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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9일 묵상

오늘의 말씀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전도서 8:5)"

오늘의 묵상

동일한 국가적인 문제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청와대나 정부청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관계부처 장관들이 긴급회의에 소집된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대책의 방향과 시한을 제시하고, 각 부처에는 그날 안으로 실행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내려간다. 범정부대책본부나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지고, 빠르면 그날 오후에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될 수도 있다. 일본 정부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담당 성청(省庁)은 먼저 문제를 조사하여 자료를 만들어 관계 성청에 돌리며, 여당의 관련 부회나 정책조사회에 설명을 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업계의 의견도 확인한다. 필요하면 전문가회의나 심의회를 열어 예상되는 문제를 검토한다. 공식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많은 비공식 접촉과 문서수정이 이루어진다. 일본의 절차와 과정은 한국인의 눈에 답답하게 보여 “문제가 눈앞에 있는데 왜 아직도 검토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의 신속한 결정은 일본인의 눈에 불안하게 보여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것이며, 지방정부와 현장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는 충분히 확인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한국에도 법률심사와 의견수렴, 국회절차와 지방협의가 존재하며, 일본에도 총리의 결단과 긴급대책본부, 신속한 행정명령과 자원동원이 있다. 두 나라가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정치와 행정의 현장에서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한다. 하지만 일본은 공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해관계와 위험을 조정하고, 일단 결정된 정책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한국의 결단은 시계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반면, 일본은 절차의 달력을 여러 장 넘기며 준비한다. 그러나 시계와 달력은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는 시계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꼼꼼히 채워진 달력이 언제나 올바른 날을 알려 주는 것도 아니다. 한일 정치·행정의 차이는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동시에 행정부의 수반이며,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임명하고 정부정책의 중심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은 국가를 바꿀 권한과 책임이 자신에게 부여되었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선거공약은 곧 국정과제가 되고, 국정과제는 다시 부처별 계획과 예산, 조직개편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대통령실은 부처에 목표를 제시하고, 국무총리실은 부처 사이의 이견을 조정한다. 관계부처 합동대책이 발표되고, 필요하다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나 범정부 추진단이 설치된다. 한국 행정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의견이 아니라, 행정조직 전체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강력한 신호가 되기 쉽다. 반면 일본의 총리(내각총리대신)는 연립여당의 대표가 국회의 의결을 통해 지명되고, 그 총리가 내각을 구성한다.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에 관해 국회에 연대하여 책임을 지며, 중의원에서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면 내각은 일정 기간 안에 총사직하거나 중의원을 해산해야 한다. 일본의 총리도 결코 힘이 없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총리의 정치적 기반은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독립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회 다수파와 여당, 연립정당, 내각과 관료조직의 지지 위에 놓여 있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제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일본 총리는 “여당과 관계 성청, 지방정부와 충분히 조정하여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책임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결단이 빨라지고, 책임이 나누어지면 정책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한국식 정치적 결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1993년의 금융실명제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발동했다. 모든 금융거래에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발표는 저녁에 이루어졌고 그날 오후 8시부터 금융실명제가 즉시 시행됐다. 정책을 사전에 공개하면 자금이 빠져나가고 재산을 숨기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극도의 보안 속에서 준비되었다. 약 3년 5개월간 긴급명령 체제로 운영되다 1997년 12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로 제도화되었다. 이 사례에서 한국 정치의 강점이 나타난다. 당장 필요한 제도를 대통령의 결단으로 단숨에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하고 필요한 정책이라 해도 대통령의 긴급권을 통해 갑자기 시행하는 방식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지도자의 선한 의지만 믿고 충분한 공개검토를 생략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신속함은 부패한 사람들이 도망갈 시간을 주지 않는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시민이 질문하고 반대하고 수정할 시간을 빼앗는 권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왜 서둘러야 하는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서두르는가? 서둘러 결정한 사람에게 사후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들이다. 