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록

칼럼

2026년 6월 9일 묵상

오늘의 말씀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 31:15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결론에서, 인간의 역동적인 내면을 외부 사물처럼 쪼개고 계산하려는 태도를 강력히 비판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도, 시간도, 자유도 눈에 보이는 사물처럼 이해하려 한다. 슬픔의 크기, 분노의 정도, 믿음의 깊이, 시간의 길이를 측정하고 수치화 하려 하며, 내 선택이 몇 가지 선택지 중 하나였는지를 기계적으로 따진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인간의 의식이 공간 위에 펼쳐놓고 재단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의식은 조각난 알갱이들의 모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스며드는 '살아 있는 지속'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적한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시간'을 '공간'과 혼동하는 데 있었다. 공간 속의 물건은 나눌 수 있고 셀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시간은 그렇게 잘라지지 않는다. 어제의 눈물은 오늘의 기도 안에 스며들어 있고, 오래전에 받았던 위로는 지금을 버텨내는 인내 속에 살아 숨 쉬며, 지나간 실패조차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겸손과 긍휼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지나간 순간들을 과거라는 휴지통에 버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지나온 시간 전체가 지금의 마음속에 녹아서 '나'라는 한 사람을 빚어낸다. 이 철학적 통찰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삶을 너무 쉽게 재단하며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결정이 결정적인 실수였어", "지난 세월은 쓸모 없이 낭비되었어"라며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장면 장면이 끊어진 필름과 같이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과 기다림,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을 하나의 거대한 '줄거리'로 바라보신다. 우리가 실패와 낭비라고 낙인 찍은 조각의 시간조차 주님의 손에 의탁하면 속사람을 빚어내는 가장 고귀한 재료가 된다. 베르그송은 자유에 대해서도 결론적으로 못을 박는다. 참된 자유는 두 갈래의 길 앞에서 하나를 고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외부의 원인과 조건에 의해 기계적으로 떠밀리는 것도 아니다. 참된 자유는 오랜 지속 속에서 형성된 깊은 자아 전체가 하나의 행위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즉, 자유는 순간적인 충동이나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전체가 녹아 있는 인격의 온전한 표현이다. 죄와 상처, 두려움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속사람이 사랑과 순종으로 나타나는 상태다. 예전 같으면 분노로 반응했을 자리에서 한 번 더 기도하는 것,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던 자리에서 순종을 선택하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섬기는 것. 이 것이 은혜의 지속 안에서만 가능한 진짜 자유다. 우리는 때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늘 넘어지는 존재야", "나는 늘 실패하는 사람이야", "나는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야", "나는 변할 수 없어"라며 스스로를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그런 고정된 이름 안에 가두지 않는다. 주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묶어두지 않으셨고, 탐욕에 눈멀었던 삭개오를 '세리장'이라는 낙인 속에 방치하지 않으셨으며,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죄인'이라는 과거 속에 매장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들의 굳어버린 과거를 깨뜨리시고, 은혜로 도약할 새로운 시간을 보셨다. 베르그송의 말대로 인간이 공간 속에 놓인 물건이 아니라 시간 속을 흐르는 존재라면, 신앙 안에서의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끊임없이 빚어져 가는 존재'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실패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내일의 내가 오늘의 연약함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은, 단순히 미래의 어느 한 시점만을 맡긴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전체(지속)'가 주님의 주권 속에 흐르고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시간도 주님은 아시고, 내가 아파서 붙들 수 없던 기억도 주님은 품고 계시며, 내가 두려워하는 미래도 주님은 이미 은혜로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간 시간으로 인해 절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으신다. 그 과거를 은혜의 빛 아래서 '새롭게 해석'하게 하신다. 아픈 상처를 타인을 품는 긍휼의 그릇으로 바꾸시고, 수치스러운 실패의 자리를 겸손과 성숙함으로 변화시키신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는 상처도, 실패도 최종 결론이 될 수 없고 기다림도 헛된 공백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변화가 없어 보이고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씀을 듣고 눈물로 기도하던 시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인내하며 견뎠던 시간, 용서하고 싶지만 아직 다 용서하지 못해 씨름했던 그 모든 보이지 않는 '지속의 시간'들은 영혼에 거름이 되어 언젠가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순종의 열매로 드러난다. 믿음은 내 삶의 모든 조각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시간을 붙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방으로 흩어진 파편처럼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 손에서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인다. 내가 보기에는 멈춘 것 같은 시간도, 하나님 안에서는 속사람이 자라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늦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을 기계처럼 몰아붙이며 "왜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정죄하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를 숫자와 속도와 일시적인 결과로만 판단하지 않으신다. 분노 대신 기도를, 두려움 대신 신뢰를, 자기 보호 대신 사랑을, 절망 대신 소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아시고, 지금 견디고 있는 무게를 아시며, 앞으로 흐르게 하실 은혜의 깊이를 아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주님의 손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삶의 시간을 제 기준으로만 재단하고 판단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소서. 지나간 실패와 상처를 끝이라고 여기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 모든 아픔의 시간까지도 주님의 손 안에서 은혜의 이야기로 엮어 가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저 자신을 '변하지 않는 사람', '실패한 사람', '늦은 사람'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지속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빚어지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랑과 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참된 자유를 허락하소서. 오늘도 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안함 가운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염려가 마음을 조각 내려 할 때마다, "나의 모든 시간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조급함을 내려놓고 미소 짓는 것, 나를 묶고 있던 판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곁의 이들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작은 순종을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