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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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바바라 소령(한글번역이 아닌 Kindle Edition バーバラ少佐를 읽고 쓴 글)』에는 ‘소령’이라 불리는 젊은 여성 바바라가 등장한다. 그녀는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비는 군인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단체인 ‘구세군’의 촉망받는 리더다. 신념이나 신앙,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총칼을 들고 싸우는 군대가 아니라,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한 영적 최전선에서 싸우는 구세군의 대장인 셈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진짜 전쟁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물리적 전쟁터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일상 깊숙한 곳,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싸우는 그 자리 역시 또 다른 치열한 전쟁터다. 바바라는 그곳에서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누고 넘어진 이들을 일으키며, 영혼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바라 앞에 지금껏 알지 못했던 아버지가 나타난다. 전 세계에 무기를 팔아 엄청난 부를 축적한 무기 제조업자 언더샤프트다. 겉보기엔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생명을 살리려는 바바라가 ‘선’이고, 생명을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어 파는 아버지가 ‘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바바라가 속한 구세군이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보살피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구세군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놓은 이들은 다름 아닌 술을 팔아 돈을 번 사람과 무기를 팔아 부자가 된 바바라의 아버지였다. 바바라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생명을 담보로 하여 벌어들인 더러운 돈으로 사람을 돕고 구하는 행위를 선한 일이라 할 수 있는가? 더러운 돈도 선한 일을 위해 사용되면 그 돈이 깨끗해지는가, 아니면 선한 일이 그 돈 때문에 더럽혀지는가?’ 이 모순 앞에서 그녀의 순수한 신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렇게 고뇌하는 바바라에게 아버지는 냉정하게 불편한 현실을 들이민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그 어떤 고결한 사상보다 당장 먹을 ‘빵’이 필요하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집’이 먼저라는 것이다. 사실 일자리가 없는 이에게는 내일의 구원보다 오늘의 ‘일터’가 절실하기에 그의 말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틀린 구석이 없다. 아무리 좋은 말과 따뜻한 위로를 건네도 배고픈 이의 배가 채워지거나 몸을 얼리는 추위를 녹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마음만으로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물질만으로도 살 수 없다. 우리에게는 육체적 굶주림을 채워줄 오늘의 빵도 필요하고, 동시에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줄 영혼의 위로도 반드시 필요하다. 안정된 일자리와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정의로운 구조와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모두 필요한 이유다. 성경의 미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단순히 ‘착한 마음을 품으라’고만 말하지 않고,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며 세 가지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난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구조와 모순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뜻한다. 또한 인자를 사랑하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을 계산 없이 품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함이며, 겸손하게 걷는 것은 내가 행하는 선한 일이 나의 만족이나 자만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상대를 내려다보지 않는 태도다. 바바라의 영혼 구원과 언더샤프트의 물질적 복지는 둘 다 홀로선 완전할 수 없으며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영혼을 말하면서 육체의 배고픔과 가난을 외면하는 것은 차가운 위선이며,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면서 인간이 가진 내면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은 오만이다. 사람는 서류 위의 차가운 통계 숫자가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 동정하며 베푸는 적선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신성한 생명이다. 진짜 책임감 있는 사람은 말로만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나의 이익이 흔들릴 때도 정직하게 올바름을 선택하는 사람, ‘좋은 일’을 한다는 핑계 뒤로 자신의 오만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사랑은 말보다 깊은 울림이 있고, 돈보다 따뜻한 온기가 있으며, 내가 옳다는 정의감보다 언제나 겸손하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큰 능력을 얻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삶의 도구와 외적인 환경은 날로 확장되는데, 정작 그것을 다스릴 제 안의 사랑과 책임감은 도리어 쪼그라들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편리함과 성공을 구할 때, 그것을 사랑과 섬김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깊은 영혼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제 손에 쥐어진 물질과 지식, 시간과 말의 힘을 오직 저와 제 울타리 안쪽만을 위한 방어벽으로 쓰지 않게 하소서. 욕망의 확장이 아니라 따뜻한 나눔과 섬김의 확장이 되게 하시고, 연약한 이웃들에게 숨 쉴 공간을 열어주는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빠르고 편리한 문명 속을 살아가면서도 인간다움의 본질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온 천하를 얻으려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비대해진 삶의 부피에 걸맞은 넓고 넉넉한 마음을 주사, 주님께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흘려보내는 성숙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은 내 손에 들린 능력과 도구들이 과연 누구를 향해 있는지 깊이 묵상하며, 소유의 크기보다 존재의 깊이를 구하고, 문명이 준 풍요와 편리함을 사랑과 섬김의 도구로 바꾸어 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