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8:16-17)"
—
오늘의 묵상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메인 스트리트(일본어역 本町通りMain Street를 읽고 쓴 글)』는 한 이상주의적인 여인이 작은 은둔의 마을 안에서 겪는 깊은 좌절과 고독을 담아낸 작품이다. 제목이 뜻하는 '중심가'는 단순히 번잡한 물리적인 길이 아니다. 그곳은 한 공동체가 무엇을 숭상하고 무엇을 배척하는지, 어떤 이에게 숨 쉴 자리를 내어주고 어떤 이를 소리 없이 밀어내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주인공 캐럴 케니콧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가꾸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대단한 혁명가도, 악한 의도를 품은 이도 아니다. 단지 무미건조한 삶의 파편 속에 아름다운 예술과 깊은 사유, 영혼의 숨통을 틔울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의사인 남편 윌 케니콧을 따라 정착한 '고퍼 프레리'라는 작은 마을은 그녀의 열망을 수용하기엔 너무도 비좁았다. 그곳에는 변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었으나 영혼을 품을 넓음이 없었고, 일사불란한 질서는 존재했으나 개인의 자유는 메말라 있었다. 이웃이라는 이름의 친밀함은 때로 서로의 사생활을 옥죄는 숨 막히는 감시망으로 변모하곤 했다.
처음에 캐럴은 자신의 순수한 열정이라면 이 낡고 지루한 거리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요지부동의 철벽 같은 상황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익숙한 생활방식만이 정상이라 고집하며, 캐럴의 개혁적인 생각이나 그녀의 낯선 질문들을 몹시 불편해했다. 결국 더 좋은 것으로의 개혁에 대한 캐럴의 이상은 교만으로 오해받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그녀의 갈망은 공동체를 향한 불평불만으로 왜곡되어 판단받았다.
이 소설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고퍼 프레리의 주민들이 결코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고, 자신의 가족들을 정성껏 돌보며, 부지런함으로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이다. 그러나 비극은 바로 그 평범함의 맹목성에서 싹튼다. 때로 인간은 전혀 악의가 없었음에도 타인을 짓누를 수 있다.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아니 선한 의도일지라도 집단의 익숙함을 앞세워 누군가를 넘어뜨릴 수 있고, 공동체를 수호한다는 숭고한 명분 아래 한 인간의 정당한 주장을 완전히 묵살하기도 한다. 공동체는 사람을 살려내는 따뜻한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도리어 획일화된 기준과 전통과 같은 규칙을 강요하며 사람을 길들이는 법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캐럴 역시 온전한 구조자는 아니었다. 그녀 또한 마을 사람들의 거친 삶을 쉽게 단정 짓고, 자신의 이상만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우를 범했다. 척박한 현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이들의 고단함과 생존의 이유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그저 답답하고 촌스러운 집단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캐럴이 옳고 마을이 틀렸다는 이분법이 아니다. 이상을 품은 자에게는 타인의 삶을 기다리는 겸손이 필요하고, 익숙한 질서를 지키는 자에게는 낯선 목소리를 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고퍼 프레리 안에서 살아간다. 가정, 직장, 혹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는 이미 형식화된 언행과 규칙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누리지만, 동시에 정형화된 우리만의 틀로 타인을 규정하고 가두어버리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다"라는 관습은 생명의 흐름을 막아서는 벽이 되고, "우리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다수결의 상식은 한 영혼의 몸부림을 배어버리는 칼날이 된다.
스가랴 선지자는 진정으로 회복된 공동체의 지표로 '진리'와 '화평'을 동시에 제시한다. 진리가 없는 화평은 문제를 덮어두는 거짓 침묵에 불과하고, 화평이 없는 진리는 사람을 난도질하는 무기가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는 거짓 평안으로 어둠을 숨기는 곳도 아니요, 내가 옳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함부로 상처 주는 곳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평안을 지킨다는 이유로 아파하는 자를 침묵시키고, 진실을 말한다는 이름으로 사랑 없는 규칙을 뱉는다. 그러나 참된 은혜는 완벽한 공동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교만과 조급함을 깨닫고 내가 불편해하는 이들이 가진 이면의 두려움과 수고를 발견하는 눈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야청청한 혼자만의 개혁가로 세우지 않으시며, 맹목적인 무리들에 묻혀 사는 방관자로도 부르지 않으신다. 진실을 말하되 사람을 살려내고, 화평을 구하되 거짓에 안주하지 않는 자로 부르신다. 우리 안에 도사린 완고한 고퍼 프레리와 조급한 캐럴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의 진실은 부드러워지고 우리의 사랑은 깊어진다. 서로의 다름을 견뎌내고 판단을 멈출 때, 우리가 걷는 “메인 스트리트”는 비로소 메마른 통제 구역이 아닌 찬란한 은혜의 길로 거듭나게 된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마음에 숨어 있는 완고함과 익숙함 안으로 도피하려는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제 방식과 다른 이들을 은근히 밀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성급하게 판단했음을 용서해 주소서. 제가 옳다고 믿는 신념 뒤에 도사린 교만과 조급함을 용서하시고, 진실을 말하되 영혼을 살려내는 사랑의 언어를 부어 주소서. 거짓된 평안으로 아픈 진실을 덮지 않게 하시고, 공의를 외치며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게 하소서. 제 곁에 있는 이들의 침묵 속에 감추어진 외로움과 갈망을 먼저 헤아리는 따뜻한 눈과 손을 허락하소서. 제가 속한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 먼저 들으시는 주님을 닮아 귀를 열게 하소서. 성급한 결론 대신 한 번 더 질문하고, 불편한 사람을 회피하기보다 그 마음의 고단함을 품어주는 성숙함을 주소서. 제 안에 숨어있는 고퍼 프레리 같은 완고함도, 캐럴 같은 서툰 조급함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숨 쉴 자리를 내어주며 판단 대신 긍휼을 선택하는 복된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내가 가진 기준의 틀로 누군가를 가두거나 밀어내던 완악함을 멈추고, 진실과 화평으로 이웃을 살리는 온전한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