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록

칼럼

2026년 7월 30일 묵상

오늘의 말씀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언 21:5)"

오늘의 묵상

한국의 경제발전 역사를 돌아보면 매우 특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기회가 생기면 우선 몸부터 던지고, 부족한 것은 달리면서 채워왔다는 점이다. 시장의 문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지 않고, 조그마한 문틈이라도 보이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기술도, 자본도, 경험도 모두가 부족했지만 목표를 먼저 세운 뒤 사람과 자원을 한곳으로 모았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준비해 진행하면 오랜 시간이 걸릴 일들을 한꺼번에 겹쳐 진행하는 ‘병렬 방식’으로 시간을 압축해 나갔다. 한국 경제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는가?”를 묻기보다, 때로는 막무가내처럼 보일지라도 “언제까지 해낼 것인가?”를 먼저 물었다. 이러한 성향은 개별 기업의 생산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산업정책은 철저하게 ‘목표의 숫자화’에 익숙했다. “수출액을 언제까지 얼마로 늘릴 것인가?”, “공장을 언제까지 완공할 것인가?”, “얼마를 투자하고, 몇 명의 기술자를 양성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어디까지 높일 것인가?”라는 질문이 주를 이었다. 목표가 숫자로 정해지면 정부 부처와 금융기관,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이 일제히 그 숫자를 향해 돌진했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수출’을 국가의 최우선의 경제 목표로 삼았다. 매달 대통령이 직접 수출진흥회의를 주재하며 품목별 수출실적과 목표를 점검했다. 기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노력이 부족하다는 질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자재 수급, 외화 및 금융, 통관 절차, 항만·도로·전력 등 인프라의 병목 현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가 일시에 움직였다. 금융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공단과 도로를 집중 건설하며, 외환과 원자재 사용의 길을 즉시 열어주었다. 한국의 산업정책은 기업을 향해 단순히 “더 열심히 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목표를 숫자로 정하고, 책임자를 지정하고, 진행 상황을 반복 점검하여, 막힌 곳을 뚫어주는 종합적 동원 체제였다.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면 정부는 기업이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놓았고 다리가 되어 주었다. 금융기관은 자금을 공급하고, 교육기관은 필요한 기술자를 길러 냈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와 전자, 반도체산업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집중과 동원이 있었다. 한국식 산업정책은 시장이 스스로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국가가 먼저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가난한 후발국이었던 한국이 짧은 시간 안에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막연한 구호와 “올해 수출 목표는 얼마이며 어느 품목에서 더 끌어올릴 것인가”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진 질문은 차원이 다르다. “첨단산업을 육성하자”는 두루뭉실한 선언과 “언제까지 어느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전력과 용수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계획은 다르다. 숫자는 막연한 희망을 구체적인 책임으로 바꾼다. 현재 위치를 확인하게 만들고, 부족한 점을 드러내며, 핑계를 대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숫자는 방향을 선명하게 해주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눈가리개가 될 수도 있다. 수출액과 투자액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공장 준공일을 맞추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되면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휴식은 속도를 늦추는 방해물이나 배부른 투정으로 치부되기 쉽다. 정부와 기업이 거대한 투자 규모를 정하고 발표하는 데만 몰두하면, 그 투자가 현장 노동자의 안전, 중소기업과의 상생, 지역사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평가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특정 산업과 대기업이 설정되면 그곳으로 자본과 인재가 집중된다. 물론 그 선택이 성공하면 국가 전체가 성과를 누리지만 판단이 빗나가면 그 막대한 손실은 사회 전체의 짐이 된다. 수출 목표는 달성되어 대기업의 수익은 늘어날지 몰라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수익은 줄고 삶은 오히려 쪼그라들 수 있다. 생산량은 늘었지만 노동자의 안전은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 숫자는 목표를 분명하게 알려주지만, 시민의 삶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숫자는 시민을 몰아붙이는 채찍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여야 한다. 한국 조선산업의 출발은 준비되지 않은 조건을 행동으로 채워 나간 대표적 사례다. 1971년 정주영 회장은 울산 미포만에 대형 조선소를 지을 자금을 마련하고자 영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현대에는 대형 조선소는 커녕 초대형 선박을 건조한 경험과 실력도 없었다. 정 회장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 사진 한 장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업계획서뿐이었다. 돈을 빌리려면 배를 만들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배를 수주하려면 조선소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소를 지을 돈을 빌리려면 먼저 배를 사 줄 고객이 있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어느 것 하나 증명할 수 없는 완벽한 고리형 위기였다. 