한국 행정에서는 큰 사고가 발생하면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하기도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하여 국무총리 소속의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폐지하여 주요 기능을 국민안전처로 옮기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2017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안전처는 다시 폐지되었고,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은 독립기관으로 부활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조직이 만들어지고 없어지며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례는 한국 정치·행정의 빠른 반응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준다. 위기 뒤에 즉시 책임을 묻고 조직을 바꾸는 것은 국민에게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주고, 부처 이기주의 관행과 기능분산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간판은 하루 만에 바꿀 수 있지만 전문인력과 지휘체계, 조직문화, 기관 간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관을 폐지하면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사명감이 흔들릴 수 있고, 기관을 복구하더라도 이미 사라진 인력과 노하우는 저절로 돌아오지 않는다. 정치는 때때로 조직개편을 개혁으로 착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부처를 만들고, 기대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이름의 위원회를 설치한다. 그러나 구조적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새로운 조직도 이전 조직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책임과 권한, 전문성과 협력의 문화를 담는가 하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도 한국 행정의 동원력과 디지털 기반을 보여 준다. 정부는 2020년 5월 4일부터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약 280만 가구에 별도 신청 없이 단 하루만에 기존 복지급여 계좌로 현금을 지급했다. 이후 카드사, 은행, 주민센터,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상품권 체계를 연결하여 6월 2일까지 전체 대상의 98.6퍼센트인 2,141만 가구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정부가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정부 데이터를 활용했고, 민간 카드사와 은행의 전산망을 이용했다. 신청이 몰리지 않도록 요일제를 운영했으며 취약계층에게 먼저 지급했다. 이혼, 이사, 세대주 부재, 대리신청과 같은 문제가 생기자 시행 중 지침을 바꾸고 예외를 확대했다. 이것이 한국 행정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먼저 큰길을 열고, 사람들이 길을 사용하면서 발견한 웅덩이와 장애물은 나중에 메우거나 치운다. 길이 완벽하게 포장될 때까지 기다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규칙을 바꾸고 실행하는 방식은 행정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이 정책의 가장자리에서 소외될 수 있다. 좋은 행정은 많은 사람을 빨리 돕는 능력과 함께, 아직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지 끝까지 찾아가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한국의 디지털행정이 속도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주민등록 전산화, 행정망 구축, 전자조달, 전자세금, 정부 민원포털, 공공데이터 개방 등이 여러 정부를 거치며 축적되었다. 문제는 모든 정책이 디지털행정처럼 축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정책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름이 바뀌고 담당위원회가 교체되며, 이전 정부가 만든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평가 없이 축소, 폐지된다. 한국 정치에 더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빨리 발표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효과가 확인된 정책을 정파와 지도자의 이름에서 분리하여 국가의 자산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일본의 정책결정은 결코 공식회의에서 처음 시작되지 않는다. 담당 관료가 법안이나 정책안을 만들면 관계 성청과 협의하고, 여당에 설명하며, 지방정부와 업계, 전문가들의 반응을 확인한다. 공식적으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발표할 때는 이미 여러 차례의 수정과 조정이 끝난 뒤일 수 있다. 일본 자민당 정권에서는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 여당의 정책조사회와 관련 부회가 내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사전심사제가 오랫동안 정책결정의 중요한 일부로 작동해 왔다. 이 제도는 정부와 여당, 여당 내부의 정책조정을 담당하며 확대되었다. 겉으로 보면 국회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야 할 일을 여당 내부에서 먼저 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전심사가 지나치게 강하면 국회 본회의와 위원회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승인하는 장소로 약화될 수 있다. 국민이 볼 수 없는 당내회의에서 중요한 타협이 이루어질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분명한 행정적인 장점도 있다. 법안을 제출한 뒤 여당 의원들이 반대하여 무산되는 일을 줄이고, 지역구와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의원들의 의견을 미리 반영할 수 있다. 참의원과 중의원, 연립정당 사이의 충돌 가능성을 줄이며, 법률이 통과된 뒤 지방과 현장에서 실제로 시행될 수 있는지도 점검한다. 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정책을 발표한 뒤 부처가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공개발표 이전에 관계자들이 표현, 시행일, 예외조항을 놓고 오랫동안 조정한다. 발표가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인 한국에 비해, 일본의 발표는 이미 연습을 끝낸 공연의 막이 오르는 순간에 가깝다. 발표 뒤에 갈등이 생기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발표 전에 갈등을 가능한 한 줄이려 한다. 일본 정부가 시행령이나 성령과 같은 행정규칙을 만들 때는 원칙적으로 안을 공개하고 30일 이상 국민의 의견을 받는 퍼블릭코멘트 절차를 거친다. 행정기관은 제출된 의견뿐 아니라 그 의견에 대한 정부의 판단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30일을 기다려야 하느냐는 비판이 생길 수 있고, 일반 시민이 전문용어로 작성된 시행령안을 이해하고 의견을 제출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형식적으로 의견만 받은 뒤 원안을 거의 그대로 확정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로 인해 행정이 모든 의견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절차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2020년 일본 정부도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만 엔의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특별정액급부금을 결정했다. 