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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묵상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3-24)"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 제2장 「생명 진화의 분기하는 방향들-마비, 지성, 본능」에서 생명이 한 길로만 자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명은 곧게 뻗은 사다리처럼 한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 나무와 같다. 어떤 생명은 조용히 머물며 저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떤 생명은 본능의 정확함으로 살아가며, 어떤 생명은 지성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베르그송은 이 세 방향을 마비, 본능, 지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비는 움직이지 못하는 병적인 상태가 아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안전한 자리에 머무는 ‘자발적 정지 상태’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생명이 잠든 듯이 조용히 머무는 모습이다. 식물은 제자리에서 빛과 물과 흙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식물의 생명이 약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식물은 조용히 뿌리내리고, 기다리고, 저장하며 자기 자리에서 치열하게 생명을 이어 간다. 우리 마음에도 식물적인 정지성이 있다. 많은 상처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거듭되는 실패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고,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을 것 같고,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잃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고, 안전한 자리 안에 숨어 있으려 한다. 그러나 안전한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닫으면 상처는 조금 줄어들지만, 기쁨도 줄어든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는 피할 수 있지만, 성장도 멈춘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은 줄어들 수 있지만, 위로를 받을 길도 함께 좁아진다.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호가 삶 전체가 되면 마음은 조금씩 굳어지고, 생명은 잠들기 시작한다. 베르그송은 또 하나의 방향으로 본능을 말한다. 본능은 생각하기 전에 온몸으로 단번에 알아차리는 직관의 지혜다. 배운 적도 없고 분석하지 않아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새가 둥지를 짓고, 벌이 집을 만들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일이다. 우리에게도 본능처럼 작용하는 지혜가 있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 논리적인 이유를 묻지 않고 조용히 곁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 지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야겠다는 느낌, 위험한 길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는 감각,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만 보고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섬세함이다. 이런 것은 계산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오래 살아오며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생명의 감각이다. 하지만 본능도 완전하지 않다. 본능은 익숙한 상황에서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예상치 못한 낯선 고난과 같은 상황 앞에서도 "내가 늘 해오던 방식"만을 고집하며 변화의 문을 닫아버리고 우리를 같은 자리에 묶어 두는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지성의 방향을 말한다. 지성은 생각하고, 구별하고, 도구를 만들고, 새로운 길을 찾는 힘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에 비해 몸이 약하지만, 바로 그 부족함 때문에 생각하고 계획하며 도구를 만들었다. 지성은 본능처럼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눈물도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우리에게도 이런 지성이 필요하다. 익숙한 반응만 반복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늘 화내던 자리에서 다른 말을 선택하고, 늘 피하던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늘 포기하던 순간에 대안을 다시 찾아보는 힘이 필요하다. 지성은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며 막힌 장벽 너머의 길을 상상해내는 창조적인 힘이다. 베르그송의 통찰이 주는 위로는 생명은 한 방향으로만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용히 뿌리내리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본능처럼 몸과 마음이 알고 있는 따뜻한 감각도 필요하다. 또 지성으로 새 길도 찾아야 한다. 때로는 멈춤이 필요하고, 때로는 직감이 필요하며, 때로는 생각과 결단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방향에만 갇히지 않는 것이다. 계속 머물기만 하면 생명은 잠든다. 본능만 붙들면 변화가 어려워진다. 지성만 의지하면 삶이 너무 차갑고 메마를 수 있다.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고,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따뜻한 감각도 필요하며, 새로운 상황 앞에서 길을 찾는 지혜도 필요하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자주 갈림길 앞에 선다. 머물 것인가, 움직일 것인가. 예전 방식대로 반응할 것인가, 새롭게 배울 것인가. 안전한 껍질 속에 숨을 것인가, 두렵더라도 한 걸음 나아갈 것인가. 모든 선택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오늘 한 사람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는 것, 오래 미루어 둔 일을 시작하는 것, 두려움 때문에 닫아 둔 마음을 조금 여는 것, 그것도 생명이 다시 움직이는 방식이다. 은혜는 우리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먼저 쉬게 하고, 뿌리내리게 하고, 상처 입은 마음을 보호하게 한다. 그러나 거기서 영원히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숨을 고른 뒤에는 다시 일어나 걷게 하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한다. 굳어진 마음도 다시 부드러워질 수 있고, 멈춘 것 같은 삶도 다시 흐를 수 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너무 오래 멈추어 있어도,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많이 아팠기 때문에 멈췄을 수 있고, 너무 지쳤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움직여도 되는 시간은 아닌지. 작은 한 걸음이라도 다시 시작해도 되는 때가 아닌지’를 물어볼 필요는 있다. 생명은 완벽하게 준비된 뒤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자라고, 두려워하면서도 배운다. 오늘의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큰 변화보다 잠든 마음을 조금 깨우는 것일 수 있다. 닫힌 생각을 조금 여는 것일 수 있다. 오래된 반응 대신 새로운 대답을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 안전한 자리에서 아주 조금만 나와, 아직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조용히 걸어 보는 것일 수 있다. 베르그송이 말한 생명은 여러 갈래로 자란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어떤 시간은 기다림의 뿌리가 되고, 어떤 시간은 아픔을 알아차리는 따뜻한 감각이 되며, 어떤 시간은 새로운 길을 찾는 지혜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멈춤을 마지막으로 여기지 말자. 오늘의 두려움을 나의 본질로 여기지 말자. 생명은 아직 우리 안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리고 조용한 은혜는 우리를 다시 깨우고, 다시 움직이게 하며, 다시 살아가게 한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닫아 둔 마음과 실패의 두려움으로 멈추어 선 자리에 저 자신을 너무 오래 가두어 두지 않게 하소서. 안전하다는 핑계로 제 영혼이 깊은 잠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 많이 아프고 지쳐 멈출 수밖에 없었던 제 마음을 주님의 자비로운 눈으로 품어 주시고, 이제는 주님의 손을 잡고 조금씩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허락 하소서. 제 안에 굳어진 오래된 습관과 방어적인 반응만을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익숙한 방식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는 본능처럼 따뜻하게 공감하게 하시고, 사방이 막힌 상황 앞에서는 지성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영적 지혜를 주소서. 기다려야 할 때에는 조용히 뿌리내리는 인내를, 움직여야 할 때에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믿음을 허락 하소서.” 오늘은 비록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붙드시는 주님의 손을 의지하여, 멈추어 있던 그 자리에서 아주 작은 새 선택의 한 걸음을 조용히 내딛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