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
오늘의 묵상
일본정부관광국의 2025년 방일외국인에 대한 통계발표를 보면 전체 방일외국인수는 약 4268만명이고 그 중 한국인이 약946만명이었었다. 방일외국인수의 비율로 보면 전체 방일한 외국인중 22.16%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약 4.5명당 한 명이 한국인이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하나가 거리성이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지만,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돕는 방식에서는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모든 한국인과 모든 일본인이 일률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세대와 지역(예를 들면 본토와 오끼나와), 개인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힘들고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관심과 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전체적으로 강하고, 일본에서는 상대가 요청하지 않은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것을 배려로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직장 동료의 얼굴이 평소보다 힘들어 보이면 “어디 아파요?”, “약은 먹었어요?”라고 재촉하듯 묻는 경우가 많다. 동료의 괜찮다는 대답에도 자기 판단으로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ㅇㅇ병원이 참 잘 보는 것 같아요”라며 병원까지 소개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죽이나 반찬을 준비하여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아픈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라도 해 주어야 진심으로 관심을 표현했다고 생각하지, 말로만 인사하는 것은 정이 없는 행동이라고 느낀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동료가 아파 보여도 “괜찮으세요?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뿐 더 자세히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은 간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여긴다. 도움이 필요해 보여도 “제가 대신할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선택권을 상대에게 준다. 일본인의 대응을 접한 한국인은 “사람이 아픈데 저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태도를 보며 “아픈 사람에게 왜 저렇게 쓸데없이 대응하여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상대를 걱정하여 나타내는 표현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나라 역사 속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기인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관계습관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그 사람만의 것이기 어려웠다. 두레를 조직하여 함께 물을 관리하고, 모내기와 김매기, 수확과 같은 노동을 함께하였다. 계를 만들어 혼례와 장례, 교육과 재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했다.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이웃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마을에 준비해 둔 공동 상여를 사용하였다. 한 사람이나 한 가족의 경조사를 마을 전체의 일로 삼았다. 조선시대의 향약도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경계하며,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감당했다. 공동체가 나를 도와 함께 어려움을 감당하기에 내 생활과 행동에 대해 공동체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돌봄과 간섭이 쉽게 분리되지 않는 구조였던 것이다. “당신의 어려움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라는 따뜻한 말은 “그러므로 당신은 혼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로 참견의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결혼, 출산, 직업, 가정생활이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오랜만에 만나는 독신 친척이나 지인에게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심지어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질문을 받는 사람 중에는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미루고 있을 수도 있고, 상처로 인해 결혼을 미루는 사람이 있을 수도, 또한 독신의 삶을 선택하였을 수도 있다. 그런 상대에게는 “너를 위해 묻는 것”이라는 관심이 사실은 아픔일 수도 있다. 한국의 적극적인 관심에는 환경적인 요인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전쟁과 전후의 빈곤 속에서는 국가나 공공제도가 모든 사람의 삶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 때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친척, 고향 사람, 아니면 이웃이나 친구였다. 일자리를 소개했고, 병이 나면 가족과 이웃이 병원비를 마련했으며, 자녀의 부족한 학비는 형제와 친지가 힘을 모았다. 가까운 사람의 형편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도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한국의 직장도 단순한 계약관계로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강했다. 상사는 부하직원의 업무는 물론 결혼과 가정, 건강과 생활습관까지 챙기는 것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는 부하에게 “왜 그만둬?”, “다음 직장은 알아봤어?”, “생활비는 괜찮아?”라고 물을 수 있는 이유다. 이러한 적극성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한국적 관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다른 사람의 위기를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쉴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사직 이유를 설명하라고 재촉하라고 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권하는 관심은 또 하나의 짐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도 매우 강한 공동체적 통제와 상호부조가 존재했다. 에도시대의 오인조는 인접한 몇 가구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서로 책임지게 한 제도였다. 세금이나 범죄 등은 개인보다 단위의 책임을 물었기에 오인조에 속한 사람들은 내 이웃의 형편과 행동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집에 누가 드나드는지, 경제적 형편은 어떤지, 혹 금지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서로 확인했다. 물론 상호부조의 기능도 있었다. 오인조 안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 도움은 같은 조직에 속한 조원으로서의 책임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처럼 개인의 자발적 친밀감보다는 소속된 조직과 맡은 역할에 따라 이웃에게 관여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1940년대에는 도나리구미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가까운 가구를 하나의 조로 묶어 배급품을 나누고, 회람판을 돌리며, 방공훈련을 하였고, 출정한 군인이 있는 가족을 지원했다. 전쟁 중 이웃끼리 어려운 생활을 돕고 견디도록 만든 조직이었으며, 동시에 주민의 이동과 생활, 국가정책에 대한 협력 여부를 서로 확인하는 감시조직이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의 오인조와 도나리구미에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라는 공통된 특징은 물론,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규칙을 어기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한국의 향촌사회가 인간적인 친밀함과 도덕적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관여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일본의 이웃조직은 정해진 단위와 역할, 책임을 바탕으로 관여하는 경향이 비교적 강했다. 물론 두 나라의 역사를 하나의 공식처럼 단순화할 수는 없다. 한국에도 행정적이고 규칙 중심적인 조직이 있었고, 일본에도 따뜻한 인정과 친밀한 이웃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어느 요소가 더 강조되었는지를 살펴볼 수는 있다. 한국에서는 “우리는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당신의 어려움은 나의 어려움이다”와 같은 사고방식이 발달하기 쉬웠다. 반면 일본에서는 “내가 맡은 역할과 책임은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발달하기 쉬웠다. 전후 도나리구미와 같은 강제적인 조직은 폐지되거나 재편되었다. 급속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이웃이 서로의 생활에 깊이 관여하는 관계도 점차 약해졌다. 하지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 허가 없이 다른 사람의 영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규범은 강하게 남았다. 일본에서 자주 강조되는 ‘메이와쿠’, 곧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태도와 ‘엔료’, 곧 상대를 고려하여 자신을 삼가는 태도도 이러한 비개입적 배려와 연결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실패한 사람에게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이 더 무너지고 있는데도 “본인이 말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관심이 된다. 