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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3일 묵상

오늘의 말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오늘의 묵상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의 3장 「성격에 있어서의 희극적 요소」에서, 사람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가장 깊은 이유를 '성격의 경직성'에서 찾는다. 본래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며,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고집, 허영, 습관, 타성에 젖은 생각에 갇히면 자신을 잘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남들은 그의 참모습을 정확하게 보는데 본인만 그것을 모르는 불일치 속에서 웃음이 유발되는 것이다. 구두쇠는 자신이 돈의 노예라는 사실을 모르고, 허영심 많은 사람은 자신이 타인의 시선에 중독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고집 센 사람은 자신이 고지식하다는 것을 모르고, 타인을 쉽게 정죄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타인의 가슴을 찌르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신앙의 연수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이러한 경직성의 덫에 걸리기 쉽다. 말씀을 자주 들었고, 기도도 많이 했으며, 봉사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잘 않다고 착각하는 그 때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타인의 과실이나 부족함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내 안에 가득찬 교만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면서, 사랑 없는 내 마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베르그송은 한 사람의 성격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성향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져 그 사람 전체를 지배할 때 비로소 희극성이 생긴다고 보았다. 허영심, 인색함, 고집, 위선, 엄숙함이 삶에 고착화되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늘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게 된다. 거룩한 봉사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허영으로 포장되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명분으로 타인을 가르치고 통제하려는 교만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기도의 자리도 하나님 뜻을 구하기보다 내 고집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려는 떼쓰기의 수단으로 변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누구보다 많이 알았고, 종교적 형식에도 철저했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을 보지 못했다. 타인의 죄에는 돋보기를 대면서 들보 같은 자기 의는 보지 못했고, 세리와 죄인을 격렬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의 교만과 긍휼 없음의 악함은 깨닫지 못했다. 기도는 유창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이 없었고, 금식은 했지만 이웃을 향해 부드러운 마음을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 신앙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도 보지 못하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불꽃 같은 눈으로 통찰하신다. 은밀한 허영과 고집, 위선과 교만, 끝없는 인정욕구까지 모두 아신다. 성경은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며 기도했다. 대개 사람은 내 안의 허영이 드러나는 것이 싫고, 내 고집이 밝혀지는 것이 불편하며, 내 사랑 없음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회복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데서 시작된다. "주님, 제가 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주님의 빛으로 비추어 주소서"라고 가슴을 치며 기도할 때, 비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의 굳어진 땅을 기경하시며 새 일을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돈과 탐욕에 묶여 경직된 삶을 살던 삭개오에게 친히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삭개오의 굳어져 있던 탐욕의 마음을 나눔과 회복의 마음으로 바꾸셨다. 주님은 사람을 실패자, 죄인, 위선자라는 이름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죄와 타성으로 굳어진 모습 너머에 있는 신음하는 영혼을 보셨고,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참된 신앙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내 모습 그대로를 발견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빚어져 가는 거룩한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보아야 한다. 타인의 고집을 탓하기 전에 내 안의 굳어진 편견을 보아야 하고, 타인의 위선을 지적하기 전에 내 안의 이중적인 가식을 보아야 한다. 타인의 부족함을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나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설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임을 뼈저리게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 무지함에서 깨우신다. 우리의 허영을 겸손으로, 고집을 순종으로, 자기 의를 은혜의 의지로, 차가운 정죄를 따뜻한 긍휼로 바꾸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있어 우리의 숨은 동기와 마음을 세밀하게 비추신다. 그 거룩한 빛 앞에 서면 부끄럽고 아플 수 있지만, 결코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를 비추시는 그 분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천

"하나님, 제가 미처 보지 못하는 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거룩한 주님의 빛으로 비추어 주소서. 타인의 과실과 부족함은 날카롭게 살피면서도, 제 안의 교만과 허영과 고집은 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모습을 회개합니다. 신앙의 언어와 행동으로 포장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저 자신을 보게 하소서. 제 안의 굳어진 생각과 완악한 습관, 자기 의를 깨뜨려 주시어, 허영은 겸손으로, 고집은 순종으로, 판단은 긍휼로 바꾸어 주소서. 오늘도 살아 숨쉬는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어 저를 살피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따라 걷게 하소서." 오늘은, 내가 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 조용히 돌아보며,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먼저 내 안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비추어 나를 살피고, 말과 행동이 겸손과 긍휼로 바뀌어 가는 은혜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