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요한복음 8:36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3장 「의식상태들의 조직화에 관하여: 자유」에서 자유를 단순히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능력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에게 참된 자유란 순간의 감정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 형성된 깊은 자아 전체가 하나의 행위로 드러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내 마음대로 사는 것' 혹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자유라 여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들이 실제로는 습관과 체면, 두려움과 분노,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는 끈에 묶여 있을 때가 많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낸다고 믿지만 실은 상처 입은 자존심의 반사작용일 수 있고, 침묵을 선택했다고 믿지만 거절당할까 두려워 마음을 닫은 것일 수 있다. 열심히 헌신하면서도 내면은 타인의 평가에 붙들려 있기도 한다. 겉으로는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죄와 상처와 욕망의 손에 이끌려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내면에 두 가지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하나는 타인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고 사회적 역할과 관습에 따라 반응하는 '표면적 자아'다. 이 자아는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하고 비교하며, 고정관념에 갇힌 채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간다. 반면 '깊은 자아'는 삶의 모든 기억과 양심, 고난과 성찰, 사랑과 소망이 서로 스며들어 형성된 영혼의 참된 자아다. 우리의 행위가 이 깊은 자아와 일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의미의 자유를 누린다. 신앙생활도 얼마든지 표면적인 자아에 끌려갈 수 있다.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기도하고, 칭찬과 인정을 바라고 봉사하며, 종교적 체면 때문에 용서하는 척할 수 있다. 행동의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판 때문이라면, 그 행동은 자유로운 순종이 아니다. 도리어 율법과 인과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다시금 얽매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자유는 결코 내 욕망을 무제한으로 분출하는 방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와 두려움, 상처의 연쇄 반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자유는 정죄와 수치와 두려움의 사슬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조건 없이 용납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생겨난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완전히 붙들릴 때,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며, 과거의 상처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선포할 수 있다. 미움에 묶이면 사랑할 자유를 잃고, 두려움에 묶이면 순종할 자유를 잃는다. 상처와 욕심에 결박되면 다시 신뢰하고 감사할 자유를 잃는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의 외적인 행위를 넘어 마음 가장 깊은 자리까지 찾아와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은 우리의 깊은 상처와 죄책감, 왜곡된 욕망이 뒤엉켜 있는 그 깊은 자아의 자리까지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 어두운 심연에 빛을 비추시며 "너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과거의 실패가 너를 규정하지 못하며, 사람들의 평가가 네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너는 내 은혜 안에서 온전히 새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다"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다. 그는 표면적인 자기 확신에 묶여 있었고, 결국 처참한 실패의 수치심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실패의 기억에 그를 가두는 대신, 깊은 자아를 터치하시는 사랑으로 그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부르셨다. 이것이 바로 은혜가 주는 자유다. 은혜는 우리의 미래를 과거의 실패 아래 가두지 않는다. 실패나 상처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며, 회개하는 영혼을 기어이 다시 일으켜 세워 자유로운 사랑의 순종으로 이끈다.
이러한 참된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완제품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을 이루듯, 자유 역시 말씀을 듣는 시간, 눈물로 기도하는 시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 용서하려고 씨름하는 시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간속에서 우리 내면이 조금씩 성숙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고,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며, 오래된 습관이 나를 흔든다 하여 낙심할 필요는 없다. 주님은 우리를 단번에 완성된 사람처럼 몰아붙이지 않으신다. 넘어질 때 다시 일으키시고, 묶여 있는 부분을 보게 하시며, 조금씩 더 깊은 자유의 자리로 이끄신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 상처도 없고 아무 두려움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주님의 은혜를 붙드는 사람이다. 예전 같으면 분노에 사로잡힐만한 환경에서도 한 번 더 기도하는 사람, 두려움 때문에 도망쳤을 상황에서도 작은 순종을 선택하는 사람, 인정욕에 목이 마를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로 마음을 붙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은혜 안에서 자유를 배워 가는 사람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기 원하신다. 내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죄에 끌려가지 않을 자유다.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자유다. 과거의 실패에 갇히지 않을 자유다. 상처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자유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자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유 안에서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다시 용서할 수 있으며, 다시 순종할 수 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얽매임에서 풀어 하나님 앞에서 참된 나로 살아가게 하신다.
오늘의 실천
"주님, 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두려움과 체면과 상처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묶여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죄와 욕망에 끌려가는 삶에서 저를 건져 주소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제 속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며, 용서하기 어려웠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을 더 귀히 여기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오늘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나 상처나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조용히 돌아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분노에 이끌릴 때 잠시 멈추어 기도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하나님께서 이미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님 안에서 자유로운 순종을 선택하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