 볼 수 있지만 걸을 수 없고, 발은 걸을 수 있지만 볼 수 없다. 눈이 발의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발이 눈처럼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몸이 건강 하려면 모든 부분이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이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도 이와 같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조직은 겉으로는 단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과 능력이 존중되지 않는 공동체는 쉽게 경직된다. 리더만 있고 돕는 사람이 없다면 힘든 일을 못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만 있고 끝까지 실천하며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렵다. 한 사람의 강점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한 사람의 부족함은 다른 사람이 기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다름은 때로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다름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방식만 옳다고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방식과 역할을 가볍게 여길 때 문제가 생긴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자신과 같게 만들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장가르기는 또 다른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간장과 된장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한 항아리에서 나뉜다. 함께 발효되었지만 이후에는 서로 다른 항아리에 담겨 각자의 방식으로 더 숙성된다. 이 분리는 그동안 함께했던 과정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맛과 쓰임을 완성하기 위해 나누어지는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과 헤어질 때가 있고, 익숙한 직장이나 공동체를 떠날 때가 있다. 자녀는 성장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한곳에서 일하던 동료들도 각자의 목표를 따라 흩어질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나와 나누어진 상대에 대해 관계가 멀어졌다고 생각하거나, 함께했던 시간이 의미를 잃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분리가 관계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함께해야 할 시간이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곁에 붙잡아두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때가 되었을 때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영원히 부모가 만든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자신의 성품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지도자 역시 사람들을 자신의 방식 안에만 붙잡아두지 않는다. 함께 성장한 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나아가 새로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물론 모든 이별을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해와 욕심, 무책임과 배신으로 관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생긴 상처를 성장의 과정이라고 쉽게 포장해서는 안 된다. 다만 헤어졌다는 사실만으로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같은 항아리에서 함께 익은 시간이 간장과 된장의 맛에 남아 있듯이, 함께 견디고 배우고 사랑했던 시간은 사람의 내면에 흔적으로 남는다. 간장과 된장의 맛을 이루는 데에는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기다림이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근 다음 날 곧바로 깊은 간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가르기를 한 뒤 으깬 된장도 바로 오래 숙성된 장맛을 내지 못한다. 미생물과 효소가 콩의 성분을 천천히 변화시키도록 시간이 필요하다. 발효는 억지로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 항아리 뚜껑을 자주 열어본다고 장이 더 빨리 익는 것도 아니다. 온도를 지나치게 높이거나 계속 손을 댄다고 깊은 맛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간섭은 발효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사람의 성장도 비슷하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빨리 나타나기를 바란다. 부모는 자녀가 항상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면 그 사람도 금세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한 번 결단하면 오래된 습관도 당장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은 명령과 압력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오랫동안 굳어진 생각과 습관이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도 여러 경험과 실패를 지나며 조금씩 자라난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내면을 다루고 계신다고 믿는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도 기다림의 가치는 낯설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와 경험, 실패와 반성을 통해 천천히 달라진다. 중요한 변화일수록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내면에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직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너무 빨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막 담근 장은 맛이 거칠고 짠맛이 두드러질 수 있고, 향도 충분하지 않고 콩의 단단한 성분도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맛만 보고 “이 장은 실패했다”고 단정짓는다면 그야말로 지나치게 이른 판단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우리는 같은 잘못을 범한다.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규정한다. 성장이 느리다는 이유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자신이 기대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의가 없거나 마음이 닫힌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반복되는 폭력이나 거짓말, 무책임한 행동을 미숙하기 때문이라며 마냥 기다려주어서는 안 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성숙한 관계를 위해서는 분명한 경계를 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우리 가운데 완성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겉으로 성숙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고쳐야 할 고집과 편견이 남아 있다. 자주 넘어지는 사람에게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선한 가능성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오늘의 미숙한 말과 행동이 반드시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인내할 필요가 있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었다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보다 성장이 느려 보인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자신을 무조건 용서하거나 잘못을 합리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되, 다시 시작할 가능성까지 포기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성장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일이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정직해지고, 어제보다 조금 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붕어빵을 찍듯이 만들어내지 않으신다. 말씀과 관계와 시간 속에서 사람의 교만을 낮추고, 상처를 돌보며, 자기중심적인 마음 안에 사랑과 긍휼이 자라게 하신다. 그래서 신앙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자격증이 아니다. 자신도 여전히 변화가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계속 배우며 살아가는 길이다. 간장은 된장을 흉내 내지 않는다. 된장도 간장처럼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습과 쓰임으로 식탁을 섬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다른 사람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에 서야 할 때에는 책임을 피하지 않고, 뒤에서 도와야 할 때에는 인정받지 못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함께해야 할 때에는 성실하게 함께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때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보내주어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유명한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 얼마나 빠르게 성과를 이루었는가 만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성품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고 있는가,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서로 다른 능력과 역할을 주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나도 다른 사람과 비슷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맛을 존중하는 사람, 자신이 빛나기보다 함께 차려진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잘 익은 삶의 향기를 남긴다.
오늘의 실천
오늘은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높이거나 낮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겠습니다. 눈에 띄는 성과나 사회적 지위만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의 수고와, 필요한 순간에 앞에 나서는 사람의 용기를 함께 존중하겠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성품과 재능을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조용히 들어주어야 할 때에는 제 말을 앞세우지 않겠습니다. 책임 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에는 두려움이나 무관심 뒤에 숨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제 방식에 맞추려고 하기보다 그 사람의 성품과 재능이 좋은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에는 함께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붙잡아야 할 관계와 놓아주어야 할 관계를 분별하고, 상대방의 새로운 길을 존중하겠습니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한 번의 실수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반복되는 잘못과 부당한 행동 앞에서는 필요한 경계를 세우고 책임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저 자신의 변화가 더디다고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되, 다시 시작할 가능성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간장과 같은 자리에 있든 된장과 같은 자리에 있든 불평하지 않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성품과 재능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과 저를 비교하며 누가 더 앞섰고 뒤처졌는지를 판단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소서. 조용히 섬겨야 할 때에는 기꺼이 자신을 낮추게 하시고, 책임 있게 앞에 서야 할 때에는 두려움 때문에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저에게 주어진 능력을 자랑이 아닌 사람과 공동체를 살리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아직 변화의 과정에 있는 내 옆의 사람들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저 자신의 더딘 변화에도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은, 제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맛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선한 맛을 내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추신: 오늘 저녁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틀 전부터 가능한 한 철저히 준비해 왔지만,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