하지만 주민기본대장, 세대정보, 계좌정보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아 전체 가구의 90퍼센트 이상에 지급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 일본 방식의 약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급부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바탕으로 지방정부의 급부업무를 공통화하는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청은 전국 1,741개 기초자치단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급부지원 서비스를 개발했다. 지방마다 종이신청과 디지털신청을 처리하는 방법, 부서명과 업무용어까지 달랐기 때문에 실제 지방공무원을 인터뷰하고 시범운영을 거쳐 공통시스템을 설계했다. 2024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한국은 당장의 위기에서 먼저 사람에게 돈을 전달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일본은 당장의 지급에서는 늦었지만 그 실패를 다음 급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공통행정 기반으로 바꾸려 했다. 좋은 행정은 오늘 사람을 살리는 동시에, 내일 같은 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일본의 지속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방재행정이다. 일본의 방재기본계획은 재해대책기본법에 따라 중앙방재회의가 만드는 국가 최상위 방재계획이다. 중앙부처와 지정 공공기관은 이 계획에 따라 방재업무계획을 만들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방재계획을 작성한다. 물론 실제 재난의 상황, 대응의 효과와 문제, 과학적 연구성과를 고려하여 매년 계획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하한다. 1995년 한신·아와지대지진 뒤에는 국가와 지방, 공공기관과 사업자의 역할을 더 구체적으로 나누었다. 코로나19를 겪은 뒤에는 피난소 감염대책과 칸막이 비축을 계획에 넣었고, 2024년 노토반도 지진 뒤에는 피해지역 진입, 지방자치단체 지원, 피난소 운영, 물자조달과 수송 문제를 보완했다.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계획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존 계획 위에 새로운 교훈을 한 층씩 덧붙인다. 총리가 바뀌어도 계획이 남고, 담당 공무원이 퇴직해도 수정기록이 남으며, 그 결과 다음 담당자는 재난에서 무엇을 배우고 고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일본 행정의 연속성이다. 그러나 그 메뉴얼이 두꺼워질수록 해야 할 일이 늘어나고 현장공무원은 더 많은 확인표를 작성해야 한다. 규정에 없는 상황에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상급기관의 지시를 기다릴 수도 있다. 즉 준비한 재난에는 강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서는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기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기록을 읽고 살아 있는 판단으로 바꾸어야 지혜가 된다. 일본정부는 동일본대지진 뒤 복구와 부흥을 담당할 복흥청을 만들었다. 2011년 11월 복흥청설치법안이 각의에서 결정되어 국회에 제출되었고, 국회는 조직의 역할과 대신의 권한, 설치장소를 논의하고 법안을 수정했다. 법률은 12월에 성립했고 복흥청은 2012년 2월에 출범했다. 거처를 잃고 일터가 사라진 피해자에게 몇 달의 법률논의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흥청을 단순한 긴급대책반이 아닌 법적 권한을 주고, 관계부처의 기능을 조정하고, 장기적인 재건사업과 예산을 담당하게 했다. 한국의 대응은 불을 끄는 소방차와 같고, 일본의 제도화 과정은 불탄 마을을 다시 설계하는 건축사무소와 같다. 불이 붙었을 때 건축설계부터 논의하면 사람을 구할 수 없지만 불만 끄고 마을을 어떻게 복구할지도, 준비하지 않으면 오랜 기간 사람들은 폐허 속에 머물러야 한다. 정치와 행정에는 소방차의 속도와 건축가의 인내가 모두 필요하다. 한국은 문제가 생긴 뒤 고치는 속도가 빠르고, 일본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확인하는 단계를 많이 둔다. 한국은 지도자의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려 하지만, 일본은 지도자가 바뀌어도 기존 계획과 관료조직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도덕적인 가치로 착각한다. 빨리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검토하는 사람은 자신을 신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빠른 결정이 언제나 용기는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조급함이다. 오랜 검토도 언제나 신중함은 아니며, 때로는 책임을 피하려는 두려움이다. 한국 정치의 위험은 긴급함을 정의로 착각하는 데 있다. “국민이 원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 “반대하는 사람은 개혁을 방해한다”는 말들이 반복되면 절차와 법률, 소수자의 권리는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로 취급될 수 있다. 일본 정치의 위험은 절차를 책임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다”, “전문가회의에서 검토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말들이 반복되면 결정은 미루어진 채 절차만 계속될 수 있다. 전도서는 지혜자의 마음이 ‘때와 판단’을 분별한다고 말한다. 때만 알아서도 안 되고 판단만 옳아서도 안 된다. 옳은 일도 잘못된 때에 하면 사람을 해칠 수 있고, 빨리 해야 할 일을 오래 미루면 그 사이에 쓰러지는 사람이 생긴다. 굶는 사람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일은 신속해야 하지만, 사람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재난현장에서 지휘관의 즉각적인 결단은 필요하지만, 재난 뒤 책임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현장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어야 한다. 지혜는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하는 능력도 아니고, 모든 일을 꼼꼼히 하는 능력도 아니다. 무엇을 서둘러야 하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다. 성경 속의 하나님도 일하시는 속도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급히 먹으라고 명하셨다. 그날 밤에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홍해 앞에서도 길이 열렸을 때 즉시 건너야 했다. 그러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는 40년이나 걸렸다. 하루 만에 이집트를 떠나 노예가 아닌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노예의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구원이 급할 때에는 길을 여셨고, 사람을 빚어야 할 때에는 기다리게 하셨다. 사실 우리에게는 둘 다 어렵다. 