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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묵상

오늘의 말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야고보서 1:19)"

오늘의 묵상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오래 살아보니 같은 일을 처리하는 한국과 일본의 방식이 꽤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한국에서 고장 난 에어컨의 수리를 위해 전화를 걸면 이런 대답을 들을 확률이 높다. “기사님이 근처에 계시니 오늘 오후에 한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일정이 꽉 차 있으나 최대한 빨리 방문하겟습니다.” 그리고 담당자는 최대한 빨리 현장으로 달려온다. 일단 찌는 듯한 더위에서 처한 고객을 돕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당장 부품이 없으면 완벽한 수리는 아니더라도 부품이 조달될 때까지 임시로라도 작동하게 조치해준다. 일본에서는 조금 다른 대응을 경험할 수 있다. 먼저 방문 가능한 날짜를 확인한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방문 후 현장을 조사하여 견적서를 만들고, 의뢰자의 승인을 받는다. 그 후 부품을 주문하고 부품 조달 일정을 예상하여 일정을 조금 여유롭게 재 조정하고 약속한 날에 수리를 진행하여 완성한다. 한국인이라면 이 복잡한 절차부터 숨이 막힌다. 지금 당장 더위가 해결되야 하는데 “일단 와서 보지 않고 왜 이렇게 절차가 많고 복잡하다”며 답답해진다. 하지만 일본은 승인받지 않은 작업을 임의로 진행했다가 생기는 비용이나 책임 문제를 더 염려한다. 식당에서의 대응도 차이가 크다. 한국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며 “파는 빼주시고, 국물은 조금 많이 주세요.”라고 가볍게 요청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네, 그렇게 해드릴게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음식을 먹다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가볍게 더 요구할 수도 있다. 메뉴판에는 없는 요청이나 반찬의 추가와 같은 것도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어 주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식당에서 똑 같은 요청을 하면 여러 이유를 들어 “죄송하지만 어렵습니다”라든가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한국 손님은 “국물이나 반찬을 조금 더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싶어 서운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해진 분량과 가격, 조리 순서와 맛의 균형을 모두 고려하는 일본 식당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대응이다. 한국에서는 상황에 따라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인간적인 배려로 여겨질 때가 많지만 일본에서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배려로 여겨진다. 회의 문화에서도 양국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 회사의 경유 담당 직원이 “이 신청서를 모바일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책임자는 그 아이디어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좋아요. 다음 주부터 시범적으로 해봅시다”라고 즉각 반응한다. 곧바로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지고 담당자도 정해진다. 신청서의 정확한 디자인이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아도 홍보 문구부터 작성하기도 한다. 시행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회사라면 “담당 부서와 협의했나요?”, “기존 규정과 충돌하지 않나요?”, “종이 신청을 원하는 고객은 어떻게 하나요?”,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나요?”와 같은 여러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한국식으로 보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왜 그렇게 많은 문제를 생각하는가?”라며 답답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일본에서 한국에서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면 “관련 부서와 상의하거나 조율도 없이 어떻게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는가?”라며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눈 앞에 급한 환자가 쓰러져 있다면 신속한 대응이 옳다. 하지만 수백 명이 이용할 건물을 짓거나 많은 생명을 태운 열차를 운행한다면 사전 점검을 결코 생략해서는 안 된다. 작은 나사 하나, 신호 체계 하나, 보고 절차까지 하나 하나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일본 신칸센의 기록은 상상을 초월한다. 2024년 열차 1편당 평균 지연시간은 자연재해를 포함해도 약 1,4분에 불과하다. 1964년 개통이래 인명사고는1995년 손가락 끼임으로 인한 사망사고 단 한건 뿐이며, 60여년 동안 운행으로 인한 사망자는 ‘0’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철저한 점검과 준비 때문이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부 청소팀의 위치와 선이 정해져 있고, 짧은 시간 안에 좌석을 돌리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음 승객을 맞을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반복된 훈련과 표준화가 만들어 낸 결과다. 사전 조정과 재발 방지를 위한 준비성이나 훈련은 일본의 큰 장점이다. 한국이 큰 재난이나 긴급 상황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 또한 세계가 놀라는 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성격이 급해서가 아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완벽한 지침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능한 방법부터 찾아 곧바로 시행에 옮긴다. 상황이 바뀌면 진행중이라도 계획을 곧바로 바꾸기도 한다. 사람과 장비,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집중시키는 신속한 결단력과 적응력은 한국의 강력한 장점이다. 그러나 모든 장점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한국의 “일단 합시다”가 지나치면 수시로 결정이 뒤 바뀌어 오늘 하던 일을 내일 멈추야 하는 혼선이 생길 수도 있다. 