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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3일 묵상

오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제2장 「정태적 종교」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끊임없이 불안과 염려를 안고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뛰어난 ‘지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지성을 지녔기에 눈앞의 현실을 넘어 미래를 사유하고 계획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 능력으로 인해 아직 오지 않은 실패를 상상하고 언젠가 맞이할 죽음의 필연성을 미리 두려워하게 된다는 역설이다. 동물은 당장의 위험에만 반응하며 평온을 유지하는 반면, 인간은 사유하는 힘으로 인해 일어나지 않은 불확실성까지 미리 끌어당겨 영혼의 추위를 겪는 숙명을 안고 있다. 베르그송이 제시한 ‘정태적 종교’는 이처럼 차가운 지성이 가져다준 극심한 불안과 절망 앞에서 인간이 삶을 쉽게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벨트’이자 방어벽이다. 현실의 가혹함과 앞날의 두려움에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감싸 보호함으로써 삶의 의지를 꺾이지 않게 지켜주는 정신적인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거창하고 고차원적인 도덕적 실천을 도모하기에 앞서, 상처받고 떨고 있는 인간의 나약한 영혼이 절벽 아래로 추락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는 신앙의 형태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정태적 종교를 가능하게 만드는 내면의 힘을 ‘허구 형성 기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앙을 허황된 거짓말이나 착각으로 비하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허무함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 사람의 마음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위로가 되는 이야기와 상징,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지켜 주는 큰 존재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마음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붙들고 회복하려는 놀라운 작용이다. 인간은 살면서 만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를 돌보고 붙드는 강력한 초월적 힘이 있다"는 신성한 서사를 붙잡음으로써 비로소 절망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라는 선언은 불안에 떠는 연약한 인간에게 정태적 종교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강력한 보호의 음성이다. 앞날을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실패의 두려움으로 낙심해 멈추어 선 인간에게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만큼 완벽한 울타리는 없다. 이 거룩한 약속의 말씀은 지성의 부작용으로 인해 잠 못 이루고 방황하는 모든 영혼을 안전하게 지탱하며, 삶의 붕괴를 막아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처럼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보존해 주는 정태적 종교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세운 마음의 방어벽이 지나치게 견고해지면, 신앙은 합리적인 성찰을 거부한 채 나의 안위만을 구하는 기복신앙이나 맹목적인 미신으로 딱딱하게 굳어질 위험이 있다. 불안을 해소하려는 종교적 본능이 성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신앙은 오히려 사람의 시야를 좁히고, 하나님의 광활한 섭리를 내 두려움만 막아주는 개인용 보호막으로 축소시키고 만다. 정태적 종교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고, 그 안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울타리가 너무 높아지면,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은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 내 가족, 내 집단, 내 교회의 평안만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겉으로는 규칙과 의무를 잘 지키고 있어도 정작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마음은 점점 닫히게 된다.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가 도리어 타인을 배척하는 거대한 성벽이 될 때, 종교는 본래의 생명력을 잃고 집단적 이기주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참된 종교적 위로는 우리를 안전한 곳에 숨겨 두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상처 입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고 회복시킨 뒤,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힘을 주는 것이 참된 위로다. 울타리는 지친 영혼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일 뿐, 그 안에만 계속 머물면 신앙이 가르치는 더 넓은 사랑을 배우기 어렵다. 신앙이 단지 불안을 달래는 데만 머문다면 마음은 잠시 편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우리를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끈다. 보호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고, 연약한 사람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닮아 가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근원적인 나약함과 두려움을 절대로 정죄하지 않고 먼저 품어 주시지만, 우리를 그 안전한 방어막 속에만 머물러 있도록 방치하지도 않으신다. 은혜는 정태적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우리의 삶을 깨워, 이제는 국경과 장벽을 넘어 세상과 이웃을 향해 사랑의 문을 여는 역동적인 ‘개방성’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초청한다. 주님의 오른손에 붙들려 두려움 속에서 온전히 보호받은 영혼은 비로소 마음에 따뜻한 여유를 얻게 되며, 그 여유를 바탕으로 이제는 나를 넘어 타인의 떨리는 손과 그들의 두려움까지 깊이 공감하는 성숙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므로 문득 문득 밀려드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염려를 믿음이 부족한 증거라 자책하며 부끄러워하거나 애써 숨길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하늘의 보호와 위로가 필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며, 우리는 두려움에 파묻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위로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품 안에서 오늘 나의 지친 마음을 충분히 누이고 쉬게 하되, 그 보호받은 영혼이 닫힌 성벽이 되지 않게 하여 이웃을 향해 따뜻한 사랑의 행위로 활짝 피어나는 복된 하루를 완성해야 한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잦은 실수와 실패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며 두려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취약함 때문에 저 자신을 쉽게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생각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흔들리고 앞날을 계산할수록 낙심이 찾아올 때에도, 주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저를 붙들고 계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제 마음이 두려움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먼저 주님의 품 안에서 쉼을 얻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보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하소서. 제 신앙이 단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이기적인 습관으로만 굳어지지 않게 하소서.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찾았을지라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더 깊은 신뢰와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되, 그 울타리 안에만 갇히지 않고 울타리 너머에 있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향해 기꺼이 마음을 열게 하소서.” 오늘은 두려움과 불안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마음을 조용히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은혜 안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며, 나를 보호하시는 사랑을 힘입어 닫힌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