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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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 제4장 「사유의 영화적 기작과 기계론적 환상」에서 인간의 생각이 현실을 오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실은 본래 흐르고 있고, 생명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성은 그 흐름을 그대로 보기보다, 중간중간 멈춘 장면을 잘라 내어 그것을 현실 전체처럼 생각한다. 마치 영화가 정지된 사진들을 이어 붙여 움직임처럼 보이게 하듯, 우리의 생각도 살아 있는 삶을 몇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이해하려 한다. 이것이 베르그송이 말한 사유의 영화적 기작이다. 이 방식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우리는 사건에 이름을 붙이고,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말하고, 계획하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잘라 낸 한 장면을 삶 전체와 혼동할 때 생긴다. 한 번의 실패를 보고 인생 전체를 실패라고 부르고, 한순간의 어둠을 보고 앞으로도 계속 어두울 것이라고 단정한다. 베르그송은 이미 만들어진 결과들을 잘게 나누어 다시 조립한다고 해서, 진짜 생성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완성된 그림을 퍼즐 조각으로 자른 뒤 다시 맞춘다고 해서, 그 그림을 새롭게 창조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손에 남아 있는 결과만 보고 내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결과만 보고 “나는 결국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고,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심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빨리 회복했는지를 따진다. 그러나 삶에는 성과로 보이지 않는 깊은 변화가 있다. 오래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낮아질 수 있고, 실패를 겪는 동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눈이 생길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도, 안쪽에서는 사람이 달라지고 있을 수 있다. 기계론적 환상은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의 계산으로 설명하려 한다. 과거가 이러했으니 현재가 이렇게 되었고, 현재가 이러하니 미래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의 선택은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의 태도는 미래를 바꾼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과거의 상처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내 미래를 결정하는 100%요인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계산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회복의 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오래 침묵하다가 어느 날 다시 말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여러 번 경험한 후에야 자신에게 맞는 길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 인생의 쓴 맛을 보아야 다른 사람을 덜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 기계적 계산으로 보면 늦은 것이고 돌아간 것이지만, 생명의 흐름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베르그송이 말한 참된 생성은 삶을 더 길게 보라고 가르쳐 준다. 오늘의 장면만 보지 말고, 그 장면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지금의 결과만 붙잡지 말고, 그 결과 속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은 움직임을 찾아서 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미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나는 아직 만들어지어가고 있는 존재다. 이 관점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아직 회복이 더디고, 다시 넘어질까 두렵다 해도, 나는 완전히 멈춘 존재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 배우고, 견디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생명의 흐름이 남아 있다. 은혜는 그 흐름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조용한 힘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도 결과만 보고 판단할 때가 많다. 누군가 지금 거칠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시간이 거칠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지금 약해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 안에 아무 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지금 실패한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가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사람은 하나의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다. 로마서의 말씀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말한다. 보이는 것만 붙잡는 마음은 기다리지 못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열매와 회복과 의미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기다림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흐름을 신뢰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결과만 보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주어진 결과만 보면 희망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을 본다면 아직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삶은 끝난 그림이 아니라 아직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다. 오늘 그은 작은 선 하나도 시간이 지나면 전체의 무늬 안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제 삶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않게 하시고, 실패한 결과 하나로 저 자신을 절망의 이름 아래 가두지 않게 하소서. 제 삶이 이미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과거의 상처가 저에게 영향을 주더라도, 그 상처가 제 미래를 모두 결정한다고 믿지 않게 하소서. 오늘의 연약함이 실제라 해도, 그것이 제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회복과 성숙의 시간을 신뢰하게 하시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은혜를 참음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오늘 하루,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과정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소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않고, 아직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 않으며, 오늘 주어진 작은 선한 선택을 묵묵히 감당하게 하소서.” 오늘은 결과만 보고 나 자신을 단정하지 않고, 아직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생명의 은혜를 신뢰하는 하루,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을 정죄하기보다, 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