이웃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이웃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직접 초인종을 눌러 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지나친 참견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이웃의 관심 덕분에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 이웃이 조용히 지내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고,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며, 사생활에 참견한다고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기보다 민생위원이나 공공기관에 확인을 부탁할 수 있다. 이는 독단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적절한 역할과 절차를 통해 도우려는 태도다. 그러나 “알아서 하겠지”라며 모두가 잠자코 있는다면, 주고받을 수 있는 도움의 기회도 놓칠 수 있게 된다. 교회 안에서도 두 태도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늘 예배에 참석하던 성도가 보이지 않으면 목회자가 곧바로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묻고, 필요하면 음식을 가져다주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연락의 방식이 잘못되면 돌봄은 부담이 된다. 만약 추궁이나 질책이 되면 그것은 관심이 아니라 영적인 통제가 된다. 일본 교회에서는 곧바로 이유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프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겪는 성도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고 권했다. 여기서 돌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모두 알아내라는 뜻도 아니요, 남의 삶을 평가하고 지시하라는 말씀도 아니다. 이 말씀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내려놓으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고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라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본다는 것은 상대의 삶을 통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의 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자원을 나누라는 뜻이다. 돌봄과 참견은 비슷해 보이지만 출발점과 목적이 다르다. 참견은 상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지만, 돌봄은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참견은 내가 옳다고 믿는 답을 일방적으로 주려 하지만, 돌봄은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 참견은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만, 돌봄은 상대가 다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배려와 방관도 둘 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배려는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준비를 하지만, 방관은 상대의 문제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는 것이다. 배려는 기다리는 동안에도 상대를 바라보지만, 방관은 기다린다는 말로 상대를 잊어버린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한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일본의 비개입적 배려가 지닌 장점을 모두 품고 있었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지 않으셨다. 길가에서 부르짖는 맹인의 소리를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셨다. 모두가 피하던 나병환자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대셨고, 사람들이 외면하던 세리와 죄인들의 식탁에 함께 앉으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니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와 같은 사랑이 아니었다. 먼저 찾아가고, 먼저 부르며,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뜻을 무시하지도 않으셨다. 여리고의 맹인의 형편을 이미 아셨음에도 그가 자신의 소원을 직접 말하도록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질문이지만, 예수님은 치유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의 의지와 마음을 확인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적극적이었지만 강압적이지 않았다. 깊이 관여했지만 지배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갔지만 상대의 목소리를 빼앗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돌봄도 이와 같아야 한다. 한국적인 따뜻함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되, 일본적인 절제를 가지고 상대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되 대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도움을 제안하되 어떤 도움을 받을지는 상대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 상대가 거절하더라도 서운함으로 압박하지 않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사랑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가는 것 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멀리 물러서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의 행동이 아니라, 지금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적 공동체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는 책임을 가르쳐 준다. 두레와 계, 향약과 가족공동체가 보여 준 상호부조에는 오늘날에도 회복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개인의 선택과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했던 모습은 경계해야 한다.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명령할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일본의 역사적 공동체는 우리에게 역할과 책임, 질서와 절제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다. 오인조와 도나리구미의 경험 속에는 이웃과 함께 재난과 어려움을 감당한 협력의 흔적이 있다. 그러나 조직적 감시와 통제의 아픈 역사도 있었으며, 그 반작용으로 개인이 다른 사람의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관심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배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한 거리 두기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전에 자신에게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돕고 싶은가, 아니면 그 사람의 사정을 알고 싶은가?”라고 물어야 한다. 또한 물러서기 전에도 “나는 이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여 기다리는가, 아니면 번거로운 일에 관여하기 싫어서 외면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이 묻는 관심도 아니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배려도 아니다. 조심스럽게 묻고, 진심으로 들으며, 필요한 만큼 돕는 사랑이다. 상대가 넘어질 때 붙잡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남겨 주는 사랑이다. 문을 두드리되 강제로 열지 않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곧바로 떠나 버리지도 않는 사랑이다. 한국의 적극적인 관심이 그리스도의 겸손을 만나면 참견이 아니라 섬김이 된다. 일본의 비개입적 배려가 그리스도의 긍휼을 만나면 방관이 아니라 성숙한 존중이 된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가 이런 돌봄을 배운다면, 어려움 속에 홀로 버려지는 사람이 줄어들며,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받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기꺼이 곁을 지킬 때, 우리의 관심은 사람을 붙잡아 두는 손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손이 된다. 우리의 기다림은 무관심한 침묵이 아니라, 상대가 마음을 열 때까지 곁을 지키는 충실한 사랑이 된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타인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고립된 이웃을 외면하는 차가움 뒤에 숨지 않게 하시고, 반대로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내 생각과 속도만을 강요하며 상대방을 숨 막히게 하지 않게 하소서. 내 안의 조급함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감정을 쏟아내거나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싶을 때는 잠시 멈추어 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묻는 ‘조심스러운 더딤’을 배우게 하소서. 반면 낙심한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하고 잘못을 고백하며 배려를 실천하는 일에는 계산 없이 ‘신속하게’ 행동하게 하소서. 가까이 다가가되 강제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되 외면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을 갖게 하소서.” 오늘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열고, 내 입술과 마음은 한 걸음 멈추어 다정하게 움직임으로써, 존중과 사랑이 공존하는 안전하고 따뜻한 하루를 만들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