일은 빨리 끝내도 기록이 남지 않아 다음 사람은 같은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시간은 단축되어도 그 과정속에서 누군가가 소외되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 반면 일본의 “확인해 보겠습니다”가 지나치면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도움을 받지 못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담당자는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권한이 없어 손을 쓰지 못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를 기다리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신속함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며, 자기 확신으로 준비 없이 밀어붙이면 실패할 확률이 커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신중함이 언제나 지혜인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걱정으로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한 채 검토만 거듭하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려는 회피일 수 있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무조건 빨리 움직이거나 아니면 무조건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에 빨라야 하고 무엇에 느려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분별’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행동할 때가 많다. 타인의 말을 듣는 데는 지독히 느리면서 내 주장을 펼치는 데는 번개처럼 빠르다. 도움을 줄 때는 저울질하며 오래 고민하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신속하다. 잘못에 대한 사과는 뒤로 미루면서 화는 기다림 없이 표현한다. 감사는 마음속에만 담아 두지만 불평은 곧바로 입 밖으로 쏟아낸다. 어떤 소문을 들으면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러 사정을 따지며 때를 미룬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엉클어진 우리의 속도를 바로잡는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빨리 다가가야 하지만,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극도로 느려야 한다.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데는 빨라야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대응을 늦춰야 한다. 선한 일을 시작하는 데는 담대하게 속도를 내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형편을 무시하고 내 속도로 너무 밀어붙이지는 않는가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두고 결코 서두르지 않으셨다.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는 밤새워 기도하셨고, 때로는 몰려드는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말씀하실 때와 침묵하실 때, 나아가실 때와 기다리실 때를 정확히 분별하셨다. 예수님의 삶에는 한국적인 신속함이나 일본적인 신중함이 어느 한쪽만 있지 않았다. 그분에게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속함’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르는 ‘신중함’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니 무조건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한과 언행을 경계해야 한다. 반대로 “좀 더 기도해 봅시다”라는 말도 순종을 미루는 영적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하게 말씀하신 사랑과 용서, 섬김의 영역은은 더 이상 검토나 회의가 필요하지 않다. 배고픈 사람을 돕는 데 긴 회의가 필요하지 않고, 잘못을 사과하는 데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릴 이유도 없다. 외로운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철저한 검토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반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결정, 누군가를 책망하거나 중요한 일을 맞길 때는 결코 서둘러서도 안 되며 충분히 듣고 살펴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결국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면 그 속도가 빠를수록 목적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사랑이 없는 절차는 상처받은 사람의 길을 막아버리는 차가운 장벽이 된다. 한국의 신속함에는 일본의 꼼꼼함이 보완되어야 하고, 일본의 신중함에는 한국의 과감한 결단력이 더해져야 한다. 사랑해야 할 때는 신속히 다가가고, 판단해야 할 때는 천천히 살펴야 한다. 순종해야 할 때는 지체하지 말아야 하고, 분노가 일 때는 반드시 잠시 멈추어야 한다. 결정하기 전에는 충분히 들어야 하고, 결정한 뒤에는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언어 습관뿐 아니라 우리 삶 전체의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이자 가속페달이다. 사랑을 표현하고 감사를 전하는 일은 오늘 당장 해야 하지만, 화를 내는 일과 타인을 판단하는 일은 내일로 미루어도 결코 늦지 않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무조건 빠른 사람도 아니요, 언제나 느린 사람도 아니다. 빨라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잘 아는 사람이다. 사랑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고, 지혜 때문에 잠시 멈추며, 하나님의 뜻이 분명할 때 담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내 안의 조급함으로 인해 타인의 말을 깊이 듣기보다 내 주장을 먼저 내세웠던 매일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는 번개처럼 빠르면서도, 사랑을 베풀고 사과를 건네는 일에는 이리저리 재며 굼떴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매일의 삶의 속도를 주님의 말씀에 맞추어 조율하기를 원합니다. 감정을 쏟아내고 화를 내고 싶을 때는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잠시 멈추어 서는 ‘더딤’을 배우게 하소서. 반면, 낙심한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잘못을 고백하며, 이미 명하신 선한 일에 순종할 때는 지체 없이 결단하는 ‘신속함’을 허락하소서. 세상의 기준에 쫓겨 무조건 속도를 내기보다 주님이 바라보시는 올바른 방향을 먼저 보게 하시고, 메마른 절차 뒤에 숨어 사랑하기를 회피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먼저 열고, 내 입술과 마음은 더디 움직임으로써, 주님의 성품을 닮은 균형 잡힌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추신: 오끼나와는 이번 태풍의 번방에 있었음에도 바람의 세기가 상상이상으로 엄청났습니다. 태풍이 약해지기는 하나 북한과 한국을 지나간다고 하니 큰 피해가 없이 지켜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