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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9일 묵상

오늘의 말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오늘의 묵상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일본어역 Kindle Edition シーザーとクレオパトラ를 읽고 쓴 글)』는 단순한 역사극이나 자극적인 로맨스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시저는 제국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자이지만, 잔인한 폭력이나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권력을 사사로운 감정의 배출구나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려 하지 않는 독특한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처음에는 스핑크스의 품에 숨어 있는 두려움 많은 철부지로 등장한다. 그녀는 머리에 왕관을 썼지만 왕관이 지닌 참된 무게를 알지 못했고, 사람들 위에 설 수 있는 자리에는 있었지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시저는 그런 클레오파트라에게 적을 잔혹하게 짓누르는 권력의 기술대신, 권력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내면의 ‘절제’를 가르치려 한다. 왕의로서의 참된 통치는 누군가에게 무소불위의 명령을 내리거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에게 받은만큼 되갚아주는 행위가 아니다. 진짜 힘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마음대로 휘두르는 능력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절제’에서 나온다. 상대를 말로 짓눌러 이길 수 있지만 침묵하는 힘이고, 상대를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기다려 주는 힘이며, 상대에게 되갚기 위해 징벌할 수 있지만 용서하는 힘이다. 시저는 이런 성숙을 몸소 보여주지만 클레오파트라는 그 길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녀는 힘을 얻자마자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벌을 내려 강한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 과거 약자일 때 받았던 상처와 열등감을 권력의 힘을 빌려 복수로 되갚으려는 미성숙함이다. 이러한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인간의 참 모습은 힘이 없을 때가 아니라 힘이 생겼을 때 더 잘 드러난다. 가난할 때보다 많은 것을 가졌을 때, 무시당할 때보다 인정받기 시작할 때, 낮은 자리에 있을 때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 사람의 진짜 됨됨이가 더 잘 드러난다. 권력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내면에 꽁꽁 숨겨져 있던 미성숙한 욕망들을 더 크게 부풀려 드러나도록 만들기도 한다. 권력이나 물질, 지식이나 지위와 같은 조건 자체가 본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손에 쥔 사람의 마음이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잔인한 복수를 낳고,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 물질을 가지면 방탕한 사치로 흐르며,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 지식을 가지면 타인의 영혼을 난도질하는 칼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이 지식을 가지면 타인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온유한 사람이 물질을 가지면 나눔의 통로가 되며,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갖는가’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가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 세상은 성을 빼앗은 사람을 영웅이라고 하며,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타인을 굴복시키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강자라고 말한다. 외부의 적보다 내면의 분노와 보복심리를 잠재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 훨씬 더 고결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 훨씬 더 값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외적인 성공으로만 평가될 수 없고, 그 성공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는가로 드러난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시저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전하고자 했던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는 마음’은 거대 권력자에게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작은 권력을 휘두른다. 가정 안에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가족들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일터에서의 작은 권한이 누군가에게 기회를 줄 수도,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부모의 권위, 지도자의 영향력, 선배의 기득권, 아는 자의 지식을 어떻게 쓰느냐가 우리의 성숙을 드러낸다. 힘을 얻었다고 해서 내면이 저절로 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힘을 얻으면 그 사람의 참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마음이 작은 사람은 큰 힘을 가져도 소인배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넓은 사람은 작은 힘으로도 능히 사람을 살려낸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짓누르지 않으셨다. 마땅히 온 인류의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셨지만, 오히려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셨다. 주님의 힘은 압제가 아니라 연약한자를 일으키는 생명력이었고, 그분의 권위는 공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권위였다. 진정한 성숙은 힘을 가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더 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강해진 뒤에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법’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뒤에도 겸손을 잃지 않는 법이며,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순간에도 사랑을 선택하는 법이다. 누군가를 벌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자비를 잊지 않는 법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힘을 가져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하나님은 힘을 갖기 전에 힘을 다스릴 마음의 그릇을 먼저 준비하라고 명하신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조차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다. 내게 힘이 생겼음에도 더욱 스스로를 조심하고 삼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상처 준 사람에게 복수로 갚지 않고, 권위를 섬김으로 바꾸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위에 쓸 더 크고 화려한 왕관이 아니다. 그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과 태도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더 큰 힘과 권한을 얻는 일에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인정 뒤에 숨어 있는 교만과 복수심을 분별하게 하시고, 제가 가진 말과 지위와 영향력이 누군가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흉기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제가 누리는 편안함과 유익이 혹시 누군가의 아픔이나 부당한 구조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시고, 힘을 얻었을 때 더 조심하게 하소서. 이길 수 있을 때 더 부드럽게 하시며, 판단할 수 있을 때 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제 안의 세속적인 계산기를 내려놓게 하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제 삶이 힘의 논리가 아니라 주님의 공의와 사랑 위에 굳건히 세워지게 하소서.” 오늘은, 미움과 복수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더 높아지려는 마음보다 더 낮아져 섬기는 마음을 구하며,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 삶을 새롭게 빚어가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