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전도서 3:1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 제4장 「이미지들의 한정과 고정에 관하여」에서 제논의 ‘날아가는 화살의 역설’을 통해 인간의 지성이 현실을 파악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의 시간을 아주 잘게 나누면 화살은 매 순간 특정한 위치에 정지해 있으므로, 결국 화살의 운동은 정지된 순간들의 합에 불과해 움직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역설을 폈다. 화살은 분명히 날아가고 있지만, 시간을 아주 잘게 나누어 사진을 찍는다면 각 사진 속의 화살은 특정한 위치에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모든 순간을 잘라 보면, 화살은 매 순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지한 순간들의 합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순간에 화살은 정지해 있는데 어떻게 운동이 생길 수 있는가. 이것이 제논이 던진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베르그송은 실제 운동이란 결코 자를 수 없는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 즉 ‘지속’이라고 반박한다. 우리가 자를 수 있는 것은 화살이 지나간 공간적 자취(궤적)일 뿐, 살아 움직이는 운동 그 자체는 결코 정지된 장면들의 불 연속적인 모음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일상의 실천을 위해 끊임없이 흐르는 삶을 임의로 자르고 고정하여 현실을 멈춘 장면으로 바꾸어 버린다. 인생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한 장면을 붙잡고 그 장면으로 삶 전체를 판단한다. 그러나 이 기능이 영혼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삶을 옭아매는 치명적인 사슬이 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오직 한 번의 실패, 한순간의 부끄러움, 타인의 차가운 말 한마디라는 ‘정지된 사진’을 붙잡고는 그것을 존재 전체의 이름으로 삼아 버린다. 맥락을 잃어버린 채 단 한 장의 어두운 장면에 갇힌 영혼은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내 인생은 여기에서 끝났어”, “맞아, 나는 결국 그런 사람일 뿐이야”라며 스스로 절망의 최종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전체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의 아주 짧은 한 단면일 뿐이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진 순간만 보면 그의 인생은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다. 감옥에 갇힌 순간만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절망의 장면들을 통과시키며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이끄시는 긴 흐름을 만들고 계셨다.
우리는 오늘의 고통을 영원한 결론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지금 힘드니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응답이 없으니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단정한다. 지금 마음이 무너졌으니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오늘은 마지막 장면이 아니다. 오늘은 과정이다.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긴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삶을 한 장면으로만 보면 희망은 사라진다. 그러나 삶을 흐름으로 보면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지금은 멈춘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수 있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안쪽에서는 아주 느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겨울나무를 보면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마르고, 생명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땅속에서는 여전히 준비가 계속된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티고 있고, 나무는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사람의 마음도 그럴 때가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티는 법을 배우고, 무너지지 않는 힘을 기르고, 다음 걸음을 위한 조용한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다. 겉으로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인다고 해서 삶이 멈춘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안쪽에서 조용히 버티는 힘을 기르는 것 역시 변화의 가장 역동적인 방식이다.
인생을 사진의 집합이 아닌 멈추지 않는 흐름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자신과 타인을 향한 깊은 긍휼이 회복된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의 모나고 연약한 모습이 그 존재의 최종 평가나 결론은 아니다. 내가 지금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쳐 있다 해도, 그것이 곧 내 삶 전체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한 상처의 역사와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의 시간이 엄연히 흐르고 있다.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도, 시간은 감정을 조금씩 바꾸고, 경험은 마음을 조금씩 넓히며, 관계와 만남은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열어 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삶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오늘의 고통은 영원한 종착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인격을 빚어 가시는 긴 이야기의 한 조각이다.
전도서의 고백처럼 천하만사에는 저마다의 기한과 때가 존재한다. 겨울의 침묵이 있어야 봄의 도약이 있듯, 우리의 기다림과 아픔 또한 영원한 결론이 아닌 다음 계절을 향해 흘러가는 한 과정일 뿐이다. 희망이란 눈앞의 아픈 장면을 무책임하게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아픔을 아프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아픔이 내 인생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실패를 실패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실패가 나의 이름이 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기다림이 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다림 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단편적인 장면 너머에서 여전히 신실하게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신뢰하는 능력이다.
오늘 내 눈에는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관계가 멈춘 것 같고, 회복이 멈춘 것 같고, 삶의 길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보이는 정지가 곧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 멈춤처럼 보이는 시간은 깊어지는 시간이고, 쉬어 가는 시간이며, 다음 방향을 준비하는 시간일 수 있다. 우리는 빨리 움직이는 것만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조용히 견디는 것도 변화의 한 방식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다. 아직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지 않으신 서사를 내가 먼저 서둘러 결론짓지 않고, 흐르는 은혜의 강물에 오늘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발 앞으로 소망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으로 제 삶을 너무 빨리 단정하지 않게 하소서. 실패한 장면 하나로 저 자신을 고정하지 않게 하시고, 상처받은 기억 하나로 제 미래를 닫아 버리지 않게 하소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주님의 사랑과 약속은 영원함을 믿게 하소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도 현재의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연약한 사람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보게 하시고, 무너진 사람 안에도 주님이 다시 세우실 수 있는 생명이 있음을 믿게 하소서. 제 마음이 두려움과 낙심의 이미지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지만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 하루,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되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되 현실을 영원한 하나님의 빛 아래 다시 해석하게 하소서. 제가 붙잡고 있던 절망의 장면을 내려놓고, 주님이 아직 끝내지 않으신 은혜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 걸음 걸어가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멈추었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실패나 연약함 그리고 고난과 같이 보이는 장면 하나로 삶 전체를 판단하지 않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함을 기억하며, 소망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