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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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도즈워스(휴머니스트)』는 성공한 한 남자가 인생의 후반기에 자신의 삶을 진짜로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이야기다. 주인공 샘 도즈워스는 젊은 시절부터 성실하게 일해 자동차 회사를 크게 키운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한 뒤, 아내 프랜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일에 몰두하느라 아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이제라도 부부만의 시간을 누리며 더 많은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유럽 여행은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기보다, 오랫동안 둘 사이에 감추어져 있던 가치관의 차이와 마음의 거리를 드러내고 만다. 프랜은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는 아직도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으로, 유럽의 화려한 사교계를 자신의 젊음을 증명할 무대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샘의 투박함과 성실함을 촌스럽게 여기며 그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젊고 세련된 귀족 쿠르트 폰 오버스도르프에게 마음을 빼앗겨, 지금껏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 준 샘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젊음과 인정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으로 신뢰와 책임을 짓밟게 된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예전 같지 않은 몸과 마음,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는 내가 붙잡고 있던 가능성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프랜처럼 변해 가는 겉모습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면의 깊이를 채워 갈 것인가’라는 갈림길 앞에 선다. 프랜은 외모에 집착한 나머지, 결국 자신을 더 깊은 외로움과 불안 속으로 몰고 간다. 남겨진 샘은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고, 가정을 지키고 싶어 했지만 프랜의 이기적인 태도 앞에서 샘의 노력도 점점 힘을 잃어 간다. 샘의 투박함은 단점으로 여겨졌고, 그의 성실함은 진부함으로 취급되었으며, 그의 헌신적인 사랑은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함께 산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어도 상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먼 타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상처 입은 샘의 삶에 이디스 코트라이트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디스는 유복하고 교양 있는 가정에서 자랐고, 영국인 외교관과 결혼했으나 사별의 아픔을 겪은 미국인 미망인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살아왔지만, 그 인생을 허영의 무대에 던지지 않는다. 사교계에서 프랜처럼 자신을 과시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이디스는 자신의 나이와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이다. 샘은 이디스와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을 포장하거나 세련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이디스는 샘이 가진 정직함, 성실함, 따뜻한 인간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샘은 그녀의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꾸미지 않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사람에게는 이런 관계가 필요하다. 나를 끊임없이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관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고 다시 세워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나의 부족함을 꼬투리 잡아 나를 작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선함과 가능성을 발견해 주는 관계가 진짜 좋은 관계다. 이디스는 상처 입은 샘에게 그런 회복의 통로가 되어 준다. 그렇다고 샘이 분별없이 이디스에게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버스도르프와의 결혼이 무산되어 비참한 처지가 된 프랜이 다시 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샘은 책임감과 연민 때문에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프랜의 모습을 보며, 샘은 사랑과 신뢰가 사라진 관계를 억지로 붙잡는 것은 무의미하며 모두를 살리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임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허영과 이기심을 끝없이 대신 채워 주며 살 수는 없다. 우리 역시 종종 이런 관계 속에서 갈등한다. 오래된 인연이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혹은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저 참고 버티는 것이 옳다고 믿을 때가 있다. 물론 사랑에는 깊은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상대의 연약함을 오래 품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억지로 참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계속해서 한 사람을 작게 만드는 관계로 영혼이 메말라지며, 자신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면 조용히 멈추어 서서 그 관계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즈워스』는 인생의 후반기에도 새로운 삶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실패와 아픈 상처가 있어도, 젊은 시절의 꿈이 희미해진 자리에서도, 더 깊고 고요한 평안을 배울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겉사람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낡아지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고 전한다. 중년에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모습은 때로 어설퍼 보일 수 있고, 이미 늦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시간의 많고 적음보다,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더 귀하게 보신다. 사회에서 큰 성공을 이룬 샘은 이미 중년에 이르렀고, 깊은 상처와 결혼의 실패를 겪었지만 그는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자신을 진짜로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 우리 삶에서도 실패와 상처, 특히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은 우리를 쉽게 절망하게 만든다. “이제 와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 나이에 무슨 새 출발인가”라며 주저앉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눈부시고 찬란한 아침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을이 지는 초저녁 같은 인생에도, 겸손한 마음과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다. 변해 가는 외모나 지나간 명성에 매이지 않고 속사람의 성숙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에 고요한 은혜가 임한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안에 있는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고 싶어 하는 부질없는 욕심과, 사람들의 칭찬과 제가 이룬 성과들을 영원히 쥐고 있으려 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그런 저를 용서하시고 겉모습이 낡아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제 안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나이 들음을 부끄러워하거나 서글퍼하지 않게 하시고, 예전 같지 않은 모습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지나온 세월 속에 깃든 상처와 배움을 인생의 흔적으로 여기게 하시고, 세상의 화려한 인정과 박수보다, 주님 앞에서의 담담한 진실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잘못된 관계 속에서 사랑이나 의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계속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허영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관계를 정직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저 또한 누군가의 영혼을 작게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이디스처럼 곁에 있는 사람의 본모습을 아끼고 살려 내는 따뜻한 존재가 되게 하소서. 실패와 아픔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너무 늦었다고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잃어버린 겉모습에 매여 슬퍼하기보다, 주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질 제 영혼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묵묵히 걸어가게 하소서.” 오늘은 세상의 허영과 조급함에서 벗어나, 초저녁 같은 인생에도 새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정직하게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