조선소를 지으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고, 필요한 돈을 빌리려면 배를 만들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당연히 배를 수주하려면 조선소가 있어야 했지만, 배를 만들 조선소도, 배를 사줄 고객도 없었다. 금융기관과 조선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다. 이때 정 회장이 꺼낸 것이 바로 당시에 사용되던 뒷면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였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은 이미 16세기에 이러한 철갑선(거북선)을 만들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업화가 늦어졌을 뿐 한국인에게 배를 만들 능력까지 없는 것은 아니며,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이 일화는 500원권 지폐 한 장으로 차관을 얻었다는 이야기로 회자되지만, 실제로 지폐 한 장이 기술력 평가와 금융 심사는 물론 사업계획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 뒤에는 영국 조선회사와의 기술협력, 금융기관의 심사, 수출신용보증기관의 보증, 그리고 무엇보다 배를 사줄 선주를 찾는 치열한 과정이 뒤따랐다. 500원권은 금융 담보가 아니라, 상대의 시선이 열리게 만들어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각인시킨 ‘상징’이었다. 정 회장은 “우리는 이미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 능력을 완전히 갖추었다”는 허풍도 아니요, "아직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과 "만들 능력이 없다는 판단"은 전혀 다르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정 회장은 아직 실물 공장도 없는 울산 백사장 사진과 설계도만 들고 그리스로 넘어가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을 수주했다. 그러나 수주가 끝은 아니었다. 약속한 배를 실제로 만들어야 했다. 일반적인 순서라면 먼저 조선소를 완성하고, 기술자를 교육하며, 설비를 시험한 뒤 충분한 경험이 쌓였을 때 선박을 수주하여야 했지만, 현대는 그 순서를 직렬이 아닌 병렬로 겹쳐 놓았다. 1972년 3월 조선소를 건설하는 공사를 시작하고, 조선소를 지으면서 배를 만들었다.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교육하고 양성하였고, 해외 설비를 설치하며 전문적 기술을 습득했다. 그 결과 1974년 6월, 착공한 지 2년 3개월 만에 조선소 1단계 공사는 물론 두 척의 초대형 유조선을 바다로 띄워 보냈다. 이러한 압축적 방식은 반도체 신화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면서 기술개발을 공장이 완성된 뒤로 미루지 않았다. 반도체공장은 건물만 완성한다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정밀장비가 연결되어야 하고, 많은 물이 필요하며, 공정마다 온도와 먼지, 진동을 통제해야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올리는 동안에도 다음 세대 제품을 연구하고 실험하여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들은 공장 건설 중에 생산설비를 들여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다음 세대 메모리 공정을 개발하며, 협력업체와 고객의 수요를 함께 준비했다. 시장전망이 완전히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생산을 시작한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 기업은 미래의 수요를 믿고 대규모 투자를 먼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역시 기업의 투자속도에 맞춰 금융과 세제, 전력과 용수, 도로와 산업단지를 공급하려 한다. 기업의 공장건설과 기술개발, 정부의 인허가와 기반시설 계획을 하나의 시간표 안에서 움직이려 했다. 한국의 빠른 결정과 동원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IMF 프로그램에는 부실 금융기관의 폐쇄와 합병, 통합 금융감독기구 설치, 기업의 연결재무제표와 외부감사 강화, 외국인투자와 자본시장의 개방 등이 포함됐다. 실제로 14개 부실 종합금융회사가 1997년 12월 영업정지됐고, 그중 10개는 1998년 1월 폐쇄됐다. 경제성장률이 1998년 마이너스 6.7퍼센트에서 1999년에는 10.7퍼센트로 급반등했다. 금융기관과 기업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수출이 회복된 것이 빠른 반등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속도 뒤에는 늘 그림자가 존재했다. 우리는 거대한 배가 완성된 날은 기억하지만, 그 배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운 사람들의 이름과 말없는 희생자들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조선소의 준공일은 역사에 기록하지만, 그 날짜를 맞추기 위해 혼신을 다하다가 지치고, 다치고, 희생된 사람들의 시간은 쉽게 잊는다. 반도체 공장의 규모와 성과를 자랑하지만 개인과 가족을 희생하며 밤을 새운 연구자들과 노동자들의 수고는 지나치기 쉽다. 국가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통계 숫자와 직장을 잃은 가장이 다시 일어서는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흘렀다. 재무제표는 몇 년 만에 청산되었을지 몰라도, 무너진 가정과 개인의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못하기도 했다. 속도가 사람을 살리고 기회를 열어준다면 귀한 동력이 되지만,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며 얻은 속도라면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잠언 21장 5절은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르지만,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부지런함과 조급함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똑 같고, 남보다 먼저 시작하는 것이 똑 같고, 결과를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똑 같다. 그러나 그 출발점과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부지런함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며, 오늘 할 일을 미루지 않되 결과가 익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조급함은 불안에 쫓겨 출발하며, 당장 눈앞의 숫자가 보이지 않으면 전체 과정을 실패로 규정한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 사람의 안전과 존엄, 지속 가능성을 희생시키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조급함이며 무책임이다.