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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묵상

오늘의 말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서 3:21)"

오늘의 묵상

조지 버나드 쇼의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다』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다. 쇼는 자녀를 부모가 원하는 모양으로 찍어내야 할 재료처럼 대하는 세상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녀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부모의 사회적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소유물도 아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 부모 집에서 성장하지만, 그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다. 자녀에게도 자녀만의 마음이 있고, 고유한 성장 속도가 있으며, 자기만의 두려움과 기쁨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내 뜻대로 아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주 쉽게 불안과 뒤섞이곤 한다. 혹시 내 아이가 경쟁에서 밀릴까 봐 두렵고,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조급하며,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종종 이런 불안을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녀를 재촉하고, ‘보호’라는 명목으로 자녀의 선택권을 무시하며, ‘염려’라는 핑계로 자녀의 감정과 마음을 억눌러 버리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물론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는 배움과 경계가 필요하다. 공동체의 규칙을 익히고 책임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도 필수다. 그러나 가르침과 지배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올바른 훈육은 부모의 분노를 배출하는 것과 같을 수 없다. 아이를 사랑으로 세워주는 말과 부모의 감정에 의한 몰아붙이는 말은 그 열매부터가 다르다. 자녀는 부모가 쏟아내는 잔소리보다, 부모가 보여주는 눈빛과 태도,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 주는 신뢰 속에서 더 크게 성장한다. 쇼가 제안하는 핵심은 자녀를 무책임하게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깊이 존중하고 자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할 때는 그 명분 속에 진정으로 자녀만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 의한 것인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부모의 해결되지 않은 열등감, 비교의식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부모가 이루지 못한 과거의 꿈을 자녀의 어깨에 지우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모든 행동이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가 짜놓은 계획표나 성적표 속에 갇힐 수 없는 훨씬 더 큰 존재다. 자녀의 삶은 성공시켜야 할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생명이다. 생명은 억지로 잡아당기거나 밀어붙인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따스한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인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때로는 성급한 개입보다 기다림이 최고의 사랑이 되며, 가르치려 들기보다 경청이 더 큰 배움이 된다. 부모는 자녀보다 조금 먼저 살아본 사람일 뿐이다. 경험을 토대로 갈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먼저 살았다는 이유로 자녀의 인생 경로를 대신 결정할 권리는 없다. 부모의 경험은 귀한 자산이지만, 자칫 그것이 자녀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두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가진 지혜는 자녀의 가능성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가 자기 길을 찾도록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어야 한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한시적으로 맡기신 존재다. 내 마음대로 처분하고 소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안내자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섬김에 가깝다. 자녀의 미래를 움켜쥐려는 손을 펴고, 아이가 넘어졌을 때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만이 아니라, 부모의 내면도 함께 성숙해지는 시간이다. 아이의 더딘 걸음을 견뎌내며 부모의 조급함이 깎여 나가고, 자녀의 크고 작은 실수를 마주하며 부모 안에 있는 완벽주의와 교만이 낮아진다. 부모의 생각과 다른 자녀의 기질을 수용하면서 부모의 사랑도 깊어진다. 결국 양육은 부모가 자녀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시간이다. 자녀는 부모의 기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부모의 눈에는 멀리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 불안하고 답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는 그 광야 같은 길을 통해 자신만의 배움과 회복을 경험할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 인생의 모든 장애물과 위험을 미리 제거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자녀가 거친 세상에서 길을 잃고 상처받았을 때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자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가정은 자녀가 자신의 완벽한 성과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험장이 아니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비교와 숨 막히는 경쟁을 요구하며 다그친다. 그런데 가정마저 자녀를 평가하는 법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은 자녀가 실패하여 무너진 모습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용납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안식처여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와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부모, 자녀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부모, 아이의 생각을 끝까지 경청해 주려는 정직한 부모다. 통제보다 관계의 끈을 더 소중히 여기는 부모 곁에서 자녀는 두려움 대신 깊은 신뢰를 배우고, 위선보다 진실을 익히며, 세상의 성공보다 사랑의 위대함을 먼저 학습하게 된다. 자녀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할지라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아이의 무의식 깊은 곳에 남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되었던 기억은, 훗날 자녀가 험한 세상에서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완벽한 길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만나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를 내 뜻대로 휘두르기 위해 더 강하게 움켜쥐는 손이 아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내 욕심대로 아이를 만들려는 열심보다, 자녀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며, 통제가 아니라 눈물로 기다려 주는 것이다. 자녀를 내 꿈의 연장선으로 삼지 않고, 아이가 하나님안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도록 그 곁에서 동행해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부모의 사랑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자녀를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를 제 뜻대로 조종하고 움직이려 했던 불안과 이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이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뒤처질까 봐 조급해하며, 남들과 비교하며 체면을 생각 했던 부끄러운 모습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이런 제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하시고, 사랑과 통제를 혼동하지 않는 지혜를 주소서. 제 기대와 욕심을 자녀에게 무겁게 지우지 않게 하시고, 자녀의 삶을 제 체면이나 자랑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하소서. 자녀의 느림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주시고, 자녀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쉽게 지적하기보다 먼저 경청하게 하시고,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자녀의 소유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을 한시적으로 돌보는 청지기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자녀가 넘어질 때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 머무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제가 받은 사랑과 은혜로 자녀를 더 깊이 품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자녀를 강하게 붙잡기보다 믿음으로 맡기고, 불안으로 재촉하기보다 기다림으로 동행하며, 자녀를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생명으로 존중하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