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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일 묵상

오늘의 말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오늘의 묵상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의사의 딜레마(일본어역 Kindle Edition 医者のジレンマ를 읽고 쓴 글)』는 주인공 리지언이 마주한 어려운 선택을 다룬 작품이다. 그는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한 유명한 의사다. 그러나 그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결국 그는 한 환자는 치료하고 한 환자는 포기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선량한 의사 블렌킨솝은 평생 남을 돌보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가난과 병으로 지쳐 있다. 세상적으로는 크게 주목을 받는 인물은 아니지만, 자기 자리에서 아픈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 화가 두비데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 상처를 주는 비 인격자이다. 리지언은 착하지만 무명의 환자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위대한 예술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고뇌한다. 그러나 더 불편한 진실은 리지언의 마음속에 사적 욕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두비데의 아내 제니퍼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만약 두비데가 죽는다면 그녀가 자유의 몸이 되어 자신에게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계산이다. 그 선택은 정당한 의학적 판단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는 질투와 욕망, 그리고 자기합리화로 얼룩져 있었다. 이 작품은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무 자르듯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추악한 사적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진짜 동기를 숨기고, 사랑을 말하는 사람도 진실을 외면할 수 있으며, 재능 있는 사람도 타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인간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강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 내 판단은 언제나 공정했으며, 내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잠언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을 수 있는 마음의 깊은 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라는 초대의 말씀이다. 세상은 유명하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의 가치를 계산지만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은 유명세나 재능으로 판단될 수 없다. 가난지만 성실한 블렌킨솝이나 천재지만 비 도덕적인 두비데의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실망할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가볍게 여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이 작품은 재능과 인격의 문제도 생각하게 만든다. 두비데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반대로 블렌킨솝은 세상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아픔 옆에 머물렀던 사랑과 책임의 무게는 잴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세상은 눈에 띄는 성공은 쉽게 칭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수고는 쉽게 지나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름 없이 흘린 땀과 조용한 사랑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리지언의 고뇌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질과 시간과 마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연속 속에 산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에는 늘 우리의 진짜 마음이 드러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은근히 칭찬받고 싶은 욕구로 계산을 하고, 사랑과 용서를 외치면서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관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정직함이다. 은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리, 내 판단에도 욕심이 섞일 수 있음을 아는 자리, 내가 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는 자리에서 은혜는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을 때 가장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참된 은혜와 치유는 바로 그 부끄러운 인정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내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자리, 나의 의로운 판단 속에도 얼마든지 욕심과 편견이 섞일 수 있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마음의 굳은살이 벗겨진다.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고 믿는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지만, 나 역시 틀릴 수 있고 나약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안전한 사람이다. 몸의 질병을 고치는 것만이 치유가 아니다. 내면의 자기합리화를 내려놓고, 사람을 성과나 조건으로 평가하던 뒤틀린 시선이 교정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혼의 치유다. 우리의 시선이 사람을 계산하는 눈에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눈으로 옮겨 가기를 원한다. 타인의 화려한 재능보다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겉모습 너머에 있는 숨은 수고와 아픔을 헤아리는 따뜻함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선 앞에 내 마음의 숨은 동기를 정직하게 비추어보자.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거짓을 밝히시는 이유는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허영의 성벽을 허물고 더 진실한 존재로 다시 세우시기 위함이다. 타인을 판단하기보다 품어주고, 이용하기보다 살려내는 그 정직한 마음에 참된 평안과 은혜가 조용히 스며들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마음속에는 아직 제가 다 보지 못한 욕심과 자기합리화가 있습니다. 저는 공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 유익을 먼저 계산할 때가 있었고, 선한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품을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 이런 제 모습을 두려워 숨기지 않게 하시고,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하소서. 제가 사람을 재능과 성과, 혹은 나에게 주는 유익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화려한 사람을 쉽게 부러워하고, 조용히 수고하는 사람을 가볍게 지나치는 눈을 고쳐 주소서. 누군가의 겉모습 뒤에 있는 아픔과 수고를 보게 하시고, 쉽게 결론 내리기보다 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에도 제 마음을 다시 살피게 하시고, 좋은 명분 뒤에 숨어 있는 교만과 욕망을 분별하게 하소서. 사람의 생명을 계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늘은, 내 마음속 숨은 동기를 정직하게 살피며, 사람을 평가하고 계산하는 마음에서 사람을 살리는 마음으로 옮겨 가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