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예레미야애가 3:20-22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 제2장 「이미지들의 식별에 관하여」에서 우리가 대상을 식별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앞의 지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기억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반복을 통해 신체에 축적된 '습관 기억'과, 인생의 고유한 매 순간이 영혼의 심연에 고스란히 보존되는 '순수 기억'이다. 익숙한 길을 몸이 먼저 찾아가는 것은 습관 기억이지만, 절망 속에서 눈물로 드렸던 단 한 번의 기도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은 순수 기억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지각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의 순수 기억이 현재의 장면 위로 내려와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식별하게(재인)'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 두 기억이 공존한다. 뜨거운 감정이 없어도 매주 예배의 자리로 향하고, 영혼이 지쳐 있을 때도 입술이 기도를 읊조리는 것은 하나님이 오랜 시간 우리 몸에 새겨 주신 귀한 '습관 기억'의 덕분이다. 때로는 이 길들여진 믿음의 습관이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준다. 하지만 인생의 깊은 밤을 지날 때, 기계적인 습관만으로는 절망을 이기기 힘들다. 이때 우리를 결정적으로 살리는 것은 은혜의 '순수 기억'이다. 길이 막혔을 때 뜻밖에 임했던 주님의 위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를 안아 주셨던 십자가의 사랑 같은 순수 기억들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오늘의 절망을 소망으로 다시 읽어내게 하는 영적인 빛이 된다.
문제는 우리가 거친 현실을 마주할 때, 은혜의 기억보다 상처의 습관 기억을 먼저 작동시킨다는 점이다. 거절당한 아픔이 습관이 된 사람은 상대방의 사소한 침묵도 무관심으로 식별하고, 실패를 거듭한 사람은 새로운 기회조차 또 다른 낙심의 전조로 해석한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지각에 과거의 기억이 개입하는 것이 '식별함(재인)'의 본질이라면, 우리의 영적 침체는 오늘 발생한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을 과거의 상처라는 필터로만 왜곡되게 식별하고 해석하는 '마음의 슬픈 습관'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기다림을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오해하는 영적 착시현상이 바로 이 때문이다.
예레미야애가의 기자는 이 치열한 영적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는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라며 무너진 성벽과 예루살렘의 폐허와 상실의 고통을 숨기지 않는다. 고난의 기억은 실제였고, 그 기억은 그를 깊은 낙심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기자는 그 어두운 기억에 오늘을 통째로 내어주지 않았다. 도리어 마음의 중심에 또 다른 순수 기억, 즉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다"는 은혜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끌어와 담아두었다. 상처의 기억이 그를 낙심하게 했다면, 은혜의 기억은 그를 다시 소망의 자리로 돌려세웠다. 신앙이란 이처럼 마음에 떠오르는 기억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베르그송은 뇌를 단순히 기억을 모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행동과 연결되도록 돕는 장치로 보았다. 성경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구원의 십자가를 "기억하라"고 명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적 기억은 과거 정보를 단순히 떠올리는 지적 만족이 아니라, 오늘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찬 동력이다. 출애굽의 홍해를 기억하는 이는 막힌 길 앞에서도 기도를 선택하고, 만나를 기억하는 이는 부족함을 느낄 때 하늘을 향해 손을 펴며, 십자가를 기억하는 이는 죽음 같은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행동한다. 은혜의 기억은 오늘을 버티고 사랑하게 만드는 강력한 행동의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마음 문 앞에는 후회와 서운함, 실패의 기억들이 먼저 찾아와 하루의 마지막 해석자가 되려고 줄을 서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두운 그림자들에게 우리 영혼의 최종 결정권을 내어줄 필요는 없다. 상처를 지우거나 아픔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낙심의 기억 위에, 끝내 나를 멸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랑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조용히 포개어 놓으면 된다. 마지막 해석자의 자리를 내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내어줄 때, 절망처럼 보이던 오늘의 현실은 비로소 나를 더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은혜의 줄거리로 아름답게 새겨질 것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저는 내 눈앞에 펼쳐진 메마른 현실만을 보며, 내 상처와 두려움이 지시하는 어두운 결론을 인생의 전부인 양 붙잡고 낙심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겪고 있는 상처의 기억이 오늘의 나를 결정하는 최종 해석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신뢰합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보존되어 있는 은혜의 순수 기억들, 나를 버텨내게 하셨고 끝내 살리셨던 주님의 사랑의 흔적들을 오늘 이 시간 다시금 눈을 들어 바라보게 하소서. 낙심의 습관을 따라 멈춰 서는 인생이 아니라, 내 마음에 담아두신 은혜의 작은 빛을 따라 오늘도 기쁨으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사방이 캄캄한 어둠처럼 느껴질지라도, 내 영혼의 심연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셨던 은혜의 기억들을 꺼내어, 모진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결코 나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나에게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따뜻한 위로를 누리며 힘차게 한 걸음을 내딛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