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도 속도와 인내를 동시에 배웠다. 노아는 비가 내리기 전에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오랜 시간 방주를 만들었다. 시작은 누구보다 빨랐지만 완성까지는 긴 인내가 필요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즉시 고향을 떠났지만 약속된 아들을 얻기까지는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밤에는 급히 유월절 음식을 먹고 떠나야 했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신앙의 체질을 바꾸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출발의 속도’와 ‘과정의 인내’가 함께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말한 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의 책임을 감당하는 성실함이다. 책을 읽겠다는 목표만 세우고 매일 읽을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으면 계획은 쉽게 무너진다. 건강해지겠다고 다짐하면서 수면과 식사, 운동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목표는 숫자로만 남는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할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랑은 마음속의 생각으로 끝난다. 신앙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할 시간을 구별하지 않으면 결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목표는 방향을 정하지만, 습관과 노력과 질서는 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게 만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에는 모든 조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어도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공부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막연한 요행일 뿐이다. 정주영 회장의 500원권 지폐는 마술이 아니었다. 설득으로 문을 연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땀 흘린 실행이 뒤따랐기에 비전이 현실이 되었다. 설득은 문을 열 수 있지만, 오직 실행과 인내만이 그 문을 통과하게 만든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사과해야 할 때, 도움을 주어야 할 때, 잘못된 습관을 끊어야 할 때”는 더 이상의 머뭇거림이나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다. 시작해야 할 때에는 핑계 없이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이미 시작한 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는 것보다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기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작은 잘못을 고치고, 다음 사람을 위해 경험과 실패의 이유를 기록하는 성실함과 지혜가 필요하다. 속도는 사람을 앞지르기 위해 사용할 때 경쟁이 되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용할 때 따뜻한 사랑이 된다. 숫자는 사람을 재촉하기 위해 사용할 때 채찍이 되지만, 책임을 분담하고 협력하며 방향을 잡을 때는 유용한 이정표가 된다. 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세우는 것이다. 지속성은 조직과 관습을 무조건 오래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책임과 지혜를 다음 세대가 더 좋은 출발점에서 이어 갈 수 있도록 넘겨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지도, 가장 큰 숫자와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가진 사람이 되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게으름을 부지런함으로 바꾸고, 조급함을 지혜로운 계획으로 다스리며,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진정한 성장은 남보다 먼저 도착하는 데만 있지 않다. 함께 출발한 사람의 손을 놓치지 않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더 안전하고 오래 지속될 길을 남기는 데 있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모든 일이 제 뜻대로 조급히 이루어지길 바랐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결과를 재촉하느라 사람의 아픔을 놓친 조급함과, 실패가 두려워 마땅히 내딛어야 할 첫걸음을 미루었던 미련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완벽한 조건만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믿음으로 내딛게 하소서. 막연한 기대에 머물기보다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하되, 숫자와 성과를 위해 사람의 마음과 안전을 희생시키지 않게 하소서. 비전을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약속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오늘 맡겨진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시작하는 용기뿐만 아니라 끝까지 돌보는 성실함을 허락하소서. 화려한 성과 뒤에서 보이지 않게 피땀 흘린 이들의 수고를 존중하며, 그 결실을 공정하게 나누게 하소서.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을 탓하기보다 구조를 다스리게 하시고, 오늘의 경험과 교훈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에 더 좋은 유산으로 남기게 하소서.” 오늘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신속히 손을 내밀되, 사람의 마음을 다룰 때는 충분히 듣고 인내하며, 나 혼자 빨리 도착하기보다 함께 걷는 이들을 돌아보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더 안전하고 오랫동안 이어질 길을 만드는 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