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록

칼럼

2026년 7월 2일 묵상

오늘의 말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오늘의 묵상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성 조앤(일본어역 Kindle Edition 聖女ジャンヌ를 읽고 쓴 글)』은 잔 다르크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조앤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화려한 가문의 귀족도, 훈련받은 장군도, 지식이 높은 학자도 아니었다. 그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엔 지극히 작고 연약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세상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신뢰하며, 그 부르심을 따라 위기에 처한 조국 프랑스를 건져야 한다는 소명이었다. 하지만 군사책임자인 로베르는 조앤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한낱 어린 소녀가 국가와 군대의 운명을 논하는 모습이 그저 황당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앤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정교하게 꾸며진 화려한 말솜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앤의 진실함은 주위 사람들을 전염시키기 시작한다. 기사 폴랑지의 도움으로 그녀는 훗날 왕위 권좌에 오를 도팽 샤를을 만나게 된다. 샤를은 마땅히 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리더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자기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이었다. 그런 샤를을 향해 조앤은 도망자의 가면에 숨지 말고 당당히 왕의 자리에 서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대면은 단순히 한 소녀가 위축된 권력자를 격려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사람들의 눈치와 두려움에 짓눌려 있던 한 인간에게, 그가 본래 회복해야 할 진짜 존재 가치를 일깨워주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정교한 계략을 짜는 군사 전략가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용기를 깨우는 불꽃이었다. 군 지휘관인 뒤누아를 비롯한 노련한 군인들은 이 어린 소녀를 낯설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이내 조앤이 품은 순수한 믿음과 거침없는 추진력에 동화된다. 조앤이 그들에게 준 것은 승리에 대한 값싼 보장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과 패배주의라는 두려움에 갇혀 멈춰 서 있던 이들에게, 다시 연대하여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동력을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조앤이 걷는 길은 그리 오래 박수를 받지 못했다.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그녀의 거침없는 확신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전세가 안정되고 권력 구도가 재편되자 사람들은 도리어 그녀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가공되지 않은 진실은 기득권의 세계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웅은 기념하기 쉽지만, 지금 내앞에서 나의 안일함을 지적하는 불편한 목소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영국의 워릭 백작은 조앤을 정치적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로 보았고, 재판을 주도한 주교 코숑은 그녀를 교회의 권위를 흔드는 이단으로 취급했다. 군목인 스토검버 역시 종교적 광신과 맹목적 애국심에 눈이 멀어 조앤을 정죄하는 데 앞장섰다. 쇼가 이 재판 과정을 통해 날카롭게 폭로하는 것은, 거대한 악이 언제나 흉측한 얼굴로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신앙과 체제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집단의 안정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한 인간이 외치는 진실한 목소리를 막는다. 이것이 『성 조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나는 진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구축해 놓은 평온한 일상을 흔드는 진실은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옳은 가치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가치가 나의 손해와 불편함을 요구할 때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삶의 정직한 자리를 향해 부르시는 그 세미한 음성을 세상의 타산적인 계산기로 짓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조앤은 결코 결점이 없는 초인이 아니었다. 어리고, 고집스러웠으며, 때로는 주변을 아슬아슬하게 만들 만큼 지나치게 곧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있었다.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얻기 위해 자기 내면의 양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았고, 단지 살아남기 위해 눈앞의 진실을 모른 척 팔아 넘기지 않았다. 타인의 평가라는 올무에 걸려 신념을 꺾기보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종착지는 아프고 처절했다. 철저한 오해와 고립 속에서 재판을 받고 마침내 화형대의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작품의 에필로그는 인간 사회의 더 깊은 모순과 역설을 보여준다. 살아 있을 때는 사회를 뒤흔드는 위험분자로 몰렸던 조앤이, 사후 수백 년이 흐른 뒤에는 온 세상이 추앙하는 성녀로 복권된다. 사람들은 기념비 위에 안전하게 박제된 죽은 조앤은 칭찬하지만, 만약 그녀가 다시 살아 돌아와 우리 곁에 선다면 여전히 불편해하며 다시 문을 걸어 잠글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역사 속 순교자나 양심적인 인물은 존경하면서도, 지금 내 곁에서 나의 위선을 들추어내는 불편한 진실은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조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모두가 시대를 구하는 거창한 영웅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도리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진실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부름이다. 실제의 전쟁터에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매일에는 수많은 전쟁들이 존재한다. 가정에서 정직한 얼굴을 마주해야 할 자리, 틀어진 관계 속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서해야 할 자리, 일터의 관행 앞에서 타협하지 말아야 할 자리,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 조용히 서주어야 할 자리들 말이다. 그 소박한 자리에서 우리는 늘 ‘사람의 시선과 눈치를 따를 것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정직한 양심의 소리를 따를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선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여주는 성과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을 주목하신다. 조앤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단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두려움에 떨던 인간이었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는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옭아매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후회하지 않을 정직한 길을 걷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걸음이 당장은 오해를 받거나 더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순종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안에는 늘 사람들의 평판과 시선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공의롭고 정직한 길을 알면서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침묵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주님이 마음속에 주신 작은 양심의 소리와 부르심을 세상의 계산기로 덮어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이러한 제 모습을 정직하게 직시하게 하시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올무에서 벗어나 주님을 신뢰하는 단단한 마음을 주소서. 역사 속 믿음의 선배들은 쉽게 우러러보면서도,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불편한 진실과 정의 앞에는 눈을 감지 않게 하소서. 나의 안락함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게 하시고, 진실함이 필요한 자리에서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사람의 박수가 늦어지거나 세상이 몰라줄 때에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세상의 요란한 평판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안전함을 누리며, 작은 양심의 부르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은혜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