서둘러야 할 때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기다려야 할 때 불안 때문에 결과를 재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오류는 새로운 것을 선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며 일본의 오류는 오래된 것을 검증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개혁은 조직의 간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해지고, 약한 이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며, 책임의 소재가 더 분명해지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지속성도 같은 것을 완고하게 오래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개혁을 통해 지키려 했던 사람과 가치를 끝까지 책임지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결정하지 않고 끝없이 의견만 듣는 제도도 아니다. 결정할 권한을 주되, 그 권한을 법과 절차 안에 묶고, 반대할 자유를 보장하되, 결정해야 할 때에는 책임 있게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일본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은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지방정부와 현장, 반대자와 약한 사람의 사정을 충분히 듣는 태도다. 정부가 바뀌어도 유효한 정책과 기록을 이어받는 모습이며, 대통령과 장관이 떠난 뒤에도 제도가 작동하도록 책임과 지식을 남기는 자세다. 일본의 정치가 한국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도 단순히 신속함이 아니라, 완전한 합의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작은 범위에서 먼저 실험하는 용기이며, 위기 앞에서 중앙정부가 책임을 분명히 하고 공통기반을 제공하는 결단이며, 실패의 책임이 여러 조직 사이에 흩어지지 않도록 최종 책임자를 세우는 일이다. 한국에는 빠르게 만든 것을 오랫동안 지키는 충성이 필요하고, 일본에는 오래 지켜 온 것을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재난매뉴얼이 아무리 두꺼워도 현장의 구조요원이 책임을 두려워해 움직이지 못한다면 계획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지도자가 아무리 빠르게 결정해도 그 결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결단은 책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어느 한 나라의 방식을 모방하는 일이 아니다. 서둘러야 할 때 지체하지 않는 사랑, 기다려야 할 때 재촉하지 않는 인내, 결정하기 전에 경청하는 겸손, 결정한 뒤에는 결과에 순응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충성이다. 우리는 한국의 속도를 자랑하기 전에 그 속도에서 밀려난 사람이 없는지 보아야 한다. 일본의 절차를 높이 평가하기 전에 그 절차를 기다리다 지쳐 쓰러진 사람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 속도는 사람을 향해 달려갈 때 의미가 있고, 절차는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기 위해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 지속성은 조직의 수명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 가는 데 목적이 있다. 결단은 지도자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순간에 책임을 떠맡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일하는 사람이나 천천히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 람을 살리기 위해 서두르고,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게 익숙한 판단방식과 일의 속도를 가장 옳은 기준처럼 여겼던 좁은 마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빠르게 결정하는 사람은 무모하다고 단정하고, 오랫동안 검토하는 사람은 무능하다고 쉽게 판단했던 교만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서둘러 결정할 때에는 그것을 용기와 추진력이라고 자랑하고, 결정을 미룰 때에는 그것을 신중함과 지혜라고 포장했던 이기적인 태도도 깨닫게 하소서. 제 성향과 편의를 공동체의 필요와 혼동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을 서둘러야 하며 무엇을 오래 살펴야 하는지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눈앞에 있을 때 절차를 핑계로 책임을 미루지 않게 하소서. 굶주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긴 회의가 아니라 따뜻한 한 끼일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결단해야 할 때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며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긴급함이라는 말로 상대방의 목소리와 권리를 짓밟지도 않게 하소서. ‘시간이 없다’, ‘결정은 이미 끝났다’, ‘반대는 방해일 뿐이다’라는 말로 충분한 설명과 경청을 생략하지 않게 하시며, 제 결정으로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듣게 하소서. 제게 결단의 용기와 함께 수정할 수 있는 겸손을 주소서. 제가 내린 판단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날 때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시행하면서 나타난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신속하게 고칠 수 있게 하소서. 제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을 업적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이미 시작한 일을 꾸준히 돌보고, 효과가 있었던 경험을 기록하며, 다음 사람이 더 잘 이어 갈 수 있도록 설명하고 정돈하게 하소서. 조직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개혁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회의와 서류를 늘리는 것을 책임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실제로 사람이 더 안전해졌는지, 약한 이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게 되었는지,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되었는지를 기준으로 제 행동을 돌아보게 하소서. 저에게 빨리 말하고 빨리 결론 내리는 습관보다 먼저 상대의 사정을 살피는 마음을 주소서. 그러나 해야 할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시며, 사과해야 할 때 즉시 사과하고, 도와야 할 때 바로 손을 내밀며, 고쳐야 할 잘못은 오래된 관습이라는 이유로 방치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은 성급함을 결단력이라고 포장하지 않고, 두려움을 신중함이라고 숨기지 않으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서두르고,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기다리며, 결정한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정직하고 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