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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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한국사회의 사고방식이 고정화된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정착할 때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직장이나 조직에 속하거나 이동을 하면 가벼운 간식을 돌리며 주변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소개를 한다. 만남이 반복되면 가족관계나 취미 등을 공유하고 스스럼없이 함께 식사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반면 일본 본토(본섬)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직장이나 조직에 몸담아도 그저 가볍게 인사만 나누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인의 눈에는 이 모습이 다소 쓸쓸하고 차갑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묻지 않는 것이 무관심이 아니라 ‘예의’일 수 있다. 상대가 원치 않을지 모를 사생활을 캐묻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남겨 주는 배려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일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 한국인이 일본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집 근처인데 잠깐 들러도 돼?”라고 물었다고 가정하자. 한국에서는 가까운 친구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고 없는 방문이라도 식사시간이 가깝다면 준비가 부족해도 집에 있는 음식을 꺼내 정을 나눈다. 하지만 일본인 친구라면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연히 당황할 것이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친구 사이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냐”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친구이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게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플 때의 대처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가 아프면 음료나 죽을 가지고 방문한다. 아픈 사람이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굴만 봐도 안 괜찮은데”라며 곁을 지키기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상대가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묵묵히 기다려준다. 아픈 사람을 번거롭게 하면 쉬지 못하게 할 수 있고, 갑자기 방문하면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같지만, 한쪽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다른 쪽은 ‘조용히 시간을 주는 것’을 배려라고 믿는다. 식탁문화나 업무방식에서도 차이는 명확하다. 한국인 함께 식당에 가면 여러 음식을 함께 주문하여 나누어 먹기도 한다. 계산을 할 때도 서로 지갑을 꺼내며 지불을 위해 실랑이를 벌일 수도 있다. 일본인은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비용도 각자 내는 경우가 자연스럽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깔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이것을 정이라고 하며 또한 일본인은 이것을 배려라고 한다. 공동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은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면 내일이 아니어도 별 경계 없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돕는다. 그래서 일의 책임이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일본은 처음부터 업무가 세밀하게 역할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지만 혹 그런 경우가 발생해도 자신의 업무가 아님을 이유로 차갑게 거절하기도 한다.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 부모는 성인 자녀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가족으로서의 책임과 관심’이라 여기지만, 일본 부모는 자녀의 집을 방문할 때도 미리 약속을 잡으며 자녀의 독립된 삶을 ‘존중’한다. 물론 모든 한국인과 모든 일본인이 이와 똑 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세대와 지역과 가정환경에 따른 차이도 크다. 그럼에도 바탕에 흐르는 정서적 뿌리는 존재한다. 한국의 복수여 울타리인 ‘우리’와, 안(うち우찌)과 밖(そと소또)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일본의 ‘うち(일종의 우리)’다.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아내, 우리 남편 등등. ‘우리 아내’라고 아내가 여러 사람의 아내라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나와 분리해서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가까운 존재’라는 뜻에 가깝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문법적인 복수가 아니라 정서적인 울타리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좋은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어려움은 함께 나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같이 분노하고, 우리 중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으면 다시 일어서도록 붙잡아준다. 한국의 ‘우리’는 어려울 때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도 성금을 모으는 거대한 힘이 되지만, 이 우리라는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동시에 밖에 있는 사람을 나눌 수도 있다. ‘우리 편’이면 잘못도 덮어지지만, ‘남의 편’이면 작은 잘못도 비난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학교, 고향, 종교, 정치적 입장에 따라 우리와 남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어제까지 따뜻했던 공동체가 폐쇄적인 집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うちの会社(우리회사), うちの家族(우리가족), うちの学校(우리학교)라고 하며 ‘うち(우찌)’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일본어의 ‘うち’에는 안(うち)과 밖(そと)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경계선 의식이 강하다. 일본에서는 동일한 공동체에 속해 있어도 각자의 역할과 영역이 분명하다. 싫은 부탁은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친분 때문에 규칙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의 시간과 물건과 사생활을 마음대로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러나 경계가 지나치면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강박에 갇혀 고립과 외로움을 자초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옳을까? 당연히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우리’가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서로를 붙들어 왔으며, 일본은 ‘うち(안)’가 침해 받는 것을 경계하여 서로의 거리를 지켜 왔다. 한국의 ‘우리’가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일은 나의 일이기도 해”라고 말할 때 일본의 ‘うち(안)’는 “너는 나의 うち(안)와 다른 사람이기에 나는 네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을게”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태도가 모두 필요하다. ‘우리’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생각을 지워버려서도 안 되고, ‘うち(안)’라는 명분으로 자유를 지킨다며 모든 관계의 끈을 잘라내서도 안 된다. 성경은 공동체를 한 몸에 비유한다.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다. 눈은 손이 아니고, 손은 발이 아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모두 똑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한 몸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내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삼키지 않으며, ‘うち’라는 이름으로 고독한 사람을 방치하지 않는다. 도와주고 싶을 때는 내 방식대로 밀고 들어가지 않고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라고 먼저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대로 거리를 두며 지켜보더라도 상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우리”와 일본의 “うち(안)”가 사랑과 배려의 모습으로 만나는 자리다. 가까이 다가가되 강제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되 외면하지 않으며, 함께 책임지되 상대의 선택권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우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함께 울어 주는 마음이며, 일본의 “우리(うち=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다. 공동체에 따뜻함만 있고 경계가 없으면 간섭이 되고, 경계만 있고 따뜻함이 없으면 고립이 된다. 따뜻함과 경계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낀다. 참된 ‘우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는다. 성숙한 ‘うち’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 도움을 주되 선택을 존중하는 것, 거리를 두되 마음까지 멀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한국의 ‘우리’와 일본의 ‘우리(うち)’가 서로에게 배우며 만들어 가야 할 더 넓고 따뜻한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타인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고립된 이웃을 외면하는 차가움 뒤에 숨지 않게 하시고, 반대로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내 생각과 속도만을 강요하며 상대방을 숨 막히게 하지 않게 하소서. 내 안의 조급함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감정을 쏟아내거나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싶을 때는 잠시 멈추어 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묻는 ‘조심스러운 더딤’을 배우게 하소서. 반면 낙심한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하고 잘못을 고백하며 배려를 실천하는 일에는 계산 없이 ‘신속하게’ 행동하게 하소서. 가까이 다가가되 강제하지 않고, 거리를 지키되 외면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을 갖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열고, 내 입술과 마음은 한 걸음 멈추어 다정하게 움직임으로써, 존중과 사랑이 공존하는 안전하고 따뜻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