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이사야 43:18-19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한글번역이 아닌 Kindle Edition 物質と記憶을 읽고 쓴 글)』의 1장 「표상을 위한 이미지들의 선택」에서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 혁신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그에게 우주는 고정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들의 총체이며, 인간의 몸 역시 그 수많은 사물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러나 '내 몸'은 특별하다. 외부에서 관찰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아픔과 피로를 느끼는 '행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각은 보여지는 대로만 비추어내는 거울이 아니다. 내 몸이 지금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즉 '앞으로 취할 가능한 행동'에 맞추어 현실의 특정 부분만을 추려내는 '선택적 필터링'의 과정이다. 우리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두려움과 상처, 오래된 습관이 '선택해 준' 지극히 좁은 현실만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의 말대로 뇌가 세상의 그림을 그리는 공장이 아니라 행동을 준비하는 기관이라면, 내가 무엇을 지각하느냐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하느냐와 직결된다. 길 잃은 자는 표지판만 보고, 배고픈 자는 음식점만 보듯, 두려움에 사로잡힌 영혼은 오직 사방의 위험과 절망의 이미지들만 선택적으로 걸러내어 지각한다. 같은 현실을 지나면서도 하나님이 펼쳐 놓으신 약속의 전체 서사를 보지 못한 채, 오직 '결핍'이라는 조각 속에 자신을 가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우리를 향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새 일을 행하시지만, 문제는 그 새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의 영적 지각이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에 붙들려 있으면 있을수록, 눈앞에 하나님의 새 일이 도착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낯설고 불편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믿음이란 새로운 교리 지식을 머릿속에 채워 넣는 공장이 아니다. 믿음은 세계를 하나님 없이 해석하려는 오래된 내 지각의 필터를 제거하고, 현실을 은혜의 눈으로 다르게 읽어내는 관점의 전환이다.
성경 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깊은 상처와 절망 속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에게 무너진 성전, 성벽의 파괴, 포로가 된 수치라는 과거의 이미지는 너무도 강렬했다. 현재를 그 상처의 렌즈로 본 그들의 매일의 결론은 "우리는 끝났다"일 뿐이었다. 이때 하나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리라는 심리적 기만이 아니다. 현재는 반드시 과거의 실패나 상처의 결과라는 지각이 틀이 되지 않게 하라는 강력한 경고다. 옛 상처의 눈으로 하나님의 새 일을 가로막지 말라는 사랑의 명령이다.
그렇다고 복음이 현실의 고통을 무조건 아름답게 꾸며내는 맹목적 낙관주의는 아니다. 광야는 실제로 메마르고, 사막은 타들어 가며, 과거의 실패와 거절의 기억은 선명한 거울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신앙은 그 현실의 이미지들을 '하나님' 없이는 해석하지 않는 영적인 훈련이다. 광야를 보되 하나님이 길을 내실 공간으로 지각하고, 사막을 보되 주님이 강을 대실 약속의 자리로 읽어내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한계보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지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익숙한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수많은 이들이 눈으로 보았지만, 지각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고작 '목수의 아들'이라는 과거의 이미지로 보았고, 어떤 이는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는 자로 지각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를 알아보았다. 눈앞에 진리가 와도 두려움과 교만으로 내면이 닫혀 있으면 결코 알아볼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라"고 초대하시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 자극을 느끼라는 뜻이 아니다. 과거의 상처가 난도질해 놓은 왜곡된 현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활짝 열어젖히는 영적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오라는 부르심이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우리의 지각이 결국 행동을 향해 열려 있는 준비 과정이라면, 믿음의 시야는 반드시 믿음의 발걸음인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걸어갈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불가능만 보는 자는 주저앉지만, 약속을 보는 자는 묵묵히 기다린다.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실 때, 두려움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 사막에 강을 내실 때 메마름을 원망하는 대신 물을 마시기위해 그 강가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지각의 변화다. 보는 것이 바뀌면 발걸음도 바뀐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 눈의 비늘을 벗기시어, 두려움의 조각이 아닌 은혜의 지속 안에서 새 일을 시작하게 하신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저는 내 눈에 보이는 메마른 현실, 내 상처와 두려움이 보여주는 어두운 장면들을 붙잡고 그것이 내 인생의 최종 결론인 양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보는 현실은 제한적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음을 믿습니다. 주님, 제가 과거의 실패로 현재를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오래된 상처의 필터로 하나님의 새 일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광야를 볼 때 절망만 보지 않게 하시고 그곳에 길을 내시는 주님의 손을 보게 하소서. 사막의 메마름 속에 갇히지 않고 그곳에 강을 내실 하나님의 약속을 지각하게 하소서. 내가 보고 싶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를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지금 내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 가장 크게 선택하여 보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아니면 나를 집어삼킬 듯한 두려움입니까? 혹시 과거의 거절과 실패가 점지해준 장면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은, 황량한 광야에서도 길을 내시며, 목마른 사막 같은 시간 속에서도 생수의 강을 예비하고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기쁨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