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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5일 묵상

오늘의 말씀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 31:15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2장 「의식상태들의 다수성에 관하여: 지속의 관념」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내면의 시간은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물리적 시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달력은 날짜를, 시계는 시, 분, 초를 나타내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일률적으로 나눌 수 없다. 같은 10분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느끼는 시간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와 즐거운 여행중의 하루도 다르게 느껴진다. 분명 시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느낌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이처럼 숫자로 계량한 시간이 아닌 체험되는 시간을 베르그송은 지속이라고 불렀다.

지속이란 시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의식안에서 살아 흐르는 시간이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 내가 느끼는 감정 안에 남아 있고, 오늘의 새로운 감정은 어제의 기억을 재해석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의 밀려오는 두려움 속에 스며 있으며, 과거에 받았던 사랑이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단절된 뒤편에 버려두고 앞으로만 가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를 입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향해 빚어져 가는 존재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삶을 물리적 시간표에 대어보며 섣불리 판단하여 나는 왜 아직도 그대로일까, 눈물로 기도했는데 왜 변한 것이 없을까, 하나님은 내 시간을 왜 이렇게 지루하게 끌고 가실까라며 조급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시간은 시계의 시간보다 깊고 은밀하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의 일을 행하고 계신다.

눈물로 드린 기도는 사라지지 않으며, 말씀 앞에서 마음이 떨렸던 순간도 헛되이 소멸되지 않는다. 처절한 실패 후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님께 다시 돌아온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묵묵히 견딘 시간, 아낌없이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한계에 부딪혀 가슴을 쳐야 했던 아픈 시간, 용서하고 싶지만 도저히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괴로움 속에 주님 앞에 엎드렸던 자책의 시간까지도 주님 안에서는 단 한순간도 버려지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의 조각들은 고스란히 우리 내면에 스며들어, 우리의 속사람을 빚어 가는 재료가 된다.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방금 지나간 앞의 음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의 음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뒤이어 오는 음 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기에 비로소 멜로디가 된다. 만약 각 음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면 음악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따로 떨어진 소리들의 목록일 뿐이다. 우리의 삶도 지나온 날들이 다 끊어진 실패와 상처의 조각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 손에 붙들리는 순간, 그 조각 같은 시간들은 서로를 품고 하나의 은혜의 멜로디가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실패라고 단정했던 시간도 하나님 안에서는 끝이 아니다. 도리어 그 실패의 시간이 우리를 교만에서 건져내어 겸손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고, 나아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의 멍든 가슴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긍휼의 눈을 뜨게 한다. 내 힘만 의지하지 않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상처의 시간도 하나님 안에서는 결론이 아니다. 그 상처가 곪아 터지는 아픔을 지나면서, 비로소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사람을 품는 긍휼이 될 수 있는 따뜻한 치유자의 성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요셉의 삶이 바로 그 증거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낯선 땅에서 종이 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그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고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들을 사용하셨다. 그 시간들은 요셉 안에 인내와 지혜와 겸손을 빚었고, 마침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훗날 요셉이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했을 때, 그의 지나온 모든 고난의 시간은 상처의 파면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이야기로 하나가 되었다.

우리도 지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을 수 있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왜 같은 문제 앞에서 반복해서 무너지는지, 왜 하나님께서 속 시원히 길을 열어 주시지 않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러나 믿음의 성장과 성숙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기도와 오래전 들은 말씀과 과거의 눈물과 지금의 순종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빚어진 지속의 결과물이다. 오늘의 순종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내일의 믿음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주님의 때에 아름다운 열매로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우리의 미래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흘러간 과거, 숨가쁜 현재,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까지의 나의 시간 전체가 주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주님은 확실히 아시고, 너무 아프고 수치스러워 지우고 싶은 기억도 주님은 은혜의 품으로 안아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계의 시간에 나를 맞추어 나를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 회복이 더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을 멈추신 것이 아니다. 여전히 눈물이 흐른다고 해서 치유가 멈춘 것이 아니며, 아직 두렵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도를 아시고, 우리의 상처의 깊이를 아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의 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경영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시간은 그냥 소멸되지 않는다. 어제의 눈물은 오늘의 깊은 기도가 되고, 오늘의 애타는 기다림은 내일의 인내가 되며, 오래전 받은 위로는 나처럼 쓰러진 누군가를 살리는 말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끊어진 사건들의 목록으로 보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씨실과 날실을 엮어, 하나의 은혜의 이야기로 엮어 가신다.

오늘도 우리의 시간은 온전히 주님의 손 안에 있다. 더디게 가는 것 같고 멈추어 선 것 같아도 주님은 단 한 순간도 나를 향한 이끄심을 멈추지 않으신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볼품없이 느껴져도, 신실하신 주님은 우리라는 작품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지나간 시간이 허무와 후회로 가득하게 느껴져도, 하나님 손에 붙들린 시간은 단 한 순간도 결코 헛되지 않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시간을 은혜로 깊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깊은 상처를 긍휼로 바꾸시며, 우리의 기다림을 믿음의 자리로 빚어 가신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 삶의 시간을 세상의 조급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변화가 더디고,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주님께서 제 안에서 조용히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지나간 상처와 실패를 자책과 후회로만 붙들지 않게 하시고, 그 얼룩진 시간까지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성숙과 긍휼의 재료로 바꾸어 주소서. 광야와 같은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의 작은 순종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게 하소서. 제 과거의 눈물과 현재의 한숨과 미래의 소망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지속의 시간 안에서 믿음으로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