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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5일 묵상

오늘의 말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8:36)"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제4장에서 「마지막 언급: 기계와 신비」를 논한다. 그가 말하는 기계란 단순한 공장 장비나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 낸 모든 도구와 기술, 산업과 물질문명 등 인간의 물리적 능력을 확장시켜준 모든 수단을 뜻한다. 인간은 기계를 통해 손보다 더 강력한 힘을 쥐었고, 발보다 더 먼 곳으로 이동하며, 눈보다 더 멀리 보고 목소리보다 더 넓은 세상에 뜻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인간의 외적 신체를 엄청나게 키워준 셈이다. 베르그송은 기술이나 기계 자체를 악하게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노등의 고통을 덜어주고, 질병을 치료하며, 더 많은 이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문제는 기술이나 기계와 같은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다. 베르그송은 기계문명으로 인간의 몸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몸을 다스릴 내면의 영혼은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힘은 커졌으나 사랑이 정체되었고, 속도는 빨라졌으나 생각은 얕아졌으며, 도구는 넘쳐나는데 지혜는 고갈되었다. 이 실존적 불균형이 인간이 마주한 심각한 위기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이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정보를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지혜로워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락하지만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희미해졌고, 일상생활은 한 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으나 마음의 평안이나 감사는 도리어 줄었다. 왜냐하면 기술은 삶의 편의를 충분히 제공해 주지만, 우리가 가야 할 구체적인 목적지와 마음의 방향까지 정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거대해진 몸에는 그에 걸맞은 거대한 영혼이 필요하고, 커진 힘과 능력에는 그만큼의 무거운 책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도구와 힘을 적당히 다스리지 못하고 그것들에게 노예처럼 끌려 다니게 된다. 기술은 약자를 도울 수도 있지만 더 철저히 소외시킬 수도 있으며, 부유함은 나눔의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끝없는 탐욕의 불꽃이 될 수도 있다. 빠른 소통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상처를 확산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본질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있다. 그렇기에 베르그송은 “기계문명은 신비를 요구한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신비란 기이한 영적 체험이나 막연한 환상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을 이기적인 욕망의 감옥에 가두지 않고, 울타리 너머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게 만드는 깊은 영적 역량이자 확장된 사랑의 힘을 뜻한다. 즉, 비대해진 문명의 신체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영혼의 힘이다.

* 신비 없는 기계: 사랑 없는 힘은 폭력이 되고, 겸손 없는 지식은 냉소로 굳어지며, 은혜 없는 능력은 오직 자기중심적 이익만을 위해 쓰여 문명을 파멸로 이끈다. * 기계 없는 신비: 그러나 도구 없는 사랑 역시 현실을 바꿀 구체적인 힘을 잃는다. 굶주린 이에게 빵을 나누고 병든 이를 치료하려면 물리적인 손과 발, 즉 문명의 기술과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비가 영혼의 도약을 위한 것이라면, 기계는 그 사랑을 현실에 구현하는 몸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기계와 신비는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 통찰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외적인 축복과 물질적 능력을 구하면서도, 그것을 다스릴 깊은 사랑의 소양을 구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삶의 도구는 늘어가는데 나아가야 할 방향은 흐려지고, 편리함이 이웃을 섬기는 여유로 이어지기보다 더 단단한 자기중심성으로 굳어지곤 한다. 처음에는 선한 필요와 섬김을 위해 선택했던 도구들이, 어느새 나를 증명하고 과시하려는 욕망의 사치품으로 변질되는 선로의 이탈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경고는 세상의 가치를 무조건 거부하라는 금욕주의가 아니다. 무한한 힘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정작 그것을 부려야 할 인간의 영혼과 그것을 사용할 때의 마음가짐인 사랑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주객이 전도되는 것에 대한 경고다. 넓은 세상을 손에 넣었을지라도 영혼이 쪼그라들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닌 실패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큰 능력을 쥐여주기 전에 먼저 그 능력을 품어낼 깊은 마음을 요구하며, 우리가 가진 문명의 도구들을 오직 ‘사랑의 방향’으로 쓰도록 재정렬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폐기나 편리함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다. 문명의 확장 속도에 발맞추어 우리의 영혼과 사랑의 크기를 함께 키워가는 것이다. 내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내가 가진 지식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 내게 주어진 물질을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 말의 능력을 비난이 아닌 위로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 작은 실천의 자리가 바로 비대해진 기계와 거룩한 신비가 만나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살려내는 교차점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큰 능력을 얻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삶의 도구와 외적인 환경은 날로 확장되는데, 정작 그것을 다스릴 사랑과 책임감은 도리어 쪼그라들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편리함과 성공을 구할 때, 그것을 사랑과 섬김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깊은 영혼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제 손에 쥐어진 물질과 지식, 시간과 말의 힘을 오직 저와 제 울타리 안쪽만을 위한 방어벽으로 쓰지 않게 하소서. 욕망의 확장이 아니라 따뜻한 나눔과 섬김의 확장이 되게 하시고, 연약한 이웃들에게 숨 쉴 공간을 열어주는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빠르고 편리한 문명 속을 살아가면서도 인간다움의 본질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온 천하를 얻으려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비대해진 삶의 부피에 걸맞은 넓고 넉넉한 마음을 주사, 주님께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흘려보내는 성숙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은 내 손에 들린 능력과 도구들이 과연 누구를 향해 있는지 깊이 묵상하며, 소유의 크기보다 존재의 깊이를 구하며, 문명이 준 풍요와 편리함을 사랑과 섬김의 도구로 바꾸어 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