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전도서 3:11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 (한글번역이 아닌 Kindle Edition 創造的進化를 읽고 쓴 글)』의 1장 「생명 진화에 관하여: 기계론과 목적론」에서 생명의 역동성을 제한하는 두 가지 사상적 태도, 즉 기계론과 목적론을 비판한다. 기계론은 생명을 인과관계의 필연적인 연결로 본다. 지금은 과거의 조건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충분히 계산할 수만 있다면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대로 목적론은 생명이 처음부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본다. 모든 과정은 미리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기계론과 미래의 목표가 현재를 이끈다는 목적론은 겉보기에 정반대 같지만, 베르그송은 이 둘이 깊은 곳에서는 비슷하다고 본다. 둘 다 생명의 새로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론에서는 미래가 과거 속에 이미 들어 있고, 목적론에서는 미래가 목적 속에 이미 들어 있다. 결국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창조와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의 신비를 배제한다.
우리 인생도 기계처럼 과거의 원인만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어린 시절의 경험, 실패의 기억, 상처의 흔적, 반복된 선택은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과거가 나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실패한 사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한 번 상처를 입었다고 상처의 사람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과거를 품지만, 과거에만 갇히지는 않는다.
또한 인생은 완성된 설계도처럼 처음부터 모든 길이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내 인생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 놓고 살아간다. 어느 나이에 무엇을 이루고, 어떤 모습으로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우리의 계획표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오고, 원치 않았던 이별이 오며, 준비되지 않은 고난이 찾아오고, 뜻밖의 기회도 열린다. 그래서 삶은 때로 불안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 새로움의 가능성도 있다.
베르그송에게 생명이란 고정된 설계도를 복사하는 작업이 아니라, 매 순간 안팎의 저항과 부딪히며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흐름이다. 하나의 씨앗이 나무로 자라날 때, 그것은 내장된 부품들이 조립되는 과정이 아니다. 씨앗 안의 완강한 생명력이 거친 흙과 변덕스러운 비바람, 작렬하는 태양을 극복하며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나이테와 곡선을 빚어내는 창조적 여정이다.
우리의 영혼 또한 과거에 묶여 있지 않으며, 현재의 일시적인 실패에 갇히지 않는다.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이란 과거가 소멸하지 않고 현재 속에 살아 숨 쉬며, 그 현재가 다시 미래를 향해 창조적으로 열리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어제의 눈물은 오늘의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오늘의 믿음 어린 선택은 내일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전도서의 고백은 베르그송의 통찰을 신앙의 신비로 끌어올린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인간의 좁은 계산기 속에 갇히지 않는 '측량할 수 없는 시간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신다. 우리는 오늘의 막힘이 왜 필요한지, 왜 이토록 기다림의 겨울이 길어야만 하는지 그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 정체된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은혜는 대개 우리의 완벽한 계획이 무너진 자리에서 찾아온다. 계획표가 찢겨 나간 그 광야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우상을 내려놓고 참된 자아를 마주하며, 타인의 아픔을 깊이 품을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상처를 즉각 지워 주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 상처의 흔적조차 영원을 사모하는 깊이로 빚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너무 기계적으로 보지 않는 마음이다. "나는 원래 안 된다"는 말로 나를 가두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내 계획과 목적에 인생을 너무 좁게 맞추지 않는 마음도 필요하다. 내가 정한 길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패는 아니다. 삶은 내가 계산한 것보다 넓고 높으며, 시간이 품고 있는 가능성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깊다.
생명은 길을 만들어 간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바람을 만나면 더 깊이 뿌리내리며, 어둠을 지나며 빛을 향한 감각을 배운다. 우리도 그런 존재다. 그래서 오늘은 아직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아직 자라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예상과 다른 길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측량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조용히 빚어지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지금은 알 수 없었던 시간의 의미가 조금씩 아름다움으로 드러날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과거의 상처와 환경이라는 인과관계에 저 자신을 가두어, 스스로를 절망의 결과물로 규정하지 않게 하소서. 또한 제가 세운 정교한 계획표와 성공의 기준에만 집착하여,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조급해하거나 낙심하는 조바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좁은 계산기로는 다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크고 신비로운 시작과 끝이 있음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제 인생을 이미 고정된 설계도나 멈춰 선 기계처럼 대하지 않게 하시고, 매 순간 안팎의 저항 속에서도 새 길을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생명력임을 깨닫게 하소서. 어제의 눈물이 오늘의 깊이가 되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풍경을 바꾸는 은혜의 지속을 경험하게 하소서. 제가 마주하는 이웃들을 완고한 잣대로 단정 짓지 않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 하루, 제 완벽한 기획이 무너지고 광야 같은 지연의 시간을 지날지라도, 그 속에서 내면의 우상을 내려놓고 참된 자아와 주님의 인도하심을 마주하게 하소서. 오늘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예상과 다른 길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때가 되면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주님의 손길에 삶을 맡기고 묵묵히 걸어가게 하소서.
오늘은 과거의 상처에 묶여 낙심하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조급해 하지 않고, 측량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은혜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우리 안에서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